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13살 인생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06/16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명화언니를 따라 양옥집 대문으로 들어서는데, 한 쪽으로 나 있는 건물 계단아래 저 글이 눈에 띄었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끈이 긴 가방을 메고 한손엔 두꺼운 책과 노트를 가슴에 껴안은 명화언니 뒷모습은 누가 봐도 대학생이다. 생기발랄하고 명랑한 명화언니를 따라 들어간 공장은 의외로 너무 소박했다. 가내수공업에서 한 단계 발전한 형태의 병뚜껑 공장이었다.


학교를 자퇴하고 맹숭맹숭한 매일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때쯤이었다. 동네 명화언니가 ‘너 심심한데 나랑 같이 공장에 다닐래?’하고 말을 건넸다. 언니는 열아홉 살이다. 언니는 바라만 봐도 야생마처럼 요동치는 에너지가 팍팍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아침나절에 느지막이 일어나 물통을 들고 우물가로 내려가다 보면 이따금 출근하는 그녀 모습이 보였다. 통통한 몸매에 어깨에 닿는 까만 생머리, 어쩌다 언니를 보면 마주친 눈이 확 커지다 이내 반달눈이 되어 까륵까륵 잘 웃었다. 게다가 입술엔 노란빛이 섞인 주홍빛 립스틱이 잘 읽은 열무김치국물 같아서 나는 명화언니를 볼 때마다 한여름 열무국수가 떠올랐다. 명화언니는 하릴없이 집에만 있는 내가 좀 어리긴 해도 데려다놓으면 그런대로 써먹을 만 했나보다. 


공장 지하실에서는 프레스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우리가 일하는 위 층에도 살짝 울렸다. 철커덕 척, 철커덕 척... 프레스기계가 한번 씩 지날 때면 은색 알루미늄 판에서 병뚜껑 처음의 형태가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기계 앞엔 명화언니 또래의 오빠들이 세 대의 기계 앞에 한사람씩 앉았다. 그들의 집중하는 모습은 수술하는 환자를 대하는 의사만큼이나 엄숙하기까지 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손가락 하나가 잘려 나가는 안전사고가 나는 현장이었으니까.


공장에서 일하는 건 그런대로 괜찮았다. 명화언니 뒤를 따라 쭈볏대며 어리바리한 처음을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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