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리아의 딸들> : 미러링의 시초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0/21
알라딘 도서 미리보기 캡처


창조된 세계 


원래 그런 세상은 없다. 수렵과 채집이 중심이었던 구석기 시대에는 원활한 식량 조달을 위해 공동체 생활을 했다. 여성의 역할이었던 채집 활동이 남성이 맡은 수렵 활동 보다 중요해서, 재생산력과 경제력 모두 여성이 주도권을 잡았다. 여성은 원하는 남성들과 관계를 맺었고, 아기를 낳아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따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확실했기에, 공동체는 모계 사회로 자리매김했다. 약 70만 년 동안 여성들은 먹이고, 양육하며 인류의 번영을 이끌었다. 

1만여 년 전,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면서 판도가 뒤집혔다. 농업과 목축이 발명됨에 따라, 신체 노동에 유리했던 남성들의 영향력이 커졌고, 공동체 생활은 '가족 단위'로 재편되었다. 잉여생산물을 두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패권 싸움이 벌어졌다. 승자는 권력을 얻었고, 사유재산과 위계 질서가 확립되었다. 식량 확보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지자 인구가 급증했다. 곧 씨족 사회에서 부족 사회로, 부족들을 통일한 군장국가에서 왕정국가로 이행하며 군사력이 중요해졌다. 남성들이 막강한 전투력을 이용해 세상을 독점할수록, 여성이 설 자리는 사라져갔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 이번엔 기술을 기점으로 사회 · 경제 구조가 바뀌었고, 노동 현장은 농장에서 공장으로 옮겨갔다. 사람들은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부가 가치 생산에 유리한 지적 능력이 육체적 힘을 압도했다. 다시 한 번 세상이 뒤집히면서, 여성들은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요구하며 목소리 내기 시작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는 매우 가변적이며, 가부장제 또한 창조된 세계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갈리아의 딸들」의 저자 게르드 브란튼베르그는 이러한 맹점을 적확히 파고든다. 그는 가상의 국가 '이갈리아'를 통해 지배와 억압, 차별과 배제는 기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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