2022/03/22
미처 제가 몰랐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만, 천현우 에디터님과 김건아 님의 '2번을 찍은 (20대) 남성들을 이해하고,똑같은 선택으로 존중해야 한다' 는 결론에는 도저히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구조적 차별의 당사자에겐 이러한 강요된 화합은 폭력과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글을 남깁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사회에서 투표란 시장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일련의 선거와 당선, 그리고 취임에 이르는 과정은 매대에 진열된 여러 상품(후보)들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가장 맞는 물건을 고르고, 값을 치르고(투표하여) 내 손에 넣는(당선시키는) 구매 행위와 흡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물건을 잘못 구매하곤 합니다. 혹은 만족하며 구매했던 물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반품을 하거나, 판매 회사, 제조 회사에 항의를 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물건을 왜 샀니" 라는 말을 듣기도 하죠. 때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구매 의사 결정을 내린 자기 자신을 비판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투표와 구매 행위는 다음 지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함량 미달의 후보에게 많은 유권자들이 표를 던지고 그를 당선시켰을 때, 그 후보의 해악은 표를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미친다는 점이죠. 박근혜를 뽑은 국민들이 겨울 내내 전국 각지의 광장에 나와서 박근혜를 권좌에서 몰아내기 위해 고생을 한 것이 불과 5-6년 전의 일입니다. 조금 더 멀리 가면, 자신들의 '소중한 한 표'를 던져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을 제1당으로 만들어주고, 히틀러를 총리에 취임시킨 1930년대 중반의 독일 국민들이라는 아주 좋은 예시 또한 있습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저는 도저히 여러분이 행사하신 한 표는 누구에게도 조롱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라는 말에 공감을 할 수가 없네요.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인생의 첫 선거를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로 치른 제게, 제 표의 행방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딱 하나였습니다. 어떤 정치 세력이 나로 ...
다만, 천현우 에디터님과 김건아 님의 '2번을 찍은 (20대) 남성들을 이해하고,똑같은 선택으로 존중해야 한다' 는 결론에는 도저히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구조적 차별의 당사자에겐 이러한 강요된 화합은 폭력과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글을 남깁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사회에서 투표란 시장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일련의 선거와 당선, 그리고 취임에 이르는 과정은 매대에 진열된 여러 상품(후보)들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가장 맞는 물건을 고르고, 값을 치르고(투표하여) 내 손에 넣는(당선시키는) 구매 행위와 흡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물건을 잘못 구매하곤 합니다. 혹은 만족하며 구매했던 물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반품을 하거나, 판매 회사, 제조 회사에 항의를 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물건을 왜 샀니" 라는 말을 듣기도 하죠. 때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구매 의사 결정을 내린 자기 자신을 비판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투표와 구매 행위는 다음 지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함량 미달의 후보에게 많은 유권자들이 표를 던지고 그를 당선시켰을 때, 그 후보의 해악은 표를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미친다는 점이죠. 박근혜를 뽑은 국민들이 겨울 내내 전국 각지의 광장에 나와서 박근혜를 권좌에서 몰아내기 위해 고생을 한 것이 불과 5-6년 전의 일입니다. 조금 더 멀리 가면, 자신들의 '소중한 한 표'를 던져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을 제1당으로 만들어주고, 히틀러를 총리에 취임시킨 1930년대 중반의 독일 국민들이라는 아주 좋은 예시 또한 있습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저는 도저히 여러분이 행사하신 한 표는 누구에게도 조롱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라는 말에 공감을 할 수가 없네요.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인생의 첫 선거를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로 치른 제게, 제 표의 행방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딱 하나였습니다. 어떤 정치 세력이 나로 ...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은 도쿄에서 살고 있습니다.
instagram @journey.to.modern.seoul
저 역시 2번을 선택한 한 표는 모두 조롱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계급에 따라 2번은 찍은 자들은 사회의 불평등이 더욱 공고해지기를 원하는 자들이고
부동산 때문에 2번을 찍은 자들은 개인의 탐욕과 국가의 미래를 바꾼 자들이고
지역에 따라 관성에 따라 2번을 찍은 자들은 지적 게으름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고
여가부 폐지 구호 하나를 보고 2번을 찍은 자들은 혐오를 위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자들입니다.
저 역시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이나'란 말엔 절대 동의하지 않으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무책임한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차별받지 않을 권리까지 찬반의 영역에 올리는 국민의 힘이
어떻게 정당으로써 가치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2번에 던진 한 표는 조롱받아 마땅합니다.
