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곡
천세곡 ·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느리게
2024/06/20
*출처: Photo by Sander Sammy on Unsplash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그중 제일 귀찮은 건 면도다.  20년을 넘게 매일 해온 일임에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할 때마다 아프고 따갑다.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는 하겠지만 나의 경우 코를 중심으로 아래쪽은 전부 면도기를 대야만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제거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남김없이 절삭하려 애쓴다. 

  깔끔한 민둥산이 드러날 때까지 면도는 계속된다.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면 어김없이 입주위와 턱은 발갛게 부풀어 오른다. 예민한 성격을 가진 나는 어쩜 이렇게 피부도 이렇게 예민한 것일까.

  진정시키기 위해서 재빨리 애프터 쉐이브 뚜껑을 연다. 듬뿍 따라 내어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몇 번 비빈 뒤, 얼굴에 발랐다. 알코올끼 가득한 손바닥으로 촵촵 볼을 사정없이 두드리면 시원함과 따가움에 이마가 연신 찌푸려진다.

  세상 남자 다하는 면도인데 뭘 그리 엄살이냐 할 수 있다. 나도 처음부터 면도가 아픈 건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뽀시래기 시절에는 달랐다. 수염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얇은 솜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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