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아도 상관없는 단상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4/09/25

1. 금요일 저녁엔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졌다. 토요일 아침까지 이어지던 비가 주춤하고 나서야 외출했다. 딸아이의 다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집이 생겨 피부과에 다녀왔다.

허리까지 자란 코스모스가 밤새 쏟아붓던 비에 볼품없이 꺾여 있었다. 초여름 담벼락 아래 씨를 뿌렸던 코스모스다. 먼지 같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닿을 수 없는 하늘을 향해 하얗고 분홍의 바람개비 같은 꽃을 피웠다. 일찌감치 가을이 오고도 남았을 시기에.

빗물을 잔뜩 머금은 꽃잎은 하늘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채 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집 밖을 나서다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고, 내 눈길을 사로잡은 처연한 꽃 한 송이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한 손으로 우산을 받치고, 한 손에 든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갖다 댔다. 불편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차에 탄 남편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차창 밖을 내다 봤다. 세상엔 때로 이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
쓸쓸한 코스모스 ⓒ콩사탕나무


2. 비가 온 탓인지 기온이 뚝 떨어졌다. 다음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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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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