글에 한 개인의 진정성이 담겨있다면 그 주장하는 바의 찬반에 관계없이 마땅히 무시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글에 글쓴 분의 견해가 유려한 문장으로 진정성있게 담겨 있어 우선 존중의 말씀을 드립니다.
생각해보면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가장 커다란 원리가 "다수결의 원칙"일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것이 결코 소수의 희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해석됩니다. 오늘날의 사회와 국가는 너무나도 다양한 구성원들의 욕구가 넘쳐나고 있고 더구나 그 욕구들은 서로 충돌하는 형태로 존재하기 일쑤입니다. 따라서 위정자들은 한쪽의 말만 수용하여 그 입장만 대변할 수가 없고 상반되는 욕구의 적정한 타협점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이 어디인지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일 것입니다.
글쓴 분의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충분히 자유롭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후보를 찾으며 그것이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오직 그것만으로 후보선택의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조금 떨어져서 조망해보면 그것으로만 적합, 부적합을 따지는 것은 좀 성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성소수자분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수용여부와 관계없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즉 이런 문제도 다양한 후보 검증의 항목중 하나일 수 있으며 따라서 어느 사회가 어떤 후보를 선택함은 정말 다양한 욕구의 타협과정으로서 일단 어떤 후보가 선출되면 구성원 모두가 일단 수용하여야 할 것이며 그것이 민주주의가 지닌 운명일 것입니다. 물론 글쓴 분이 수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위와 같은 성소수자 문제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여러 면에서 선뜻 수용하지 않는 면이 있어 그분들이 생활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이 있겠지만 지나온 역사가 그래왔듯이 부단한 노력과 사회적 환기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전환과 제도개선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나마 이제는 많이 개선되어가는 추세고 인권 측면에서 이 문제를 보기 시작했으니 멀지 않은 장래에 뚜렷한 개선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바라건대는 그분들의 주장이 이 사회에 충분히 반영되어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아무리 다른 좋은 정책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예를 들어 "신 씨 성을 가진 사람은 결혼을 금지시키고, 모든 채용에서 점수를 깎으며, 임금은 30% 적게 준다"는 정책이 있는 후보라면 그 후보에 투표하실 수 있을까요?
소수자 차별에 동의하진 않지만 2번의 다른 정책이 좋아서 투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번에 투표를 한 순간, 그 정책을 위해서라면 소수자의 인권이 짓밟히는 건 괜찮다는 것에 동의한 것입니다. 아니면 나중에 챙겨주면 되니 앞으로 5년은 더 고통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거나, 그냥 그런 문제에 완벽하게 무관심했던 것이겠죠. 그렇다고 해서 이걸 "조롱"해도 되느냐는 생각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최소한 비판의 대상인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많이 공감하고 지지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식과 수준이 미치지 못하니 어떡하겠습니까?
포기하고 좌절치 않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서 한 걸음 나아가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공감합니다.
사과를 하는 사람과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은 큰 차이가 있는것같습니다.
그래도 민주당이집권할때마다 민주주의가 더 발전해가는 것을 체험했기에 민주당을 지지하며 응원했던 한사람으로 정권이 바뀌고 벌써부터 정책들을 뒤집으려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조금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더 낳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 있는 성장통이었다로 나중에 귀결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를 빌겠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오히려 특정 정당에 투표한 사람의 비율이 더 많지 않을까요?
특히 이번 대선은 코로나, 경제, 등등의 악영향으로 인한 국힘당의 반사이익의 산출물이 아닐까요?
또한 특정 공약 하나만을 보고 결정한 사람도 많지 않을까요?
아마도 해당 후보의 모든 공약에 찬성하기에 해당 후보를 찍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거"라는 "정치적 도구"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래도, 이왕 결과가 나왔으니... 여러가지로 힘든 대한민국 5년 잘 운영되었으면 합니다.
여러가지 면에서는 민주당 시절 대비 퇴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또 바뀌겠죠. 그래서 더 나아간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동안 고통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 입니다.
사람을 선택할때는 그사람이 살아온 과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 살아온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는지는 판단하는 것은 편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뒤돌아 17대 대통령으로 이명박씨가 되었을때
저는 그사람의 과거를 보고 나라를 회사운영하듯이 할것 같아 걱정이었습니다.
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씨가 당선되었을때
저는 여왕으로만 살아오고 대통령을 가업으로 여기는 사람이
시대를 역행하겠구나 걱정했습니다.
이 두 대통령에게 표를 주신 국민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 두 전직 대통령에게 표를 준것이 자랑스러우시냐고.
