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잊어버린 얼굴
2023/05/19
엄마의 얼굴을 잊어버렸다. 파랗게 물들어가는 이파리들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바닥, 경관용 바위들에 부딪힌 햇살들이 눈부심을 자아냈던 여덟살의 봄날, 나는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차가운 공기에 아리는 뺨을 두 손으로 감싸쥔 채 두리번거렸다. 어디에 있지- 기억나지 않는 얼굴을 더듬으며 헤매다 한 곳에 시선이 멈추었다. 익숙한 옷과 머리를 지닌 한 사람이 교문 앞에서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다. 이내 고개를 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익숙한 목소리의 내 이름, 나는 그제서야 엄마를 알아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의 손을 여느때보다도 더 꼭 잡고 걸었다. 영영 엄마를 알아보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계속해서 고개를 들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귀를 울리는 차소리가 심장의 두근거림을 더한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엄마의 얼굴은 밝은 빛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이부자리를 펴지도 않은 채, 커다란 베개에 몸을 의지하듯 자리에 누웠다. 엄마가 잠이 들었을까. 엄마의 등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가족앨범 하나를 꺼내 들고 옆방으로 향했다. 엄마의 사진을 보고 엄마의 얼굴을 외우려 노력했다. 엄마 눈, 코, 입. 한참을 사진을 노려보다 눈을 감고 엄마의 얼굴을 그려본다. 아무리 사진을 봐도 엄마의 얼굴이 그려지질 않는다. 어느새 주황빛으로 길게 늘어진 햇살이 사진에 반사되며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엄마를 영영 알아보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눈물이 났다. 아빠의 얼굴을 그려본다. 옆 방에서 잠이 든 엄마가 깰까 소리없이 눈물을 닦아내던 그날, 나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의 얼굴도 떠올리지 못했다.
어릴적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나와 친했던 친구들의 얼굴은 하나의 장면으로 남아 머릿속에 남아 있다. 공터에서 나를 바라보던 전파상 집 딸이었던 친구, 전학을 가기 싫다며 빨개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친구, 음악시간에 배운 '두성'이 대체 뭐냐며...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이부자리를 펴지도 않은 채, 커다란 베개에 몸을 의지하듯 자리에 누웠다. 엄마가 잠이 들었을까. 엄마의 등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가족앨범 하나를 꺼내 들고 옆방으로 향했다. 엄마의 사진을 보고 엄마의 얼굴을 외우려 노력했다. 엄마 눈, 코, 입. 한참을 사진을 노려보다 눈을 감고 엄마의 얼굴을 그려본다. 아무리 사진을 봐도 엄마의 얼굴이 그려지질 않는다. 어느새 주황빛으로 길게 늘어진 햇살이 사진에 반사되며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엄마를 영영 알아보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눈물이 났다. 아빠의 얼굴을 그려본다. 옆 방에서 잠이 든 엄마가 깰까 소리없이 눈물을 닦아내던 그날, 나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의 얼굴도 떠올리지 못했다.
어릴적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나와 친했던 친구들의 얼굴은 하나의 장면으로 남아 머릿속에 남아 있다. 공터에서 나를 바라보던 전파상 집 딸이었던 친구, 전학을 가기 싫다며 빨개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친구, 음악시간에 배운 '두성'이 대체 뭐냐며...
[합평]
<잊어버린 얼굴>이라는 제목을 보고 누구의 얼굴을 잊은 것일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일까? 잊고 싶은 얼굴을 이야기하려나 여러 짐작을 했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제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여덟 살 글쓴이의 심리가 풍부한 어휘를 바탕으로 한 편의 시와 같은 묘사로 펼쳐집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려고, 가족앨범을 통해 외우려고, 애를 쓰지만 아빠의 얼굴도 떠올릴 수 없다는 것을 안 어린 글쓴이가 안쓰러웠습니다. 어떤 이유로 부모의 얼굴을 잊어버렸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이내 친구들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눈을 마주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눈을 맞추지 못하는 아이는 성장하며 의식적으로 부모님과 눈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모진 말들을 들으며 고스란히 그 감정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던 어린이가 겪었을 상처가 꽤나 깊었을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엄마는 언니와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니 언니 말고는 다른 자식들은 필요 없어-라는 말의 의미가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저 또한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우시던 장면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의 부모님들은 자녀의 마음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겠구나 이해를 하려고 하다가도 왜 그렇게까지 했나 원망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나의 잘못이 아닌 잘못을 용서받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가장 가슴 아픈 문장이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감정이 폭발한 이후에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를 계기로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부모님과 주변을 바라보게 되지 않았을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연하일휘님의 펼쳐질 삶은 눈을 마주하고 바라볼 얼굴들과 기억될 얼굴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
쉽지 않은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빅맥쎄트 제가 마주한 부모님의 얼굴. 그 첫 얼굴은 '놀라움'이었어요. 그리고 이후에는 많은 얼굴들을 접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여전히 많은 다툼과 아픔, 상처들이 남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 긴 과정들 끝에서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얼굴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글에 대해서 너무 좋은 평을 해 주셔서 감사해요. 합평이란 글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된 느낌.
