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제 58을 마시기 전, 철저히 걷어내야 할 독버섯 3

JJW
JJW · 얼룩소를 떠났습니다
2022/03/13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문학동네)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실이 전해진 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문장이었다. 그 당시 이 문장을 본 나는 가장 적확한 문장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것이 세상을 꿰뚫는 문학적 문장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그 문장은 문학적인 함축이 가능했을지언정, 실제 피해자의 고통을 온전히 전할 수는 없었다. 사건 1년 반만에 피해자가 내놓은 기록들을, 나는 대여섯 번은 끊어서 읽어야 했다. 특히 박원순의 자살 소식을 접한 뒤, 피해자는 거센 공황을 마주해야 했다. 박원순 지지자들의 2차 가해는 그 당시에는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이 숨이 끊어졌다는 소식에 피해자는 정신을 거의 잃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2차 가해로 얻은 고통은 그 다음이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괴상한 조어가 여성 인권을 내세운 국회의원에 의해 탄생했다. 생전 고인을 지지했던 이들은 ‘그 정도를 성추행이라 부를 수 있느냐’고 말했다. 피해 사실 일부가 공개된 뒤에도 그들은 피해자가 직접 나와 모든 말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피해자의 근무 기관은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호소에 침묵하거나 오히려 일부 구성원은 피해자의 의도를 의심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공개채용을 통해 임용된 9급 공무원일 뿐이었다. 박원순에 대한 어떤 의도를 갖고 그의 비서가 된 게 아니었다. 그저 차출됐을 뿐이었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내부에서는 ‘멘탈 참 대단하다’며 여전히  그를 조롱하고 있다.

나는 단순한 사실들만 나열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고통스럽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김잔디, 천년의상상)를 읽은 뒤 진심으로 나는 내 손가락을 자르고 싶...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86
팔로워 229
팔로잉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