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이라는 낙인

허태준
허태준 · 작가, 출판 편집자
2023/01/02
'고졸'이라는 농담

  벌써 2년 전,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의 출간을 준비할 때 있었던 일이다. 책이 나오기 전 출판사로부터 저자 소개를 작성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두세 줄이면 충분한 짧은 글이었지만, 자신에 대해 직접 쓰려니 어색하기만 하고 좀처럼 괜찮은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여러 사정이 겹쳐 자신을 정체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함께 지내는 친구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24세 고졸 무직’이라고 쓰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나는 장난치지 말라며 화를 내면서도,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정말 그만한 표현이 없었다. 사실관계가 명확하면서도 너무 진지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세 단어의 조합은 적절한 화학반응처럼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는데,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이 ‘유머’가 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사실이 ‘낙인’이 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지금처럼 웃을 수 있을까.
   

'고졸'이라는 정체성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한 나에게 ‘고졸’은 부끄럽거나 숨겨야 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고졸은 선택일 뿐이었다. 학교에서도 진학보다는 취업을 우선시했고, 주변의 어른들도 대부분 대학교에 갈 필요 없다며 우리의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해주었다. 취업을 하고 나중에 공부가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일학습병행제’나 ‘선취업후진학’ 같은 제도는 학벌에 대한 개인의 두려움을 축소시켜줬다.
  돌이켜보면 사회에서 나의 위치는 ‘기특한 청년’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찍부터 진로를 선택하고 사회에 나온 생각이 깊은 청년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스스로를 조금 다른 존재라고 느꼈다. ‘고졸’이라는 단어에서 흔히 연상...
허태준
허태준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중소기업에서 현장실습생, 산업기능요원이란 이름으로 일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후 모든 삶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썼습니다. 현재는 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청년》의 책임편집 및 공저자로 참여했습니다.
10
팔로워 63
팔로잉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