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자유의 역설

빅맥쎄트
빅맥쎄트 ·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먹은만큼 행복하다
2023/06/30
급한 일은 없지만 일찍 눈을 뜬다. 꽉 막힌 출근길과 실적부진 회의가 아닌, 시속 10km의 가벼운 러닝으로 맞이하는 아침은 피곤함이 아닌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 하루종일 책만 읽을 때도 있고, 아무것도 않으며 하루를 탕진하기도 한다.

5분 만에 허겁지겁 마시던 점심은 먹고 싶을 때 느긋하게 먹는 품격 있는 식사로 바뀌었다. 스마트폰에 구속당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폰이 없어도 지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누군가는 너무 바빠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가끔씩은 너무 긴 하루가 지겨울 지경이다.

6개월을 쉬었더니 슬슬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나는 과연 직장인인가 백수인가. 쉬는 동안 회사 사람들을 몇 번 만났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을 보는 듯 나를 바라본다. 사이비교주를 바라보는 신도의 절박함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1분 정도 나의 새로운 일상을 듣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치 자신의 삶이 바뀐 것처럼 행복함을 느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당장 사직서를 던질 기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육체와 영혼을 갉아먹는 직장이지만, 그만둔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쉬어서 좋기만 할까? 천만에. 당장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국가에서 약 100만 원의 지원을 받는다. 무척 감사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기존에 월 400만 원을 벌었다면, 300만 원을 사전에 확보해둬야 한다. 마이너스 통장 잔고를 더 확보하든, 적금을 깨든, 집을 팔든, 배우자를 일터로 보내든, 어떻게든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도록 세팅을 해야만 한다.

멘탈관리도 쉽지 않다. 직장인으로서의 가장과 백수 가장은 무게감부터 다르다. 일을 할 때와 쉴 때, 아내가 나를 대하는 것이 동일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나는 다르게 느낀다.

행복한데 불안하다. 편한데 마냥 편하지가 않다. 쉼이 지속되기를 바라면서도, 일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내가 보고 듣고 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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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 22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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