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치매를 넘다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04/08
그래픽노블<주름> - 사진. 살구꽃
 욕실에서 낙상한 아버지가 수술 후, 중환자실에 옮겨졌다.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병원을 드나들었다. 잠깐 나를 알아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딸이 점점 이뻐지네. 이제 시집 가두 되갔구나야~."
   
나는 그 말에 애매하게 웃었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혈혈단신 월남했다. 감정이 상기될 때 나오는 아버지 평안도사투리에 콧등이 시큰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아버지는 중기 정도의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다.

   *
<주름>은 스페인 작가 파코 로카의 글과 그림으로 된 만화이다. 색감 자체가 잘 다져진 편안함을 주지만 전개되는 이야기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편치 않음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늙음. 그 노화의 과정에서 <주름>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환자들의 인생 의미를 묵직하게 묻는다. 전직 은행지점장이었지만,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린 에밀리오가 아들며느리에 의해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아들부부가 입원수속을 받는 동안 에밀리오의 마음은 어린 시절, 전학 간 낯선 교실에서 '엄마랑 집에 가고 싶은' 속마음과 겹친다. 
   
에밀리오는 평생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고, 개 한 마리 키워 본 적 없는 독신 미겔과 같은 방을 쓴다. 미겔은 요양원에서 치매에 걸려 정신없는 노인들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모은다. 솔레 부인은 멀쩡한 자기가 요양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화를 걸어 아이들한테 자기를 데려가라고 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종일 돌아다닌다.
   
미겔은 그런 솔레 부인한테 면회실에 가면 전화를 할 수 있다면서 요금을 받는다. 창가에 앉으면 이스탄불에 가고 있는 줄 아는 로사리아 부인한테도 검표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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