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 "한국 문화의 트렌드를 꿰뚫는 단어는 OO"
2024/04/15
『혼종의 나라』는 예술이 우리의 일상과 교차하는 지점을 읽어 온 문소영 문화저널리스트가 한국 문화를 ‘혼종’이라는 콘셉트 아래 7개의 키워드로 구분해 바라본 책이다. 문소영 작가는 개인과 세대, 나아가 우리 사회와 전 세계가 열광하는 한국의 문화의 트렌드를 꿰뚫는 하나의 단어로 ‘혼종hybrid’을 꼽는다. 탈식민주의 학자 '호미 바바'는 제국의 영향을 받은 식민지 문화가 다양성과 잠재력을 키워 결국 문화 권력을 전복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데 이 개념을 사용했는데, 문소영 저자는 이를 한국 문화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소환해 우리를 둘러싼 사회 곳곳의 문화적 현상을 명쾌하게 분석해낸다.
<얼룩소>에서 문소영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 대체 왜 이토록 유행할까
예술, 그림에 관한 책을 주로 써오셨어요. '혼종'을 주제로 책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혼종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다양한 문화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쓰다 보니 그것들이 모두 혼종성을 갖고 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죠. 『혼종의 나라』의 가제는 이 책의 바탕이 된 신문 연재물의 제목인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였어요. 다소 무미건조한 제목이라서 뭔가 강렬한 제목을 찾았는데 제 글 대부분이 결국 혼종성에 대한 이야기더라고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K컬처는 물론이고 우리가 ‘전통’이라고 여기는 것들도 실은 서구화, 근대화의 영향과 결합해서 혼종성을 띠는 것이 많아요. 제 글은 그걸 파헤친 게 많고요. 또 ‘돈 자랑으로 돈벌이’하는 유튜브 콘텐츠라든가, 가족 ‘손절’과 가족 보존의 충돌하는 욕망을 담은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웹 소설, TV리얼리티 쇼, 법 제도라든지, 많은 이야기들이 유교적, 공동체주의적 가치관과 개인주의적 · 자유주의적 가치관이 혼재하고 충돌하는 상태에서 나왔더라고요. 한국에서 개인주의 · 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퍼진 건 산업화와 민주화가 완수 된 1990년대부터인데요. 그때의 10대. 20대였던 X세대가 본격적으로 혼종화 되기 시작한 세대죠.
그래서 X세대인 제 문화 사회 분석 글들의 특징이 결국 ‘혼종성’으로 수렴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이런 이야기를 편집자님과 하다가 『혼종의 나라』라는 제목이 튀어나왔어요. 저와 편집자님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출판사 내에서는 ‘끔찍한 혼종’이 생각난다며 꺼려하는 분도 계셨어요. 하지만 이 제목이 정말 좋아서 고집했습니다. (웃음)
문화를 주제로 꾸준히 칼럼, 에세이를 쓰고 계시죠. 글의 주제는 어떻게 찾는 편이신가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K컬처는 물론이고 우리가 ‘전통’이라고 여기는 것들도 실은 서구화, 근대화의 영향과 결합해서 혼종성을 띠는 것이 많아요. 제 글은 그걸 파헤친 게 많고요. 또 ‘돈 자랑으로 돈벌이’하는 유튜브 콘텐츠라든가, 가족 ‘손절’과 가족 보존의 충돌하는 욕망을 담은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웹 소설, TV리얼리티 쇼, 법 제도라든지, 많은 이야기들이 유교적, 공동체주의적 가치관과 개인주의적 · 자유주의적 가치관이 혼재하고 충돌하는 상태에서 나왔더라고요. 한국에서 개인주의 · 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퍼진 건 산업화와 민주화가 완수 된 1990년대부터인데요. 그때의 10대. 20대였던 X세대가 본격적으로 혼종화 되기 시작한 세대죠.
그래서 X세대인 제 문화 사회 분석 글들의 특징이 결국 ‘혼종성’으로 수렴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이런 이야기를 편집자님과 하다가 『혼종의 나라』라는 제목이 튀어나왔어요. 저와 편집자님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출판사 내에서는 ‘끔찍한 혼종’이 생각난다며 꺼려하는 분도 계셨어요. 하지만 이 제목이 정말 좋아서 고집했습니다. (웃음)
문화를 주제로 꾸준히 칼럼, 에세이를 쓰고 계시죠. 글의 주제는 어떻게 찾는 편이신가요?
