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내일 보다 오늘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07/14

자주 가는 도서관 카페에는 장애인과 노인들이 일을 한다. 세월의 흔적이자 치열했던 삶의 훈장과도 같은 주름이 짙은 여인이 주문을 받았다. 70대 후반 정도로 우리 엄마보다 한참 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 세대에게 익숙하지 않은 메뉴들을 외우고 기계 작동법을 익히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라떼가 나오고, 뜨거운 음료가 아이스로 바뀌어 나오는 것이 다반사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느새 능숙하게 주문을 받고 일상과 날씨를 묻는 여유까지 넘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뜨거운 것을 잘 못 마시는 탓에 얼음 한 개만 넣어달라 부탁을 드렸다. 그윽한 향을 머금은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내밀며 인자하게  웃으신다. 

“얼음 두 개 넣었어요”

얼음 한 개에 담긴 온정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같은 주문을 한 나를 기억했는지 이젠 말하지 않아도 요구 사항을 들어주었다. 손님이 없을 때는 평온한 얼굴로 책을 읽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 몸과 마음이 참 건강한 분 같아 보였다. 연세가 많지만 새로운 일을 배우고 여전히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 또한 존경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녀와 대비되는 엄마의 노년을 떠올리니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병마가 집어삼켜버린 엄마는 일과 사회적인 교류를 모두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젊게 살며 활기가 넘치던 엄마였다. 일신상의 이유로 엄마는 원치 않는 은퇴를 했다. 쓰러지기 전 오랫동안 운영하던 식당을 접고 잠깐의 취미생활을 했지만 아마 당신이 아프지 않았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일을 찾아 했을 것이다. 치열하게 살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고 여긴 그녀였으니까.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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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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