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켜고 뉴스를 보다가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올 때가 종종 있다. 최근엔 ‘전장연(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과 관련된 기사들을 보며 자주 한숨을 쉬었다. 한숨은 기사가 전하는 내용의 부족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밑으로 달리는 댓글들 때문이기도 하다.
“출퇴근길 직장인 볼모”, “원시적 불법 시위”, “비문명”…….
세상 사람들은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되도록 아침엔 뉴스를 켜지 않는 편이다.
‘세상 사람들은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라는 나의 질문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또 많은 맥락을 생략하고 있다. 누군가는 내 이런 질문을 읽자마자 내가 아침에 뉴스를 켜지 않는 이유에 공감할 것이고, 누군가는 ‘왜?’라고 묻게 될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정반대의 이유로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 그 자체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판단한다. 그러한 판단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고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그러니 그러한 ‘앎’은 한편으로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벽이 된다. 그러나 이 벽은 동시에 우리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차단하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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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몇과 한 친구의 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즐거운 기억인데, 식사 시간만 되면 함께 놀러 간 친구들 중 한 명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문제는 김치였다. 할머니의 손주인 친구에게, 혹은 다른 집 김치 맛에 인류학적(?) 흥미를 느끼는 나에게 그 맛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다른 한 친구에게는 그것을 먹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집 김치가 ‘역하다’는 이유였다. 김치가 무슨 대수라고, 안 먹으면 그만일 수 있겠으나 가족 고유의 음식을 거절하는 일은 때로 그 가족을 거부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