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갖고 싶다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5/24
부엌의 식탁과 카페의 카운터, 나의 책상이다.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펼치거나 책을 읽는 곳이다. 완전한 책상이라기에는 임시방편의 공간이다. 나의 일상을 파고든, 글의 자취가 스며있는 공간이랄까. 그러다보니 나의 책장도 책상 못지 않게 좀 엉뚱하다. 식탁 뒤편의 작은 김치냉장고 위나, 카페 카운터에 있는 간이의자가 내게는 책장이다. 책장이라기엔 자주 들춰보는 책을 올려두는 선반 정도의 용도랄까. 평소 읽든 말든 책을 잘 보이는 곳에 많이 쌓아두는 편이라, 내 주변에는 늘 서너 권의 책이 이런 임시 선반에서 뒹굴고 있다.

부엌의 식탁은 원래 목적이 책상이 아니라 식사이니, 끼니 때가 되면 비워져야 한다. 노트북을 고이 닫아 옆으로 옮겨두고, 그 자리에 반찬들을 늘어놓고 식구들과 밥을 먹는다. 카페 카운터는 서서 드립하기에 알맞은 용도로 만든 것이다 보니 높이가 일반 책상에 비해 높다. 여기서 글을 쓰다 보면 엉덩이는 뒤로 쭉 빠지고 목은 앞으로 빼꼼 들어올린 상태가 된다. 잔뜩 찻잔이 드나드는 바쁜 시간에는 이 곳의 노트북도 고이 닫아 간이의자로 치워진다. 얼마 전 간이의자에 있던 노트북을 들어올리다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행히 고장나진 않았지만, 순간 좀 서러웠다. 책상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러면 이렇게 옮겨다닐 필요는 없을 텐데.

책상을 갖고 싶다. 간절히. ©️unsplash


며칠 동안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 했다. 더 정확히는 하고 싶지 않았다. 거의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0개월쯤 되었는데, 그동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카페에 머무는 것도 숨이 막혔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었다. 읽고 쓰기에 나의 일상을 유지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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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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