[더 이상 과거의 상처와 아픔 속에서 머물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문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마 지금 다시 과거를 떠올려 보는 것이 비슷한 맥락이겠지요? 과거에만 매몰되지 않고, 현재의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현재를 바라보려 하는 것이요.
글을 쓰는 것보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며 더 많이 받아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준오빠의 행복공작소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줄어들기에, 그래서 더 잊고 살게 되고. 누군가를 기억하기 힘들어지나봐요. 와! 멋준님의 글은 짧지만 여운이 느껴지는...!ㅎㅎㅎ 감사합니다:)
@아멜리 와! 아멜리님께서 글 전반을 짚어주시면서, 제가 고민했던 부분까지 함께 짚어주셨어요!
사실 글의 마지막 부분을 계속 고민했어요. 이 부분을 어떻게 해야할까. 너무 급작스럽게 마무리를 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마무리를 하는게 좋을까. 무엇을 더 넣고 무엇을 더 빼야할까. 고민을 하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포기하고 그대로 올렸어요...ㅎㅎㅎ
언제나 글을 쓰다보면 '마무리'가 부실해지더라구요. 언제나 마무리가 중요한데....본래의 성격이 반영된 것일까요?ㅎㅎ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묘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요소"
이 두가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며 글을 수정해봐야겠네요. 조언해 주신 덕분에, 조금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조언과 함께, 공감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살구꽃 살구꽃님의 합평은...읽어나가며 한 편의 글을 또 읽는 느낌이에요. 그저 써내려간 글 한 편에 대해서, 하나씩 하나씩 제 감정을 짚고 넘어가주셔서...그래서 더 감사함이 느껴져요.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울지는 않았어요. 이전에는 많이 울었어서 그랬을까요. 지금은 그냥, 그랬지. 나 그랬었지. 그때 힘들었었지...정도예요. 한편으로는 이게 치유가 된 것인지, 혹은 현재 상황에 비추면서 그저 거리를 두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요...ㅎㅎ
어릴 적에 꽤나 성숙한 아이였어요. 철이 빨리 든 아이. 그래선지 스무살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며 점점 더 많이 헤매고 다녔어요. 애정결핍이 생겨나기도 했었고, 스스로의 감정에 매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한 적도 있었고. 그저 스쳐지나갈 일들에 붙잡혀 괴로워하기도 했었고....
살구꽃님 말씀처럼 "곪아있는 상처를 터쳐서 짜내야 하는데 이과정을 거쳐야 새 살이 나온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어른이 된 이후에도 몇 번씩 상처를 터트리곤 했어요. 그리고 채 아물지 않은 상처들도 있지만, 새 살이 나오는 과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내적인 성숙이 이루어지는 중은 아닌가 싶어져요.
아직은 어른이 되기에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부족해서- 계속해서 스스로를 어른으로 끌어올려봐야겠어요. 감사해요. 글을 읽으며 위안을 많이 받아가요:)
@청자몽 청자몽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랑 너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둘째라는 공통점 덕분일까요?ㅎㅎㅎ
저희 어머니도 우울하거나 답답하면 제게 전화를 하세요. 사실 어릴적에 하시던 말씀들은 자라나며, 그리고 여러 일들이 겹치며 이젠 사라졌어요. 어머니나 아버지나 '너 없으면 어쩌냐-'라는 말씀을 종종 하셔서.....나중에는 있을때 잘해 쫌!! 이라며 짜증을 내기도...ㅎㅎ
지금은 어머니와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어요. 수다도 떨고 둘이 커피도 잘 사마시러 다니고...ㅎㅎ
집에 우환이 겹치다보니, 어머니랑 제가 둘이서 고생하며 동지애가 생긴 덕은 아닐까 싶어져요. 겸사겸사 착한 동생들이 많이 도와주니,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들을 되살리자......생각은 하는데...생각은 하는데! 쉽지 않은게 현실입니다ㅠㅠ
어릴 적의 아픈 상처는, 잊자고 생각해도 다시 툭-튀어나오나봐요.
