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가 가벼운 겨울

연하일휘
연하일휘 · 하루하루 기록하기
2023/12/26
암막 커튼은 창 너머의 햇빛도, 냉기도 모두 방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아낸다. 데워진 방을 오래 유지시켜주는 것은 아니지만, 외풍이 심한 집에서 이 정도의 냉기를 막아준다는 것은 꽤 감사한 일이다. 가끔은 햇빛만 걸러내는 역할을 할 때가 있지만, 조금은 날이 풀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두 기능을 모두 성실히 수행해 준 고마운 녀석이다.

이불 속에서 한참을 꼼지락거리다 병원으로 향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 산발이 된 머리카락에 대한 고민이 길어진다. 열이 오르는 중에 머리를 감았다가 도리어 감기가 심해지면 어쩌나. 그렇다고 쓰고 나갈 모자도 없는데 이 꼴로 밖을 나돌아 다니는 건 낯부끄러운 일이다. 그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스킬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앞머리만 감고 나가기!

평소라면 차라리 뜨끈한 물로 몸을 녹이며 샤워를 해 버릴텐데, 씻을 기력조차 없는 날이었다. 돌돌돌 바짓단과 팔을 걷어 올리고 욕실로 들어서 온수기를 틀었는데, 아뿔싸. 걱정했던 일이 터져버렸다. LPG가스가 다 떨어졌다. 몇 번을 껐다 켜봐도 온수기는 불이 켜지질 않고, 손끝만 닿아도 뼈가 시린 찬 물이 세차게 뿜어져 나온다. 이건 씻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렇다고 안 씻고 나갈 자신은 없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두피에 찬 물이 닿지 않게 머리 끝만 조물조물 거리다 후다닥 난로 앞으로 달려 나온다.

으- 추워. 찬 물이 닿은 건 두 손과 물이 튄 다리 정도인데도 온 몸을 흠뻑 적신것마냥 춥다. 난로 앞에 쪼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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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걸 좋아하지만 잘 쓰진 못해요. 사교성이 없어 혼자 있는 편이지만 누군가와의 대화도 좋아해요.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픈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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