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적(的)’ 내쫓기

손의식
손의식 · 우리 말글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
2024/03/25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내 첫 직업은 기자였다. 그때 선배한테 얼차려를 받으며 배운 게 있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을 잡아라!” 이게 뭔 도깨비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어리바리한 나는 당최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었다. 한참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너무 자주 쓰는 ‘’, ‘’ 그리고 ‘’, ‘’을 잡아서 좀 줄이라는 소리였다.

▶탈 많은 '적'부터 잡기

가장 나쁜 버릇은 ‘학문적, 학제적, 전제적’처럼 ‘적’을 함부로 붙이는 일이다. 유식을 뽐내는 사람들 가운데는 문맥과 관계없이 지나칠 정도로 쓰고 있다. 이게 문제다. 글을 쓴다는 건 지식인이라는 뜻이고, 그렇다면 올바르게 글을 이끌어 가야 하는데 되려 망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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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쭙잖은 지식인이 닳도록 쓰는 ‘-적’은 일본에서 난 사생아로서 굳이 안 써도 되는 말이다. ‘사회적이자 현상적의 함의적인 것들’처럼 괴상하고 우스운 말을 써서 알기 어렵게 하고 쓸데없는 권위를 내세우고 있다. 글이 어려워야 유식하다고 여기는 학자들 때문에 이게 뿌리 박혔다. 말 많고 탈도 많은 ‘–적’부터 살펴보자.
   

‘-적(的)’의 불편한 사실

고운 우리말에 많은 ‘적(的)’이 있다. 겉멋 부리며 무게 잡으려고 쓰는 학술적, 철학적 따위의 우리말 ‘적(敵)’이다. 한자 명사 뒤에 붙는 이것은 ‘그 성격을 띠는’, ‘그에 관계된’이란 뜻을 갖는 뒷가지(접미사)이다. 우리말 ‘-스런’, ‘-다운’, ‘-같은’ 따위와 같다.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뒷가지이지만, 문제는 이를 버릇처럼 자주 쓴다는 점이다. 

안 붙여도 얼마든지 뜻을 알릴 수 있는 낱말에 꼬리표처럼 붙여 글을 사납게 만든다. 한술 더 떠서 순우리말에도 ‘생각적’, ‘마음적’처럼 ‘–적’을 서슴없이 붙인다. 한자에나 써도 될동말동하는데, 깨끗한 우리말에 함부로 붙여 말법을 깨뜨린다. 어디 그뿐이랴. ‘디자인적’, ‘이데올로기적’처럼 외국어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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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에서 언론학, 뉴욕대(NYU)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하고, 용인예술과학대 교수로 일했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바른 논문 쓰기를 가르쳤고, 퇴임 후 이런저런 책을 쓰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과 영어로 일하지만 ‘우리말 바로 쓰기’에 더 큰 뜻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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