지금은 아프다...라기보다는 억울하다, 라는 감정이 더 크긴 하다만....요즘 더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그냥 그냥 묻어두자- 하는 중이에요ㅎㅎ
늘 공감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따뜻한 청자몽님. 늘 감사해요. 청자몽님도 아프지 않으시기를 바라요.
@박현안 현안님의 합평을 감사히 읽으면서, 감사댓글을 어떻게 달까...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한참 지나가고 말았어요...ㅎㅎㅎ합평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현안님께서 "지난 일이고 부모의 일이기에 이 일을 공개적인 글로 쓰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했습니다. 맞아요, 사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 이후에 부모님과 맞서기 시작하며, 그리고 집에 우환이 연달이 이어지면서 특히 어머니와의 사이는 급속도로 좋아졌거든요. 이전에는 하소연과 함께 나를 부정하셨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하소연을 하며 제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셨거든요.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어머니와 사이가 좋아지고. 이제는 자잘한 수다도 잘 떨구요. 사실, 집에 우환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좋은 사이가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에...ㅎㅎ지금은 너무 지나간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버지랑은 사이가 좋긴 한데, 여전히 많이 싸우기도 하거든요ㅎㅎ특히 이젠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음- 내가 너무 어리게 굴긴 하는구나...라는걸 느끼기도 합니다.
'나와의 대화'는 늘 부족하다 느껴요. 특히 저는 저를 사랑하는 것을 하지 못하다보니.....그런데 정작 과거 이야기를 꺼낼땐 담담하게 이야기하곤 해요. 아직 못 다 해소한 이야기는 눈물짓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담담히 이야기를 하는데......한 번 깨달은 적이 있었어요. 꽤나 친해진,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사이가 된 이와 과거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가 말을 피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섭섭하다가...나중에는 알겠더라구요. 이것도 하나의 폭력이 되는구나.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일들일지 몰라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이에게는 내 과거를 듣는 것조차 폭력처럼 다가오는구나...라는걸요. 그래서 조금 더 걸러내는게 힘들었던 듯해요. 제가 소중히 여기는 분들이 많아진 얼룩소라서....?ㅎㅎㅎ
나름의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음...역시 쉽지 않았어요. 현안님의 합평을 읽고 많은 생각을 이어나갑니다. 늘 감사해요:) 좋은 기회, 좋은 글을 써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합평도 감사히 받아가요.
@연하일휘
[합평]
부모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태는 두려움과 닫힌 마음을 보여준다. 부모님의 얼굴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 언제나 고개를 숙였던 나의 모습이 오래동안 유지된 것을 보면서 마땅히 딸로서 받아야 할 사랑, 애정, 관심이 부재한 아픈 삶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눈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만이 기억속에 남는다. 자주 눈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눌 때, 순간의 장면이 [하나의 장면]으로 남게 된다. 부모님과 연관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겉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평소 연하일휘님의 글에는 다정다감함과 친절함이 묻어난다. 평온하고 잔잔하게 그려지는 마음과 시선의 변화는 하나의 멋진 글로 탄생한다. 이번 글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정서는 '아픔'이다. 잊어버린 부모의 얼굴을 다시 찾게 되면서, 그녀는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부모의 얼굴을 다시 본다는 것은 더 이상 과거의 상처와 아픔속에서 머물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닌, 필요성과 윤리 사이에서 가족의 의미를 정의하고 있다. 자식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부모는 필요성의 측면에서도, 윤리의 측면에서도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를 등지고 돌아서는 삶 대신 아픈 부모의 곁에서 함께하며
얼굴을 마주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녀의 삶은 누군가의 눈을 마주하는 것을 통해서 만들어져 간다.
그녀가 마주한 부모님의 얼굴은 무엇이었을까.
https://alook.so/posts/70tmJa5
얼굴을 점점 잊어버리게 되는 요즘. 그렇게 또 누군가에게 잊혀져 가는 게 삶인가 싶은 마음이 드네요.
눈을 바라보고 마주하는 것, 눈을 바라보면서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얼굴.
[합평]
얼에모2를 통해 인연을 맺은 연하일휘님! 첫 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저에게도 부모님의 다툼이 잦아진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동생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 밤이 늦도록 그네를 타고, 동생들의 그네를 밀어준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네가 없었다면 저의 어린시절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요, 여전히 그네 타는 걸 좋아하기도 합니다.
글 시작이 마치 단편소설 같았어요. 하교길의 풍경, 화자와 엄마가 손을 잡고 걷는 장면, 집에 돌아와서도 멈추지 않는 화자의 불안함까지요.
