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무탈한 거 맞지?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1/19
  한동안 조용했다. 정말 그랬다. 비수기라 손님도 많지 않았고 딱히 진상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불특정 다수가 방문하는 카페에 아무 일이 없다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문제는 한동안 조용해 무탈함을 당연하게 여겨왔다는 것. 무탈이 행복이라고 그리 글로 써놓고는 무탈이 장기화되자 이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를 좀 잊고 있었다.

  어제부터 슬슬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유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카페로 들어왔다. 영어와 한국어가 반반씩 섞인 문장으로 대화를 했다. 셋 모두 똑같은 화법이었다. 주로 단어들을 영어로 쓰는 유학생들은 많이 봤는데 영어로 문장을 말하다 중간에 한국어로 문장을 완성하는 기이한 대화법이었다. 목소리도 쩌렁쩌렁해 오랜만에 영어 듣기평가하는 기분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벌어졌다. 여자 손님이 컵을 들다가 남은 커피를 온 천지 뿌리듯 쏟아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쏟았지 싶을 정도로 테이블, 의자, 쿠션, 벽, 바닥 여기저기에 커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말을 뱉었다. 두세요. 제가 치울게요. 그래 인사치레다. 서비스 업종이니까. 손님은 왕이라니까. 나도 모르게 입에 밴 문장이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마음으로도 내가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짜다.

  행주, 걸레, 휴지 등 온갖 종류의 닦을 거리를 모두 들고 사건현장으로 갔다. 현장은 예상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일부러 이렇게 쏟으라고 해도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우선 행주로 테이블을 구석구석 닦았다. 닦으면서 떨어진 샷잔을 줍고, 테이블에 널브러져 있는 그릇과 컵들도 쟁반으로 옮겼다. 다음으로 걸레를 들고 의자를 훔쳐냈다. 휴지로는 벽을 닦았다. 바닥걸레로는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커피를 치웠다.

  그래도 한 번은 손님이 휴지라도 들고 닦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알았다. 아니면 떨어진 샷잔이라도 주워주던가. 손님은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만 두 번쯤 했을 뿐이다. 상황을 모르는 일행 남자 손님이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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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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