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단단히 고장 난 사람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2/10/24
부모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잘 보지 못한다. 글을 열었다가 부모에 대한 글이라는 걸 눈치채면 잽싸게 창을 닫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도 꾸역꾸역 보다 결국 화가 났다. 세상 모든 엄마를 왜 아름답게만 쓰느냐고. 많은 이들이 추천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도 자식을 버린 엄마와 화해하는 이야기라는 말에 그걸 어떻게 용서하냐며 눈길을 돌리지도 않았다. 마음 어딘가가 단단히 고장난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부모에게 반항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열살이 되기 전부터 엄마가 지닌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왔다. 엄마는 슈퍼우먼이었다. 종가집에 시집와 시부모를 모시면서 집 한 켠을 사무실로 만들어 틈틈히 일을 했고, 삼시세끼 여섯 식구의 밥을 하면서도 깔끔한 성격을 놓지 못해 매일 집안을 쓸고 닦았다. 두 명의 자식을 위해 매일 도시락을 쌌고 밤 늦도록 책상 앞에 앉아 장부정리를 했다. 아빠는 처자식을 부양하는데 별 관심이 없었고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엄마는 늘 화가 나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세상 가장 미인인 엄마였지만 좀체 웃는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온종일 자식들 일거수일투족에 잔소리를 퍼부었다. 엄마는 자신이 하지 못한 공부를 딸들이 하기 원했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불같이 화를 냈다. 초등학교까지 모범생이었던 언니는 중학생이 되면서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성적이 곤두박질 쳤고 엄마의 말을 더는 듣지 않았다. 언니에 대한 엄마의 한숨이 늘어날수록 엄마는 내게 말했다. 너는 절대 성적표를 숨기지 말라고. 너는 꼭 아침을 먹어야 한다고. 너만은 내 얘길 들어야 한다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와 딸이 그렇게 싸운다는데 나는 엄마와 싸우지 않았다. 싸울 수가 없었다. 내 눈에 엄마는 너무나 고달픈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고, 그 고생의 수혜자가 자식이라고 생각했기에 엄마에게 나까지 반항을 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아침에 깨우면 한번에 벌떡 일어났고 아침밥을 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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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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