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천만영화가 부끄럽다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3/29
어느 일본영화 한 편을 떠올린다. 터널을 뚫는 공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인부들이 갑자기 병에 걸리고 사고를 당하는 일이 거듭되며 공사장에 귀신이 떠돈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급기야 어느 날엔 야간 당직자가 산중에서 내려온 곰에게 몸을 찢긴 채 죽은 시체로 발견돼 난리가 난다.
 
아무리 대비해도 사건이 거듭되자 업체는 지역 사찰의 도력 높은 스님과 영험한 무녀에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 의뢰한다. 그로부터 진실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니 백여 년 전 터널을 공사하던 자리에 조선인 촌락이 자리했고 누군가가 몰래 관 하나를 묻어놓았다는 것이다. 스님과 무녀가 그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관을 열고 정령 하나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한다.
 
붉은 옷차림에 걸을 때마다 방울 소리를 내는 정령은 스님과 무녀 앞에서 도가의 술법이며 유가의 학문에 정통한 듯한 모습까지 보인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자신은 임진년 전쟁에서 활약하고 평생 문무를 깊이 수양한 인물이며, 죽은 뒤 수백 년이 흐른 뒤에 누군가 관을 파서 일본의 이 땅에 주술을 걸어 묻어두었다고 전한다.
 
자, 그렇다면 한국인 가운데 이를 이름 없는 가상의 귀신쯤으로 여기고 넘어갈 이가 몇이나 될까. 또 이를 영화가 얼마든지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로 별다른 문제가 없는 설정이라 여길 이가 과연 있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 파묘 포스터 ⓒ 쇼박스

<파묘> 속 정령, 떠오르는 일본사 속 인물

오컬트로는 전무후무한 천만영화 <파묘>를 보고서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단순하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설정에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꽤나 잘 쌓아올린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이 영화 가운데서 무례하고 무책임한 모습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일본의 귀신은 그저 창작된 가상의 인물만이 아니다. 역사를, 또 일본에 대한 지식을 폭넓게 가진 이라면 반드시 하나의 이름을 떠올릴 밖에 없을 특정된 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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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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