나를 둘러싼 문화 속에서 흥미가 생기거나 반대로 묘하게 신경을 긁는 존재에 대해 글을 쓰게 됩니다. 이를 테면 왜 의절, 절연, 절교란 말이 이미 있는데 요즘은 그 말들을 놔두고 주식 용어인 ‘손절’이란 말을 주로 쓰는가. 또 ‘주변 사람 손절’에 대한 조언이나 상담을 해주는 유튜브 콘텐츠가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가. 게다가 ‘회빙환’ 웹 소설도 대부분 결국 자기 발목 잡는 사람들과 ‘손절’하는 이야기더라고요. 이런 콘텐츠가 길거리 스낵처럼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맛이 있으면서 또 한편으로 비슷비슷한 내용이 대량 생산되는 게 거부감도 드는데요. 대체 왜 이토록 유행하고 또 이토록 내 신경을 자극할까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문화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책 『혼종의 나라』(2024)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명화독서』(2018) 『그림 속 경제학』(2014) 등을 썼습니다. 중앙일보 중앙선데이 소속.
@qpqp11 자기계발 유튜브에 드러나는 첨예한 욕망을 좀더 분석해보고 싶습니다 ^^
@JoR 지적하신 대로 모든 문화는 혼종적입니다. 한국만의 특성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은 다른 문화권과 달리 외래문물에 특히 폐쇄적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세계화를 국가 전략으로 세운 대한민국으로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아주 극단적인 변화를 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문화가 혼합된 다른 곳들보다 그 혼종성의 울퉁불퉁함이 두드러집니다. 그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걸 그 시간안에 해낼 수 있는 그 속도의 능력이 힘이 되기도 하고요. ^^
@조율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언급하신 책도 사보려 합니다. 한국인의 행복의 기준에 정신적인 것이 없다는 지적은 여러 국내외 학자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근대화 이후 전쟁, 압축성장 등등을 그 원인으로 언급하는 분들을 보았는데 저는 더 뿌리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조선은 양반과 서민의 문화가 철저히 분리돼있었고 정신문화는 한 줌 양반만 향유한 데다가 양반 또한 '평생도'에서 보듯이 그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매우 획일적이고 유학 공부 또한 오로지 입신양명의 실용적 수단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철학적 열정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공부에 매진한 이들은 소수였습니다. 그나마 그런 이들은 사문난적으로 몰려 핍박을 받곤 했고요. 이 뿌리깊은 (부정적인 측면의) 실용주의와 물신주의를 해결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저도 계속 관심을 가지는 부분입니다. 말씀하신 것이 많은 영감을 줍니다. 감사합니다.
@문소영 현재 교보문고에 심철민 선생님, 최성만 선생님 두 번역본이 보이네요.
@노영식 일단 고전인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기술복제시대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추천합니다
@조율 기준이>기준에, 이규석>최규석
안녕하세요, 오래 전부터 블로그 이웃이었는데 얼룩소에서 뵙게 되어 더 반갑습니다.
저도 다국어도서관 하고 언어교육 하면서 비교언어학, 비교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있다가 독일로 돌아간 독일인 친구(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독일인)인 친구는 한국이 지나치게 "물질적 가치"에 집중한다고, 한국 고등학생들은 너무 "경쟁"만 한다고, 그러면서도 대학 와서는 자기 생각을 제대로 말하고 쓰지도 못한다고 개탄합니다.
교육에(사교육에)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쓰면서도 왜 우리 아이들은 왜 아웃풋이 이렇게 처참할까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행복, 에 대해 글쓰기를 시켰더니 역세권의 30평 이상의 자가 아파트, 연봉 5천 이상 이라고... 음악 전공하는 기독교 대안학교였는데 전교생 대부분이 그런 톤으로 행복을 정의해서 경악했던 적이 있습니다.
행복의 정의가 너무도 숫자여서, 물질적이어서 사실 그 독일인 친구의 개탄에 반박할 수가 없었어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가지
저는 우리나라에서 토론과 건강한 논쟁이 거의 불가능한 근원적인 이유를 저 두 관용구가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모나면(남들과 다르면) 정 맞는(핍박을 당하는)것이 진리인 나라니까 남들과 다르지 않게(다 가는 학교 가고, 졸업하면 대기업 공기업 취직 혹은 돈많이 버는 자영업(=의사, 변호사) 하고, 적절한 때에 결혼하고, 남편은 억대 연봉자(적어도 6,7천은 되어야 번다고 할 수 있고) 집은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여야 합니다. 초품아면 더 좋구요. 임대 아파트, 나홀로 아파트, 빌라는 제대로 된 집이 아닙니다. 차도 몇cc 이상이어야 차라고 할 수 있죠. 중고 모닝 이런 건 차라고 하지 않지요.
