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을 죽인 날과 아름다운 밤-김부남 · 김보은 사건(1991~1992)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1/11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다" 김부남의 호송 장면. 출처-경향신문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1991년 1월 30일 서른 살의 김부남은 아홉 살 때 자신을 성폭행한 이웃집 남자를 찾아가 칼로 찔러 죽였다. 1992년 1월 17일 스무 살의 김보은은 아홉 살 때부터 자신을 강제추행 및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남자친구와 공모해 살해했다. 사건 현장에서 체포된 김부남은 징역 2년 6개월 치료감호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김보은과 공범 김진관 역시 각각 징역 3년형과 5년형을 언도받았다.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들이었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받았다. 심지어 이조차도 과도하다며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수임료를 받지 않고 변호사 수십 명이 달려들어 이들을 변호했다. 김부남과 김보은이 결국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딱한 사연과 처지가 알려진 뒤에는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탄원 서명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들을 극악무도한 살인범으로만 보아선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김부남과 김보은은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인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가혹한 성적 학대와 성폭행 피해를 입은 피해자였다.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출두하는 김보은의 모습(『경향신문』, 1992년 7월 1일)
   
아동 성폭행 트라우마가 일으킨 살인 – 김부남 사건의 진상
   
김부남은 오랫동안 두통을 앓았다. 곁에 사람이 오는 것도 싫었고, 늘 무기력했다. 결혼 후에는 남편과의 관계도 원만치 못했다. 남편과도 부부관계를 맺지 못했다. 동침만 할라치면 그날의 끔찍한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치며 거부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21년 전 전라북도 남원에 살던 때, 이웃집 아저씨는 아홉 살의 어린 김부남을 데려다 이곳저곳을 만지고 강간했다. 그날 이후 김부남은 평생 불안증과 성적장애를 갖게 됐다. 끔...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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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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