저는 이번 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전직 검찰총장이 걱정스럽습니다
평생을 무소불위의 기득권으로 살아왔고,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를
무시하고, 상명하복의 조직문화에서만 생활한 사람이 어떻게 국가
운영에 최종 결정권자가 될수 있을지.
17대 대선결과에서도, 18대 대선결과에서도 생각하지 않았던
"아~ 이민가야 할까?" 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머릿속에 "1년뒤 2번찍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겁니다" 라는
안철수 후보의 연설내용이 스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는..
한 정당이 하는 일의 결과가 모두에게 다 맞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정부의 사례를 봐도 한 정부가 모든 방향으로 긍정적으로 나가기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 같다고 보거든요. 하나를 잘하면 다른 하나는 그늘지고.. 그런것이죠. 그래서 외부로부터의 비판과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하는데 저렇게 허구헌날 원색적으로 서로를 생산성없이 비난해대는데 정상적인 토론이 가능할까 싶어요.
밖에서 오는 비판을 건전하게 수용하고 고민해서 취사선택하는 어른스런 모습의 정치인들이 보고싶습니다. 정당에 맹목적 헌신하는 정치인 말고, 내부로부터 자정능력을 갖춘 국익과 국민을 먼저생각하는 신념있는 그런 어른스런 정치인들이요.
지금은 뭐.. 다들 7~80년대 지역 건달들 같아요..
너무 좋네요
다른 사람들이 한 곳에서 여러가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에 박수~
궁금해서 글을 읽어 가다가 생각난 생각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지 못한 고민에 약간 낯선 느낌도 있지만 거북스럽지 않은 것은 나 스스로가 많이 변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가치관이 변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도 당신의 인생에 화이팅을 외쳐드릴게요 확고한 신념과 인생관이 너무 멋져서
@찰리 님
'여러분이 진정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차별받기 원하지 않는다면...'
찰리 님이 무슨 자격이 있어서 '진정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면' 같은 말씀을 하시는지요?
저는 선생님 같은 부류의 집단에게 인정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성소수자 총기난사 살해범들, 유럽의 극우 범죄자들이 찰리 님과 똑같은 의견을 펼치곤 합니다. "누굴 사랑하든 상관 없는데 법으로 보장받겠다고 하지 말아라" 라고 말이지요.
@찰리 ‘혐오할 권리를 인정해야한다’라는 말씀은 혐오와 차별 없이 행동한다는 얼룩소 행동강령에 위배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얼룩소 밖에서도겠죠.)
심지어 당사자라고 밝히신 글에 그렇게 말씀하시니 아주 공격적, 폭력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신고를 안할 수 없네요.
맨 처음의 댓글 때문에 가입했습니다
맨 첫 댓글에 성소수자 대신 유색인종, 장애인, 여성을 넣어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우스운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흑인도, 장애인도, 여성도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누려야 하지만, 그들을 혐오할 권리도 있지 않나요?
그들이 우리와 같은 법적 권리를 갖는 것에 반대합니다
이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약 님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지상주의자라서 나는 저런 발언을 한다고 주장한다면 더 이상 뭐라 할 말은 없는데, 다만 현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이를 포용할 수 없을겁니다…
그리고 성소수자를 생각해준다는 말의 근저에 있는 차별과 혐오가 어떤 의미인지를 좀 생각해주시길 바라고, 단어 하나하나에 인권감수성이 없다… 는 것은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덧붙여…
우리 인류의 역사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많은 혐오와 싸워온 투쟁의 역사임을 알아주세요
첫댓 얼룩소에서 본 글들 중 가장 역겹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저 역시 2번을 선택한 한 표는 모두 조롱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계급에 따라 2번은 찍은 자들은 사회의 불평등이 더욱 공고해지기를 원하는 자들이고
부동산 때문에 2번을 찍은 자들은 개인의 탐욕과 국가의 미래를 바꾼 자들이고
지역에 따라 관성에 따라 2번을 찍은 자들은 지적 게으름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고
여가부 폐지 구호 하나를 보고 2번을 찍은 자들은 혐오를 위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자들입니다.
저 역시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이나'란 말엔 절대 동의하지 않으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무책임한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차별받지 않을 권리까지 찬반의 영역에 올리는 국민의 힘이
어떻게 정당으로써 가치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2번에 던진 한 표는 조롱받아 마땅합니다.
아무리 다른 좋은 정책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예를 들어 "신 씨 성을 가진 사람은 결혼을 금지시키고, 모든 채용에서 점수를 깎으며, 임금은 30% 적게 준다"는 정책이 있는 후보라면 그 후보에 투표하실 수 있을까요?
