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일휘
연하일휘 · 하루하루 기록하기
2023/12/04
내가 경험한 가난을 세상은 가난이라 부르지 않았다.

나에게는, 우리 가족에게 '가난'이라는 명칭은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렸을 때 붙을 수 있었다. 우리 집과 차. 오래된 이 두 가지는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병원비로 집도 차도 다 팔고 여섯 식구가 단칸방에 들어가면. 아마 그때쯤 학비라도 지원해주려나."

가로등이 깜빡거리며 작은 불편함을 자아냈다. 야자가 끝나고 친구와 함께 어두운 길목을 걸어가는 시간, 어둠 속에서 채 번지지 못한 불빛이 친구의 머리카락 위로 내려 앉았다. 그때 친구의 표정은 어땠었지. 삶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마다, 그저 옆에서 들어주는 그 친구 덕에 간신히 숨을 이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힘든 일들이 모두 내게 찾아온 것마냥, 뒤늦은 사춘기는 몇 번이나 나를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닌, 힘든 일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며 분기마다 내야 하는 3-40만원 정도의 학비가 부담스러웠다. 점심 급식과 저녁 급식까지, 그저 학교를 다닐 뿐이지만 그 금액들이 어린 나의 어깨를 짓눌렀다.

수입보다 병원비 지출이 커져갈 때쯤, 아버지는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어머니가 대신 식당일을 시작했다. 4남매를 키우며 아버지의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반복하였다. 다른 욕심을 부릴 수 없었다. 저녁 급식을 포기하고, 수학 여행을 포기하고. 그러다 버스를 포기하고 걷기를 선택했다. 매일 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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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걸 좋아하지만 잘 쓰진 못해요. 사교성이 없어 혼자 있는 편이지만 누군가와의 대화도 좋아해요.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픈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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