이런 너무도 구체적인 남들처럼~ 보통의~ 기준이 미달한 사람들은 가만히 입을 다물어야 하죠. 말하지 않으면 평균은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한국 사람들은 모나지 않게(튀지 않게) 보통의, 남들 하는 정도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일생을 혼신의 힘을 다해 매진하는 것 같습니다. 그 평균의 함정에 빠져, 그 기준에 미달하면, 남들 다 하는(실제로 그 '남들'의 기준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상위 10% 정도) 그것도 못한다고 자신을 힐책하고, 자식을 들볶고, 그걸 하게끔 못 도와준 부모를, 사회를 원망합니다. 그래서 흙수저로 헬조선에서 사는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생.망입니다.
중국에도, 이탈리아에도, 호주에서도 기간은 다르지만 일정 시간 살아봤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살다가 돌아간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다시 오고 싶은 헤븐조선이 왜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에겐 헬조선일까요?
모난 돌이 정 맞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남들과 다르게 사는 건 위험한 짓이니까요. 다르면 정을 맞아도, 가만히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야 반, 이라도 가니까요. 그 반, 그 닿지 못할 남들처럼, 그 평균에 이르기 위해... 남들의 내면은 비교할 수 없고 알 방법도 없으니 가시적인 학벌, 직업, 연봉, 집 평수, 자동차배기량 등 남들이 바로 알아챌 수 있는 숫자와 타이틀을 쟁취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달립니다. 내가 그만큼 달리지 못하니 앞서 달리는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달리나, 자신을 보는 대신 남의 뒤통수를 그렇게 열심히 봅니다. 그러다 그 사람의 잘못이 보이면 사회의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 그 사람을 아예 인간말종으로 취급하며 두번 다시 앞서지 못하게 아예 생매장을 시켜버립니다. 그리고 공공의 정의를 이야기하고 웃음 짓습니다. 남의 잘못에 관대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 갑질과 을질을 하며 서로 끌어내리며 불행의 구렁텅이로,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너도 같이 불행하자,를 아주 철저하게 구현합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면면을 통찰력 있게 보여준 것이 이규석 작가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 토론도서로 여러번 썼는데 매번 다들 너무 불편해하시더라구요. 너무 우리의 현실을 핍진하게, 우리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그런 거 아닐까 싶더라구요.
시험 기간 고1, 고2 아이들 영어 가르치고 와서 이렇게 시험 공부하는 시간에, 우리 아이들은 교과서 지문을 모고 지문을 보며 이 순간 자체가, 지문을 읽는 순간이 즐겁고 행복할 순 없을까, 나는 너무 즐거운데(돈을 많이 받아서 즐거운 게 아니라 가르치는 그 순간이 즐겁고 행복해요.) 우리 애들도 이 순간을 즐기고 만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습니다.
각자 다른 기준으로 살아도, 제각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른 세대들도, 어린 학생 세대들도요. 문제 없는 사회, 나라는 없으니 문제가 있으면 누구 책임인지를 철저히 규명해서 그 한 명, 그 집단을 처단하고 나서 문제가 해결된 양 착각하고 맘편히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가, 왜, 어떻게 잘못했냐를 밝히는데 온갖 에너지를 쏟는 대신 이미 일어난 문제는 우리가 같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는 뭘 할까, 너는 뭘 할래, 나는 이거 할게, 너는 이거 할게, 이런 "공존과 협력의 언어"가 오고 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가, 문제도 있고 결함도 있는 상태로도 지금 당장도 행복할 수 있을 텐데요.
우리 사회를 문화적으로 분석하신 작가님께서는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며, 그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실까 궁금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분석하고 싶은 대중문화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눈에 확 들어오는 책 제목이네요. 시간 나면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릴스/숏츠의 등장 이후 거의 모든 소셜 콘텐츠가 사실상 혼종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누군가의 릴스/숏츠에 자신만의 편집을 더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그 콘텐츠가 다시 밈화되는 과정은 "혼종의 혼종의 혼종의 혼종의..."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미시적 생산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현대 사회의 모든 콘텐츠와 문화는 다 혼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가님은 이런 부분과 구별되는 한국 문화만의 혼종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이런 큰 흐름 아래에 한국 문화가 선두주자라고 생각하실까요?
