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잊어버린 얼굴

연하일휘
연하일휘 · 하루하루 기록하기
2023/05/19
엄마의 얼굴을 잊어버렸다. 파랗게 물들어가는 이파리들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바닥, 경관용 바위들에 부딪힌 햇살들이 눈부심을 자아냈던 여덟살의 봄날, 나는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차가운 공기에 아리는 뺨을 두 손으로 감싸쥔 채 두리번거렸다. 어디에 있지- 기억나지 않는 얼굴을 더듬으며 헤매다 한 곳에 시선이 멈추었다. 익숙한 옷과 머리를 지닌 한 사람이 교문 앞에서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다. 이내 고개를 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익숙한 목소리의 내 이름, 나는 그제서야 엄마를 알아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의 손을 여느때보다도 더 꼭 잡고 걸었다. 영영 엄마를 알아보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계속해서 고개를 들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귀를 울리는 차소리가 심장의 두근거림을 더한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엄마의 얼굴은 밝은 빛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이부자리를 펴지도 않은 채, 커다란 베개에 몸을 의지하듯 자리에 누웠다. 엄마가 잠이 들었을까. 엄마의 등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가족앨범 하나를 꺼내 들고 옆방으로 향했다. 엄마의 사진을 보고 엄마의 얼굴을 외우려 노력했다. 엄마 눈, 코, 입. 한참을 사진을 노려보다 눈을 감고 엄마의 얼굴을 그려본다. 아무리 사진을 봐도 엄마의 얼굴이 그려지질 않는다. 어느새 주황빛으로 길게 늘어진 햇살이 사진에 반사되며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엄마를 영영 알아보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눈물이 났다. 아빠의 얼굴을 그려본다. 옆 방에서 잠이 든 엄마가 깰까 소리없이 눈물을 닦아내던 그날, 나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의 얼굴도 떠올리지 못했다.

픽사베이


어릴적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나와 친했던 친구들의 얼굴은 하나의 장면으로 남아 머릿속에 남아 있다. 공터에서 나를 바라보던 전파상 집 딸이었던 친구, 전학을 가기 싫다며 빨개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친구, 음악시간에 배운 '두성'이 대체 뭐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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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걸 좋아하지만 잘 쓰진 못해요. 사교성이 없어 혼자 있는 편이지만 누군가와의 대화도 좋아해요.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픈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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