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본인보다 주변을 위하며 살아온 사람

미미패밀리
미미패밀리 · 한 아이의 아빠이자 고양이 형아입니다
2023/01/15
목요일 밤, 큰이모네 첫째딸에게서 문자 한통이 왔습니다. 카톡이 아닌 뜬금없는 문자에 왠지모르게 확인 전부터 좋지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문자는 보통 안쓰니까요.
확인을 해보니 역시나…안 좋은 내용의 문자였습니다. 큰이모부의 부고 문자였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러워 장난같은 느낌마저들었습니다.
한달전쯤 큰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시고 거동도 하셔서 이제 건강해지신줄로만 알았습니다.

제가 큰이모부의 거동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큰이모부께서는 시골에서 딸기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그러던 중 낙상사고를 당하시는 바람에 몸 전체에 마비가와 말하고 생각하는데는 문제가 없으나 움직이질 못 하셨었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2년정도를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으며 재활치료를 병행했고, 작년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하여 퇴원을 하셨습니다.
사고전처럼 움직일 수는 없으셨으나 천천히 걸어다니시는 정도까지 회복을 하셨습니다. 집에서 꾸준히 재활을 하셨고, 얼마전 아들의 결혼식까지 참석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에서 뵙고 이제 좀만 더 노력하면 완치가 될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부고소식을 접하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큰이모부를 처음 뵌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정도 전이었습니다. 당시 큰이모부와 이모는 시골에서 식용 개 사육을 하셨습니다. 산 중턱에 개 사육장이 있었고 수백마리의 개를 키우고 계셨고 근처 군부대에서 잔반을 수거해 사료와 함께 주었고 한번씩 놀러길 때마다 따라가 구경을 하곤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놀러가지도 않고 연락도 잘 안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놀러가지않았던게 아니라 놀러갈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30년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신탕을 많이 먹었기때문에 개사육으로 먹고살 수 있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수요가 급감했고 개사육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로인해 형편은 어려워졌고 설상가상으로 집에 불까지 났었다고 합니다.
갈 곳과 직업을 잃은 부부는 근처 폐교에서 딸2, 아들1명과 교실에서 몇 년간 지내셨습니다.
당시 동네사람들이 큰이...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