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의 차이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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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1
출처: alookso
안녕하세요. [글로벌 클래스]의 파일럿 이재현 에디터입니다.

요즘 참 덥네요. 너무 더워지고 있어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초겨울의 날씨에 무슨 얘기일까요, 바로 기후변화 이야기입니다.

2100년의 한반도, 지금보다 평균 기온이 7.3℃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지도의 한반도는 검붉은색입니다. 여름에는 40℃가 넘는 날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가 한반도야 동남아시아야?’ 윤신영 에디터가 정리한 최악의 상황, 즉 ‘고탄소 시나리오’에 의하면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고 산업 발전에만 집중하면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인류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적극적인 노력을 한다면 ‘저탄소 시나리오’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현재보다 2.6℃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온도의 차이,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새롭게 출항하는 Environment 항공편에선 이집트로 날아갑니다. Technology에서는 계속해서 ‘머스크의 트위터’를, Society에서는 남 이야기 같지 않은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를 살펴봅니다.

글로벌 클래스의 비행기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비행기는 ‘인간관점공학’으로 설계되었거든요. 누가 타는지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모두 함께 비행하며, 관점을 업데이트해요.

📌 Environment: 온도의 차이는 무엇이 설명하는가
출처: Unsplash

‘산업화 이전 대비 대기 온도 1.5°C 상승’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넷제로(Net-zero)’

많이 들어보셨죠. 그린뉴딜과 함께 사용되던 정치적 구호이자 목표였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1.5°C 상승 목표가 이젠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고 말합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애초에 2015년 파리의 기후총회에서 1.5도 목표가 받아들여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국가의 정치인들은 1.5°C 목표를 ‘레드라인’으로 삼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얻어낸 결과였죠. 1.5°C와 2°C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홍수, 가뭄, 그리고 생태계 파괴를 비롯해 기후변화의 영향과 위험이 막대하게 커진다고 합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 폭을 2°C까지 허용할 경우, 전 세계 인구 중에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4억 2천만 명이 더 늘어나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 추가로 생활 터전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데이터를 시각화해 1.5°C 달성 목표가 왜 실현 불가능한지 설명합니다. 글을 읽다 보면 의사결정자가 되어 비서진이 꾸민 보고서를 손에 들고 살펴보는 기분이 듭니다.

만약 1.5°C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추가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점, 알고 계셨나요? “태양지구공학”이라 불리는 분야인데, 대기층에 유황을 투입해 태양광이 반사되는 양을 늘리는 겁니다. 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매년 300만 톤의 유황을 뿌려야 한다고 하는데, 실현되려면 기술 발전과 자금 투자가 필요하겠죠. 그런데 기술이 따라오기까지는 15년이 더 걸린다고 합니다.

이집트에서 개최되고 있는 ‘기후총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는 또 다른 ‘온도 차이’가 핵심 쟁점입니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개발도상국에 더 치명적으로 다가옵니다. 태평양의 섬나라는 높아지는 해수면에 국토가 잠길 위험에 처해 있고, 가난한 국가는 기후 재난이나 사태에 대응할 만큼의 산업적, 기술적 역량도 떨어지죠. 개도국들은 역사적으로 탄소배출에 훨씬 더 책임이 있는 선진국에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온도의 차이’가 왜 발생하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할 때입니다. 급진적 변화에 따른 손실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다음 선거에서 당선이 더 중요한 정치적인 이유 등, 미온적인 자에게는 그만의 이유가, 더 뜨거운 자에게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 Technology: 에코 체임버의 시대에 디지털 ‘공론장’은 가능할까
출처: Unsplash