@문소영 벤야민 책 입문서로 뭐가 좋을까요? 벤야민 책 중에서 디딤돌처럼 처음부터 보기를 권하는 책을 소개해주세요.
@유영진 네, 바로 말씀하신 그러한 부분을 제 책에서 설명했습니다. 인간을 게리 베커가 말한 '인적자본'의 측면에서 보고 지금까지의 투자, 즉 매몰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더 큰 손해 발생이 예상될 경우 손절을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무의식 중에 인간관계에서 비용편익분석(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 비용 편익 포함)을 하고 경제학적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저는 경제학을 전공했으므로 이게 전혀 이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손절이 기존 언어를 대체할 정도로 많이 쓰이는 것을 보며 이게 이만큼 보편화되었다는 것에 새삼 놀랐지요. 인간관계에 경제학적 판단을 대입하는 것은 책에 말한 것처럼 관습에 의한 나쁜 관계를 현명하게 끊는 등의 긍정적인 면이 분명 있습니다. 다만 부정적인 면은 인간을 물화하는 사고에 은연중에 물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눈에 확 들어오는 책 제목이네요. 시간 나면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릴스/숏츠의 등장 이후 거의 모든 소셜 콘텐츠가 사실상 혼종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누군가의 릴스/숏츠에 자신만의 편집을 더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그 콘텐츠가 다시 밈화되는 과정은 "혼종의 혼종의 혼종의 혼종의..."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미시적 생산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현대 사회의 모든 콘텐츠와 문화는 다 혼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가님은 이런 부분과 구별되는 한국 문화만의 혼종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이런 큰 흐름 아래에 한국 문화가 선두주자라고 생각하실까요?
@레베카Kim 1곰브리치 《서양미술사》 : 너무 유명한 고전이지만 곱씹을수록 좋은 책입니다. 2 윌 곰퍼츠 《발칙한 현대미술사》 : 현대미술 이해에 아주 좋습니다. 3 김인혜 《살롱 드 경성》(최근 책) : 한국 근대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정말 제대로 다룹니다. 4 성수영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최근 책) : 서양미술사 주요 작가를 작가들의 사생활 이야기를 섞어 쉽게 접근하면서 작품세계 설명도 충분히 해줍니다.
경제학을 전공하시고 인문학적 소양이 굉장하신 것 같습니다. 작가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다독과 다양한 문화 체험으로 현재의 자리까지 오시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 추천해주신 ‘그림 속 경제학’도 읽어보겠지만 명화에 문외한 입문자에게 추천해주실만한 교양서가 또 있을까요?
@popo 1) 글 내용으로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많은데 내용뿐 아니라 글 쓰는 스타일로 특히 좋아하는 분은 김영민 교수님입니다. 저는 글을 명쾌하게 쓰면서 좀 유머러스하게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
2) 이건 글쓰기에서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아름답고 유려하게 쓰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잘 흘러가면서 명쾌하게 쓰는 것을 지향합니다. 이런 글쓰기를 위해서는 인문서와 신문 오피니언면을 보면서 훈련하는 게 좋을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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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절' 이라는 표현의 대중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주식 용어라는 점에만 그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똑같이 주식 용어인 '익절' 은 대체 왜 대중화되지 않은 것일까요? 사람들은 주식 용어를 발견했기에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손절' 이라는 단어가 갖는 특정한 의미가 하필 주식 용어 중에서 발견되었기에 사용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즉, 인간관계는 손해보기 쉬운 투자처이고, 손해가 나는 인간관계는 끊는 게 당연하다는 발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손익 따져가며 관리하고, 이익이 남는 관계는 유지하면서 손해가 나는 관계는 정리한다는 발상, 저는 이 발상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갑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수렴해가는 세상에서는 수정자본주의 쪽이라고 읽힐 수 있습니다. AI 시대를 맞아서 벤야민의 어느 책의 어느 구절이 특히 인상이 깊은지 궁금합니다.
@qpqp11 자기계발 유튜브에 드러나는 첨예한 욕망을 좀더 분석해보고 싶습니다 ^^
@JoR 지적하신 대로 모든 문화는 혼종적입니다. 한국만의 특성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은 다른 문화권과 달리 외래문물에 특히 폐쇄적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세계화를 국가 전략으로 세운 대한민국으로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아주 극단적인 변화를 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문화가 혼합된 다른 곳들보다 그 혼종성의 울퉁불퉁함이 두드러집니다. 그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걸 그 시간안에 해낼 수 있는 그 속도의 능력이 힘이 되기도 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