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물들이기, 이게 오리지널!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4/08/20
딸아이가 딴 봉숭아꽃- 봉숭아는 꽃과 잎, 줄기에도 색소가 있다고 한다. ⓒ콩사탕나무

"엄마, 아라가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왔는데 너무 예쁘더라. 나도 하고 싶어!"

요즘 부쩍 외모에 관심이 커진 딸아이가 하교 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봉선화(봉숭아)는 어렵지 않게 마주치는 친숙한 꽃이었다. 당시 살던 동네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앞집 영수네 밥숟갈이 몇 개인지, 뒷집 은희네 할아버지 제삿날이 언제인지 모르는 이웃이 없었다. 사생활이라고는 없는 시끌벅적한 동네 분위기를 떠올리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도 은근한 그리움이 몰려온다.

요즘 같으면 절도죄로 잡혀갈지 모르지만 그땐 담벼락 아래에 핀 봉숭아꽃을 따가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곱게 찧은 봉숭아를 작은 손톱에 올리고 헝겊을 감싸 명주실로 친친 감아주던 엄마는 아마 지금 내 나이쯤이었을 것이다. 자다 일어나면 몸부림에 달아난 꽃 반죽이 손톱 대신 이불을 물들이기 일쑤였다. 언니, 동생과 알록달록한 꽃을 따던 기억, 친구들과 첫눈이 올 때까지 꽃물이 남아있을까 내기했던 것을 떠올리니 가슴이 몽글몽글해졌다.

가성비 좋은 '봉숭아 물들이기'

추억팔이도 잠시, 당장 아이가 찾는 봉숭아꽃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다이소에서 파는 '봉숭아 물들이기'로 하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다이소 봉숭아 물들이기는 가성비 좋은 천원의 행복으로 유명했다. 봉숭아꽃을 딸 필요도, 밤새 손톱 위에 꽃을 올려놓을 필요도 없이 물에 갠 가루 반죽을 손톱에 올려 10분에서 30분만 기다리면 완성이다.

딸은 사주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나를 보챘다. 아이와 마법(?)의 가루를 사기 위해 다이소에 들렀다.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손바닥보다 작은 마법의 가루를 보니 세상 참 편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다가오는 미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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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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