머스크의 트위터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수 후 머스크는 트위터를 상장 폐지했고, 회사 규모의 반에 가까운 이들을 해고했습니다. 자신의 프로필에 인증마크를 받고 싶은 사용자는 이제 매월 7.99달러를 내야 한다고 합니다. 콘텐츠 관리를 위한 별도의 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죠. 광고주들은 트위터 광고 집행 금액을 줄이고 있습니다. 직원이 반으로 줄어든 트위터에선 중간선거 ‘투표기 조작설’과 같은 음모론이 퍼지고 있고, 콘텐츠 관리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트위터 사용자가 아니라면, 트위터 인수와 후폭풍을 지켜보며 조금 더 큼직한 질문이 떠오르실 것 같아요. ‘요즘 실리콘밸리 거부들은 취미나 ‘사이드 프로젝트’로 회사를 하나쯤 사는 건가라던지 ‘약자의 플랫폼이자 디지털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트위터가 개인 회사가 되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같은 질문일 것 같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에디터 스티븐 부쉬는 다시 근본적인 문제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디지털 공간에 표현의 자유가 담보된 ‘공론장’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이죠. 

칼럼은 특정한 관점에서 뉴스를 만드는 미디어가 생겨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가 양극화되어가고 있고, 이에 편승해 수많은 인쇄나 방송 미디어가 이에 편승해 ‘특정 관점을 옹호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거죠.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고, 설득력 있는 전략일 수 있겠죠.

필자는 단순히 ‘공론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에서 더 나아갑니다. 공동체의 포럼 역할을 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합니다. 바로 ‘발언 통제’의 문제. 디지털 공간도 무한하지 않고, 사용자의 주의력과 사용 시간도 무한하지 않으니, 모든 주제에 대한 대화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한 의제 설정과 콘텐츠 관리가 필요할 겁니다. 그 뿐인가요. 매일 사회 문제가 쏟아지는데 누군가는 고양이 영상과 같은 흥미성 콘텐츠를, 누군가는 선거 음모론 같은 가짜뉴스를 올릴 겁니다. ‘공론장’ 기능을 하려면 콘텐츠 관리가 핵심이라는 겁니다.

머스크는 이 문제를 유료구독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광고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사용자 경험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유료구독 사용자는 조금 더 정제된 콘텐츠를 올릴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선 유료구독으로 신원을 인증한 사용자에게만 마크를 제공하는 차별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머스크의 트위터는 앞으로도 ‘디지털 공론장’의 시도로 계속 회자될 겁니다.


📌 Society: 미래를 잃어버린 세대는 이제 청년이 아니다
출처: 뉴욕타임스/Mark Wang
퀴즈로 시작해볼까요?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몇 명일까요?

30~50세 남성, 실업자이거나 일용직으로 생활을 해결하고, 직장에 취업할 기회를 잃어버렸기에 결혼, 육아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성인의 사회생활 과정에서 퇴출당한 사람들.

무려 1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장기간의 경제 침체와 일자리 문제, 그리고 보수적인 기업문화가 만들어낸 사회문제죠. 그런데 혹시 ‘잃어버린 세대’도 들어보셨는지요.

1700만 명. 일본 전체 인구의 약 15%에 달한다고 하는 이 인구집단 중 많은 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거나, 니트족이 되는 등 안정적인 경제생활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믿기 힘든 숫자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독립하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는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청년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세대를 1970~1984년생으로 본다면 38세에서 52세, 일본의 중위연령이 45세라고 하면 이들은 이제 고령화 사회에서 흐려지는 ‘청년’ 기준으로도 젊다고 보기는 어렵죠.

사회진출의 기회를 잃어버렸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는데, 이제 중년이 되고 부모님 세대가 노령층이거나 일부는 사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하겠죠.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는 지난 7월 아베 신조 전 일보 총리를 암살한 야마가미 테츠야의 사례가 이 세대의 문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주요 사례가 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마무리합니다. 

바뀌어야 할 건, 오랫동안 참고 견뎠던 수백만 명의 잃어버린 세대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일본 사회 그 자체다.

혹자는 필자의 문장을 그대로 복사해 한국 사회에 제출해도 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죠. 얼룩커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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