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난 언제 쉬지?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03/17


 *
결혼하면서부터 다양한 일들을 해왔다. 한 가지 일에 길게는 10년, 아주 짧게는 당일 설거지 알바도 했다. 여러 지역을 오가며 열다섯 번의 이사를 했다. 그 때마다 해오던 일은 마디가 끊어지듯 이어지지 않았다. 지속성이 없었다. 아이들이 초·중등일 때는 교육관련 시민단체에서 잠깐 머물렀다. 사는 곳이 또 바뀌자 초등아이들 대상으로 공부방을 했다. 먹을거리 문제로 관심을 갖으며 ‘생협’ 활동가가 되기도 했다. 일은 모두 찾아서 지원했고 일하면 월급이 나왔다. 월급은 생계의 요긴한 덕목이었다. 거처를 옮길 때마다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쉴 틈이 없었다.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일하게 됐을 때 텃새의 분위기를 느끼며 사람들 관계에서 위축되기도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애매모호함에 맞서 원칙을 말하면 그게 아니라~하면서도, 근거를 들이밀면 여긴 원래 이렇게 해왔다고 표정이 바뀌는 걸 봤다. 
   
일의 특성상 아이들을 모아 ‘농사학교’ 현장을 가는 1박2일이 정기적으로 있었다. 밭을 일궈보고 씨를 뿌려 싹이 나고 꽃이 피면서 열매를 거두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컴퓨터 화면을 하루 종일 바라보며 일하는 시스템은 목 디스크를 불러왔다. 약을 먹고 통증을 견디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시골로 농사학교에 가는 그때부터가 내겐 쉼이었다.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이 환해지고 머릿속에 안개가 걷히며 눈이 맑아졌다. 

아이들은 초등학생 전체학년들로 구성되었다. 7-8명씩 한 조가 된 아이들 30여명이 모였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키에서부터 말하는 것, 몸짓이나 행동, 힘쓰는 것 모두 달랐다. 한 조를 담당하며 아이들과 같이 움직였다. 
   
굳이 멍석을 깔지 않아도 드넓게 펼쳐진 들과 밭은 아이들의 무대가 됐다. 씨감자를 심고 흙을 덮으며 물을 주는데 힘이 달리는 저학년 아이를 고학년 아이가 도왔다. 농사활동에 경험이 있는 고학년이 선생이 되어 저학년 아...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