소수자 차별에 동의하진 않지만 2번의 다른 정책이 좋아서 투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번에 투표를 한 순간, 그 정책을 위해서라면 소수자의 인권이 짓밟히는 건 괜찮다는 것에 동의한 것입니다. 아니면 나중에 챙겨주면 되니 앞으로 5년은 더 고통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거나, 그냥 그런 문제에 완벽하게 무관심했던 것이겠죠. 그렇다고 해서 이걸 "조롱"해도 되느냐는 생각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최소한 비판의 대상인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찰리 성소수자를 혐오할 권리 따윈 없습니다. 차별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것도 없구요. 존재하는 건 혐오를 혐오할 수 있는 권리와 차별을 주정하는 사람을 차별할 권리뿐입니다. 댓글이 너무 불쾌해서 가입까지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자유가 혐오와 차별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는지, 어처구니 없습니다.
위근우 칼럼니스트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에서 제시했던 논지와 상당히 일치하는 입장이실 것 같습니다. 해당 도서의 저자는 중립과 공정이라는 미명 하에 혐오세력까지 인정하고 존중할 것이 아니라 하루속히 공적인 영역(특히 중립적인 공론장)에서 축출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라고 말합니다. 직접적으로 밝히시지는 않았더라도 글쓴 분께서도 행간에서 이런 관점을 가지고 계시는 듯하여 연결지어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를 갖고 계신 분들을 적잖이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의 논의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존중하자" 와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자" 가 뒤섞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즉 원글에서 주장한 것은 전자인데, 김영준 님께서 반론하실 때에는 후자의 의미로 잘못 받아들이신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억압을 유지시키는 생각에 대해서는 통렬한 비판을 가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경멸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김영준 님께서 조금 더 강한 입장을 갖고 계신다면 "그들은 존재까지도 조롱당해야 마땅하다" 까지도 나아가실지 모릅니다. 혹은 "사회적 약자가 강자에게 가하는 조롱은 조롱이 아니라 단말마의 절규로서 해석되어야 한다" 와 같은 윤김지영 류의 관점까지도 공유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한 제 답변은, 한번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들에 대해서 '우리 속의 너' 가 아니라 '그들 중의 너' 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차별주의자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게 될 것이겠고요. (제가 배운 바가 맞는다면,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크거나 작게 차별주의자입니다.) 사회는 깨질 것이고, 어딘가에는 불행한 평등주의자들의 율도국이 세워지게 될 겁니다.
"난 이번 대선에서 2번 찍었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눈이 뒤집히고 뚜껑이 열린다면, 그건 그 상대방을 '우리 속의 너' 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대번에 헛구역질이 올라오면서 그 근처에 가까이 가기도 싫어진다면, 그 상대방을 '그들 중의 너' 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헛구역질이 일으키는 심리적 반응은 축출이고 멸절이며 제거입니다. 마치 가래침을 뱉듯이 우리 사회에서 그들을 추방시키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강자이니, 추방당할 리가 없습니다. 결국 절이 싫어서 떠난 중들의 율도국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2번 찍은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을 존중하자 말자" 식으로 논의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 일부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에 찬동하거나 비판하자" 식으로 논의가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요원해 보입니다. 이번 얼룩소 기획에서 '이대남' 이니 '2번' 이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그들" 이라는 대명사로 호명되는지 살펴본다면,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들을 "그들" 로 부르는 이 분위기 자체가 하나의 연구거리처럼 보입니다.
@상상 님께
정중한 답글 감사드립니다.
먼저 2번의 정치세력이 저를 포함한 수 백만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며 비국민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면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굳이 '조롱' '비난' 같은 단어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간단한 문제입니다.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 하는 정당에 표를 주고 그 의사결정을 자랑스럽게 표출할 베짱이 있다면, 그 혐오와 차별을 오롯이 받아낼 이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리라는 각오 또한 당연히, 논리적으로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혐오와 차별에 한 표를 던지는 행위를 비난하는 것이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면,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정치 집단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의 의사표현 또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성소수자 문제의 경우 저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관련 포스팅도 썼는데요, https://alook.so/posts/8WtBx7) 동성애를 반대한다라는 사람이 동료 시민의 존엄성을 없는 셈 취급하는 사람이라는 발언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표를 조롱받아야 한다는 것은.. 좀 슬프기는 하네요.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조롱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먼저 다가서야 할텐데요. 모두에게 부족한 점은 있고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해야지 조롱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더 깊어지지만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 씁쓸한 글이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