연하일휘님의 글은 아래 흐름으로 전개된다고 생각해요.
- 엄마, 아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 친구들을 얼굴을 떠올려 보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 화자는 사람의 '눈맞춤'을 통해 얼굴을 기억한다.
- 화자는 부모를 마주할 때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 이유로 부모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 화자가 부모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 묘사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눈맞춤을 해야하는데 그럴 수 없었던 어린시절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어떤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했으나 눈맞춤을 할 수 없었기에 어린 '나'에게 불안함과 두려움을 줬던 '부모'와의 관계를 '얼굴'이라는 주제에서 가져왔다고 생각하고요.
결론이 다소 느닷없이 정리되는 느낌이 있기에 '화자가 부모 앞에서 고래를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묘사'를 조금 더 압축적으로 보여주거나, 결론으로 가기 전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요소가 추가되면 좋겠어요.
연하일휘님의 마음을 만나는 시간이었고, 어린 시절의 연하일휘님에게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갖고 지내느라 너무 많이 애썼다는 이야기 전하고 싶어요.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 뿅!
[합평]
연하일휘님의 에세이를 자주 봐왔지만, 얼에모를 통한 글은 확실히 좀 다르게 느껴지네요. 어려운 이야기 꺼내주셔서 감사드려요. 쓰시면서 우셨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울음이 더 막막해지는 눈물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상처를 털어낼 수 있는 눈물이었길 바라봅니다.
연하일휘님은 누구보다 정돈되고 단아한 글을 쓰시는 것 같아요. 이번 글에서는 그 장점에 약간의 미스터리가 첨가됐더라고요. 시작부터 좀 충격적이었어요. 여덟 살의 작은 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잊는다는 건 세상을 잃어버린 것과 같기에, 그렇게 시작하는 글을 읽으면서 어떤 사연이 있기에 얼굴을 잊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이 아이의 행동은 여느 아이 같지 않아요. 얼굴을 또 잊을까 봐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 보며 눈물을 흘리는데, 숨죽여 흘리죠. 엄마 아빠에게 들키지 않게. 이 장면에서 이미 이 아이가 어린데도 아이답지 않다는 걸 눈치챌 수 있죠. 에세이보다 소설의 느낌이 초반에 강하게 났던 건, 이런 장면들을 설명하는 데 많이 친절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확 까놓고 이야기를 진행하기보다는 에둘러 설명하는 길을 택하죠.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지금 이게 어느 시점에 대한 이야기인지, 명확히 이 저자의 사연이 무엇인지 알아채기가 어려워요. 후반부에서야 조금 알게 되죠. 몸과 마음의 폭력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음을.
일부러 이런 선택을 했을 수도 있지만, 아직 저자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어요. 어디까지 써야 하고, 어디까지 말할 수 있고,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마음을 아직 정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지난 일이고 부모의 일이기에 이 일을 공개적인 글로 쓰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 사람이 해야 할 건, 글을 쓰는 것보다는 나 자신과의 대화가 아닐까. 글로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건 무엇이고, 나는 왜 쓰며, 나는 왜 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은가. 이 지점에 대해 스스로와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눠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정은 연하일휘님의 몫이기에, 저는 그저 열린 만큼이라도 오롯이 써내려가시길 바랄 뿐입니다.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게 있고, 지금은 쓸 수 없지만 언젠가는 쓸 수 있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아직은 쓸 수 없는 걸 쓰고 나면 응어리가 풀리기보다 돌덩이를 하나 더 얹은 느낌이 들기도 하죠. 이 글은 어느 쪽인지 가늠해보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그 이야기가 더 날 것일수록 더 아픈 것일수록 아마 이 과정을 겪으셔야 할 거예요. 어떤 글을 쓰시든 나를 위한 글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 어떤 글에서도 연하일휘님이 주인공이시길. 첫 글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연하일휘 님은 글을 쓰셔야 사는 분이셨어요.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ㅠ
갑자기 두 딸이 생각 납니다.
그래도 남편은 저 에게만 심하게 했어요.
반말도 하지 않았던 남편이 모든 말이 반말이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욕도하고 때리기도 했지요.
그래도 아이들 한테는 그러지 않아서 참고 살았습니다.
저야 남편이 정신과 환자니까 그런다 하고 살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눈치를 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시간을 지내오느라 고생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지요.
글을 쓰며 우리와 눈을 맞추며 살아요.
