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순결한 여성의 정조만을 보호한다”-박인수 사건(1955)
2023/01/06
1955년 7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대법정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공무원자격사칭’과 ‘공문서부정행사’,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피고 박인수에게 1심형이 선고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정숙하고 엄격하기만 했던 법원은 그날따라 마치 도떼기시장 같았다.
이전 심리에도 만 명 이상의 “그악스러운 방청객들”이 몰려들어 재판 기일이 연기된 것이었는데도,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재판을 보려고 일찍 출발한 구경꾼들로 법원은 만원이었다. 갓 쓴 노인부터 학생과 주부, 기자와 소설가들까지도 먼발치에서나마 박인수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 해,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엉켜 법정은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소란을 막기 위해 법원 앞으로 기마경찰까지 출동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954년에 있었던 ‘자유부인 논란’이 채 가라않기도 전인 1955년 수십 명의 여성과 혼인빙자 간음을 벌이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 여성들만 지탄을 받게 만든 ‘박인수 사건’이 일어났다. 흔히 ‘한국판 카사노바 사건’으로 불리는 ‘박인수 사건’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18세기 이탈리아의 카사노바는 평생 120여명의 여성들과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었는데, 박인수는 불과 1년 만에 70여명의 여성들을 희롱해 잠자리를 가졌다. 어찌 보면 박인수가 카사노바보다 한 수 위(?)였던 셈이다.
도대체 박인수가 얼마나 번듯하고 잘났으면 고위공직자의 아내와 재벌가의 딸, 명문 여대생을 가리지 않고 꾀어냈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몹시 궁금해 했다. 이렇듯 사람들은 박...
@nowwhere210 지금의 윤리감각하고 비교하면 또 다르긴 하지요. '어나더레벨' 인정합니다. 법을 통해 인간의 생사여탈을 관장하는 판사가 국민의 정서와 요구와는 다른 판결을 하는 경우를 종종보는데요. 뭐, 형벌을 결정하는 데 있어 최대한 객관적이고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어요. 박인수 사건이 대표적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AI 판사 이야기는 솔깃한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도 국민의 법감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쏟아지는 상황이지만 50년대의 판결은 정말 어나더레벨이었군요.
AI 판사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에 대해 법조인들도 마냥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일은 아닌듯 싶습니다.
@달빛소년 몇 년 전 발생한 '박사방 조주빈 사건' 보면 형태만 달랐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죠. 여권운동의 신장으로 최근 한국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변화에 대한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현재 정권이 노골적으로 그 반동에 기대 성립한 정권이기도 하구요. 갈 길이 멉니다. 읽어주셔 고맙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남성 위주의 사회가 계속된다면 같은 일이 반복되겠죠.
@nodae79 쭉 이어져 온 한국 언론의 전통이죠.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느냐, 이걸 어떤 방식으로 제시하느냐가 그 이슈의 방향이 결정되는 구조는 여전한가봅니다. 감사합니다.
의제설정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모자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박인수의 범죄가 아닌 여성의 정조에 초점을 맞추고 흥미 위주로만 기사를 내는 당시 언론이 오늘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칭징저 범죄여서 검거하고 구형해 처벌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재미있는 소동쯤으로 취급한 사건 같습니다. 좀 더 나아간 기사도 확실한 처벌과 사회적 예방 조치를 촉구한다기 보다 성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탄식 위주의 세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성범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너무 조악했다 볼 수 있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인수라는 인물을 흥밋거리로 다루고 있는 당시 보도 행태가 눈에 띄네요. 이런 피해를 어떻게 막아야 한다. 확실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런 말은 별로 없었던 모양이죠?
@최성욱 네. 미디어에서 종종 다룬 사건입니다.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당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대중과 언론의 태도들이 아주 가관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적인 사건 사고는 끊임없겠지만, 그것을 대하는 관점은 좀 달라져야겠습니다.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권보연 '정조'라는 표현이 1920~30년대에는 신문이나 문학작품에서도 흔하게 사용되던게 195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1960년대부터는 확연히 줄어들긴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1990년대까지 간간히 등장했습니다. '정조'라는 말이 쓰이지 않게 된 게 사회적 감각이나 윤리가 달라졌다기 보다 1970~80년대 부터 '순결'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된 것 같아요. 대체어가 생기면서 정조가 고리타분한 단어처럼 느껴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정조와 순결 둘 다 비슷한 맥락으로 여성에게 강요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인도에서 성폭력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혼인을 강제로 시킨다는 기사를 몇 차례 읽은 적이 있는데,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군요. 무려 1990년대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실소가 터지네요.
여성의 정조를 공공재로 다루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걸 감사라도 해야 할까요? 제가 어릴 적까지만 해도 그런 시선이 적지 않았습니다.
오늘 스켑틱 코리아 글에서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글이 다뤄졌는데, 이 글과 묘하게 연결되네요. 정신 안 차리면 언제든 이런 세상으로 떨어질지 모르겠다는 아찔한 생각을 하고 갑니다.
의제설정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모자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박인수의 범죄가 아닌 여성의 정조에 초점을 맞추고 흥미 위주로만 기사를 내는 당시 언론이 오늘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nowwhere210 지금의 윤리감각하고 비교하면 또 다르긴 하지요. '어나더레벨' 인정합니다. 법을 통해 인간의 생사여탈을 관장하는 판사가 국민의 정서와 요구와는 다른 판결을 하는 경우를 종종보는데요. 뭐, 형벌을 결정하는 데 있어 최대한 객관적이고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어요. 박인수 사건이 대표적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AI 판사 이야기는 솔깃한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도 국민의 법감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쏟아지는 상황이지만 50년대의 판결은 정말 어나더레벨이었군요.
AI 판사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에 대해 법조인들도 마냥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일은 아닌듯 싶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남성 위주의 사회가 계속된다면 같은 일이 반복되겠죠.
@권보연 '정조'라는 표현이 1920~30년대에는 신문이나 문학작품에서도 흔하게 사용되던게 195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1960년대부터는 확연히 줄어들긴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1990년대까지 간간히 등장했습니다. '정조'라는 말이 쓰이지 않게 된 게 사회적 감각이나 윤리가 달라졌다기 보다 1970~80년대 부터 '순결'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된 것 같아요. 대체어가 생기면서 정조가 고리타분한 단어처럼 느껴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정조와 순결 둘 다 비슷한 맥락으로 여성에게 강요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예전에 들어본 일화인데 글로 정리되어서 보니 느낌이 새롭군요. 성적인 사건 사고는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요.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어요.
'정조'라는 말이 신문 기사나 TV 뉴스에서 언제까지 쓰였는지 문득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그 단어가 어떤 계기로 사라졌는지도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는 미디어에서 저런 단어를 쓰는 걸 못 본 것 같거든요. + (90년대는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님) 1997년 경향신문 기사에서 "혼인빙자간음제" 폐지 주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남자에게 속아 정조를 잃은 여성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법조계 일부 반대 인사의 뜻을 인용했네요.
@박 스테파노 '아름답고 끔찍하다'는 이중적 표현 모두가 여성을 옭아매는 의미로 사용된다는게 더욱 문제적입니다. 지켜야 하는 의무와 잃었을 때의 책임을 여성 스스로 감당해야 하니까요. 말씀하신 드라마는 저도 기억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현안 1990년대도 98년이니 후반이죠. 21세기 직전에 말이죠. 당시 여론 중에는 판사가 법에만 얽매이지 않고 인륜도 고려하는 융통성 있는 판결 내렸다고 칭찬하는 것도 있다는 게 코미디입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