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흑)역사와 퇴고 예찬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1/26
  글을 얼마나 오랫동안 써왔냐고 누가 물으면, 쥐구멍 같은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흑역사를 공개해 보자면, 진짜 시작은 인터넷 고무신 카페에서였다. 이십대 초반 당시 절절히 사랑하던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시름시름 앓던 나는, 동병상련을 느끼기 위해 한 고무신 카페에 가입했다. 고무신은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동향만 파악했다. 그런데 보다보니 게시글 중 흥미로운 시도가 눈에 띄었다. 남자친구와의 연애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읽다보니 재미도 있었지만, 나도 써볼까 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글이라고는 중고등학교 방송부 활동을 하며 쓴 방송 멘트가 고작이었는데,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이 싹 텄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렇게 뜬금없이 나의 연애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익명이었고 등장인물 또한 가명이었으며, 늘 옆에 있다 사라진 남친 때문에 마음도 헛헛하던 터라 신나게 글을 써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일필휘지였다. 퇴고가 뭔지 모르니 그저 쭉쭉 써나갔다. 나름 소설 형식이었고 재밌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원래 사연에 쫄깃한 양념도 좀 쳐가며 글을 썼다. 꽤 오래 연재를 했고, 인기도 좀 있었다. 댓글도 많이 달리고 조회수도 높은 편에 속했다. 내 생애 최초 연재 소설이었다. 이걸 공식적으로(?) 글에 언급하는 건 처음인데, 그게 이십 년 전 일이다.

  이십 년이라면 대하소설 하나 정도는 써야할 것 같지만, 그곳에서 두 편 정도 연재소설을 쓴 뒤(이전 남친과의 연애 이야기도 썼다가 당시 남친이랑 대판 싸웠...) 더는 쓰지 않았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후 나는 의도치 않게 다른 글쓰기에 돌입한다. 언론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매주 현안에 대한 논술을 썼다. 영 나와 맞지 않는 글쓰기였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너무나 파편이었고, 그 파편들을 붙잡고 생전 써보지도 않았던 종류의 글을 쓰려니 도무지 써지지가 않았다. 그 시절 처음 합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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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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