이렇게 알게 되여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휘님~ 사랑합니다^^
@JACK alooker 빈 자리에는 행복한 얼굴들만 채워나갈 시간이겠죠:) 비어있기에 채울 수 있나봅니다ㅎㅎㅎ
기억하지 못하는 그 자리에는 행복한 얼굴로만 채워지길 기원합니다.🙏
@빅맥쎄트 감사합니다~!ㅎㅎㅎㅎㅎ
@연하일휘
연하선생님
얼에모 환영합니다!
[합평]
'엄마의 얼굴을 잊어버렸다.'로 시작하는 글의 첫 문장에 엄마가 얽힌 이야기라면 뭔가 절절해지는 제 마음에 따라 눈은 재빨리 글을 쫒아 가네요. 8살의 봄날이라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엄마의 얼굴과 아빠의 얼굴을 그려보는 아이는 옆방에서 잠든 엄마가 깰까봐 숨죽여 울어보지만 엄마아빠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하는군요. 어떤 상처가 있었을까요.
언제나 고개를 숙인 아이, 내 잘못은 아니지만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가 자꾸 아이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어둔 거실 구석에서 홀로 웅크리고 울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 마음이 조마조마 애처롭고 안타깝게 전해집니다.
언니의 이른 독립은 왜 엄마에게 상처였을까요. 글에 나타나지 않아 짐작만 할 뿐, 잘 모르겠지만 그건 모두 내 잘못으로 돌리는 두번째로 태어난 딸. 이 모습은 언니와 동생 사이에 있는 내모습으로 다가와 혹시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날까봐 전전긍긍했던 어린나를 다시 만나게 하는군요.
가정의 폭력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일지는 청소년그룹홈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이 또한 간접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당사자인 아이들 마음을 이루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그저 시스템상 아이들 보호차원에서 심리상담이나 비슷한 프로그램을 받게 하는 것인데, 메뉴얼대로 짜여진 그대로의 시간에 참여했다고 해서 아이들 마음이 치유되기는 커녕, 아이들은 상담이란 말만 들어도 아주 지루하고 피곤하게 여기지요. 어쩌면 지금도 그럴 것 같아요. 이 또한 자본의 논리가 그럴싸한 포장에 가려진 한 예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서 조용히 지나가는 발에 깨진 유리조각이 복병처럼 숨어있습니다. 가슴에 품은 폭발은 그래서 터지고 난 후에 오히려 정면으로 나를 볼 수 있는 에너지로 작동하게 합니다. 이 대목을 읽는 중에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곪아있는 상처를 터쳐서 짜내야 하는데 이 과정을 거쳐야 새 살이 나오니까요. 그러면서 기어코 짓눌린 나를 꺼내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고개를 들어 두려워하던 부모님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읽으면서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어요. 눈을 마주한 누군가의 얼굴은 이제 엄마 아빠의 얼굴로 새로운 기억에 꼭 저장되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잊어버린 얼굴은 다시 기억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읽으면서 연하일휘님의 글 행간마다 스치는 장면과 물기들이 느껴졌어요. 쉽지 않았을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제목을 '잃어버린 얼굴'로 했어도 됐을거 같아요. 잃어버린 것과 잊어버린 것은 다른 뜻이지만.
이 글 읽고 먹먹했어요. 쓰면서 울었을거 같아요.
많이 ㅠ. 내 이야기랑 비슷하네요. (아빠 부분은 달라요;)(언니는 2000년초에 공부하러 미국가서, 2021년도에 영구 귀국했어요. 21년동안 나가있음)(그 사이에 나도 결혼하고, 미국 갔다가 다시 돌아왔죠)
엄마는..
엄마는 이러나저러나 나를 부르셨어요. 지금도. 전화 오죠. 그래도 나는 멀리 살고, 결혼해서 나와 살고 있지만.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31살에 결혼)
엄마가 나와보라 그러고. 듣다가 화나고 ㅜ. 하신 말씀도 비슷해서(엄마들이 비슷하게 말한걸까요?)(아니면 속상하면 나오는 말씀들이 비슷한걸까요?)
더.. 마음이 아팠어요.
지나간 과거지만, 가끔 생각나면 또 찔리는 가시 같은 기억이에요 ㅜㅜ.
토닥토닥..
읽는 동안 마음이 아팠어요. 글을 쓰시면서도 기억을 더듬으며 조금 힘드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토닥토닥
<나는 나의 잘못이 아닌 잘못을 용서받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언니도 엄마도 아빠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지만,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은 내 잘못이었다.>
이 부분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린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없이 태어난 것 뿐인데 말이에요. ㅜㅜ
이제는 @연하일휘 님의 삶에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읽으면서 현요아님의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책이 떠올랐어요.
어려운 이야기 쓰신다고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꺼내주셔서 감사하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