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잡대 졸업자 썰

“심사숙고 따윈 없던 고졸 취업 계획은 초장부터 전혀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났다. 두 팔 들고 환영할 줄 알았던 어머니. 우리 심 여사는 대학만은 가야한다고 생떼를 썼다. 학비 못 대줄 거면 대학 얘기 꺼내지도 말라며 역정을 냈더니, 세상에. 다음날 담임 선생님마저 날 교무실로 부르더니 진학을 종용하셨다. 성실히 공부하면 국가 장학금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창원 기능대 가면 훨씬 좋은 대우 받으면서 취업한다. 고졸로 사회 나가면 평생 월급 200만원에서 못 벗어난다. 나중에 나이 들면 대학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다. 마치 대학‘교’의 교주라도 된 양 열렬히 전도하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인즉. 눈앞에 불이 났는데 목마를 때에 대비해 물을 아껴두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전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성적으론 ‘지잡대’ 밖에 갈 수 없었고, 그곳에서 시간과 돈을 낭비할 바에야 얼른 취업하는 게 낫다고 봤거든요. 그 당시. 85-90년생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대학에 정말 한이 맺히셨던 듯합니다. 위에 연도별 대학 진학률만 봐도 2005년에서 2009년까지가 정점을 찍지요.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대학 서열화떡밥이 가장 활발하게 탔었고, 부실 대학 이야기가 참 많았던 한편, ‘지거국’도 수능 3점대 중반 등급은 받아야 했던 때였습니다. 덕분에 최근 부산대학교에 미결 났다는 소식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우리 때는 서울 중하위권 대학교랑 등급 컷이 비슷했는데! 아무튼 그 당시 입시 분위기는 정말 다미 선교회 같았습니다. 대학 안 가면 휴거가 닥쳤을 때 승천 못할 것 같았다니까요.
 
제 고 3 시절. 교실엔 대학교 가지 말자고 꼬시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대학 가겠다고 하는 친구들에게 마치 악마의 대변인처럼 집요하고 날카롭게 묻고 또 묻습니다. 특히 기말고사에서 0점 과목이 두 개나 나와서 ‘쌍빵’이라 불린 친구가 화려한 말빨로 대학파를 여럿 제압합니다. “대학 왜 갈라 카는데?” 그 추궁에 맞서 각자가 다른 이유를 댑니다. 부모님 때문이라 변명하면 “어른 되가꼬 부모 시키는 데로 다 할끼가?”, 좋은 직장 구하고 싶어서라고 하면 “개나 소나 대학 다 가는데 졸업장 가꼬 뭐할래?”, 공부(!)하겠다는 이유를 대면 한바탕 폭소한 다음. “우리 대가리로 무슨 공부고? 고마 내랑 기술 교육원 드가자. 얼른 차 뽑고 집도 사야 할 거 아이가.” 어찌보면 사회에서, 학교에서, 어른들이 바보 취급했던 쌍빵(19세/현자)은 누구보다 현실을 잘 알고 있었던 셈이죠.
 
속으론 쌍빵을 긍정했지만 정작 제 자신은 전문대를 나왔습니다. 선생님들은 사회 나가면 고졸보다 훨씬 유리할 거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저뿐만 아니라 사립 4년제 대학 다니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졸 친구들보다 딱히 좋은 일자리 못 구합니다. 오히려 그 친구들 자리 잡았을 때 한참 헤맵니다. 공장을 다니자니 4년제 학벌이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대학을 나왔다’라는 생각에 매몰비용 오류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결국 소수는 뒤늦게나마 중소기업을 들어가지만, 대다수가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도전했다가 세월을 더 허비합니다. 너무도 흔한 청년의 자화상이죠. 이 문제는 사실 대학에서 찾기보단 좋은 직장 문이 매우 좁은 현실에 기인합니다. 그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중간 계단 없이 바로 좋소로 떨어지구요. 이런 안전장치 없는 현실과, 그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잘 조명한 기사 하나 첨부합니다.

"공장서 알바해본 동남권 청년, 일터·지역 떠난다" - 2021.10.05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74076&fbclid=IwAR2Tb5cZlbHP7vRg4IVLTAV7ttdoX2j5zljJ_w3jWq9M4nWU-zoXrWlN7As
 
(기사만 첨부했지만,논문이 정말 재밌습니다! 찾아서 읽어 보시는 거 강추!)
 
저는 대학 무용론을 주장하고 싶진 않습니다. 한국은 이제 명백한 선진국이 됐고, 더 성장하려면 개도국식 생산 위주의 산업만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평생직장이 없기에 끊임없이 배우고 갱신하려면 대학이 꼭 필요합니다. 다만 대학이 명함 판매소가 아닌 순수한 교육의 전당이길 바랍니다. 현재의 대학은 명문대가 아닌 졸업생 대다수의 시간과 비용이 낭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특히 남성에겐 군대와 겹쳐 20대 초중반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합니다. 서른 둘인 제 주변엔 아직도 직업 교육을 하거나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가 많습니다. 아차 하는 사이 서른을 넘겨버린 셈이죠. 이런 잘못된 사회 구조. 얼른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