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주 정착기 3
애증의 섬, 제주 2
이사온 지 얼마 안 돼 앞집 삼춘이 툭 말을 뱉으셨어요. 4.3때는 숨소리도 못냈어. 나는 어린 애였는데도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 숨도 못 쉬고 꽁꽁 숨어있었지. 숨소리라도 낸 사람은 다 죽어나갔으니까. 그때 어렴풋이 4.3이 지나가지 않은 제주의 땅은 없구나, 문득 깨달았어요. 4.3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속내를 알지는 못하던 때였어요. 이후 직접 사건을 알아보았죠.
소설 순이삼촌, 영화 지슬, 최근에 나온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모두 제주 4.3을 다룬 작품들이에요. 4.3은 아직 정의내리지 못한 사건이에요. 광주 뒤에는 민주화운동이, 4.19뒤에는 혁명이 붙어있지만 4.3은 그 어떤 것도 붙어있지 않아요. 그저 사건이죠. 4.3사건. 아직 정의할 수 없으니까요. 7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렇죠. 가해자를 제대로 규명한 적도, 그나마 밝혀진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한 적도 없고, 피해자 규모도 여전히 불분명 하죠. 당시 제주도민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것만 어렴풋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어요. 제주도민 전체를 좌익으로 몰고가 어린애부터 임산부까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죽여버린 비극이에요. 그 당시 제주는 지금보다도 훨씬 고립된 섬이었죠. 그 갇힌 공간에서 마주한 공포가 어땠을지 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어요.
4.3의 상처는 제주 곳곳에 아직 남아있어요. 이 집과 저 집의 제삿날이 같고, 생존자분들이 적은 수이지만 아직 살아계시죠. 요즘도 제주 지역뉴스에는 자주 4.3이 등장해요. 4월이 되면 모든 학교에 4.3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플래카드가 걸리죠. 지역 방송에서는 생존자들의 인터뷰도 종종 나와요. 이분들의 이야기를 잠시만 듣고 있어도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 수 있어요. 그 역시 전체 사건의 일부분이겠지만요.
알아볼수록 믿기지가 않았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이렇게 잔인한 역사가 있었던가. 누가 이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아물 수 있는 상처가 맞나. 정말 많은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