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목적하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2023/06/30
1.
인생의 궁극의 목표를 나열해 보라고 하면 거의 항상 이름을 올리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실체를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유'다.
자유로운 상태란 외부로부터 속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자유를 인식하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외부로부터의 속박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벗어났을 때 가능하다. 만약, 속박이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인식할 수 없다. 그러니, 자유라는 걸 목적으로 두면, 결국 외부로부터의 속박에 민감해진다. 자유를 갈망하는 행동이 상대적으로는 더 많은 자유로움을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자유로움 그 자체가 궁극의 목표가 된다면 항상 덜 자유로운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2.
'행복'도 비슷한 논리를 따른다.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행복만을 좇는 일은 오히려 행복을 잊게 만든다. 사람은 그 어떤 행복한 상황을 맞이한다고 하여도, 금세 그 상황에 적응해 버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현상에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쳇바퀴가 제자리에서 돌듯, 행복도 상승하는가 하고 보면 제자리 걸음이다. 그러니까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궁극의 어떠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3.
최근에는 '이성(理性)'이라는 것도 이러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고...
인생의 궁극의 목표를 나열해 보라고 하면 거의 항상 이름을 올리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실체를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유'다.
자유로운 상태란 외부로부터 속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자유를 인식하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외부로부터의 속박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벗어났을 때 가능하다. 만약, 속박이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인식할 수 없다. 그러니, 자유라는 걸 목적으로 두면, 결국 외부로부터의 속박에 민감해진다. 자유를 갈망하는 행동이 상대적으로는 더 많은 자유로움을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자유로움 그 자체가 궁극의 목표가 된다면 항상 덜 자유로운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2.
'행복'도 비슷한 논리를 따른다.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행복만을 좇는 일은 오히려 행복을 잊게 만든다. 사람은 그 어떤 행복한 상황을 맞이한다고 하여도, 금세 그 상황에 적응해 버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현상에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쳇바퀴가 제자리에서 돌듯, 행복도 상승하는가 하고 보면 제자리 걸음이다. 그러니까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궁극의 어떠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3.
최근에는 '이성(理性)'이라는 것도 이러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고...
@연하일휘 헉 더위를.. 더위 먹는 게 생각보다 큰일이더라구요ㅠ 몸조심하시고 연하연히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몬스 더위를 된통 먹어서ㅠㅠ며칠간 고생했어요ㅠㅠ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목요일 보내시기를 바라요!!
@연하일휘 합평 감사드립니다. 건강은 괜찮으신가요?ㅠ
* 건강상의 이유로 합평이 너무 늦어져 버렸습니다ㅠㅠ죄송해요!!
<너무 늦은 합평....>
'자유'에 대한 역설적인 관점을 제시하며 글이 시작되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속박을 인지하느냐- 이것이 기준이 되어 '목적'으로 두는 것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제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자유'를 '목적'으로 둬서는 안되는가- 그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글을 읽어내려가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복과 이성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되며, '이성'. '라플라스의 악마' 이야기를 읽으며 삶에 대한 성찰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흔히 '이성'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것일 뿐, 이성을 추구하는 삶 자체가 그다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글을 읽어내려가며 결국 '삶'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결국 비어있는, 완전하지 않은 삶이란 것이 오히려 완전한 삶은 아닐까....라는 생각도요.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몬스
[합평]
자유에서 행복과 이성, 완전에 이르기까지 생각이 확장된다. 글쓴이는 '자유와 완전'이 그 자체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형태로 적용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고의 내용과 과정은 다르지만, 나의 글과 조금 비슷한 방향으로 쓰였다는 느낌을 받아 신기했다.
자유, 행복과 같은 가치들이 실재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부재한 상황을 전제로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구속된 자들이 자유를 꿈꾸고, 불행한 자들이 행복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SNS에 남기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다. "잃어봐야 그것(그 사람)의 소중함을 안다"
글쓴이는 '궁극이 이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우리가 추구하는 온전해 보이는 가치들, 행복, 완전이라는 것들 또한 사실은 온전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절대적인 궁극의 상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은, 더 이상 다른 것들을 고민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의미를 잃게 만드는, 즉 공허의 상태에 머물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글쓰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완전이라는 말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특정 지점(완전한 삶)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삶(과정)을 추구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완전한 삶이 아닌, 완전함에 다가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완전'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결국 인간이 나태하지 않고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목표로 하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자유이든, 행복이든, 부와 명예든, 어떤 것이든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아닌, 그것들이 모여 인생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https://alook.so/posts/yEtZxbw
[합평]
자유와 행복 이성, 이 세 가지의 명제를 통해 온전한 완전함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글에 가지고 오셨네요. 몬스 님은 참 담대하신 것 같아요. 쉬이 건드릴 수 있는 명제가 아니기에. 이전 글에서도 그렇지만, 일상에서 어떤 명제를 끊임없이 살펴보고 뒤집어보고 꿰뚫어보는 시도를 자주 하신다는 게 글에서 느껴집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ㅋㄷ
이전 글과 달리 이번 글이 좀 아쉬웠던 건, 너무 관념적이었기 때문이에요. 글쓴이의 생각은 있지만, 글쓴이의 삶은 보이지 않아요. 아무리 뛰어난 논리라 하더라도 생생함과 실체가 없으면 독자들의 공감을 제대로 이끌어내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이전 글에서 제가 감탄했던 건, 글쓴이가 자신의 작은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놀라운 통찰을 끌어냈기 때문이었어요.
일상적인 하늘에서도 진리를 깨우치는 것, 작은 곤충의 움직임에서도 삼라만상을 들여다 보는 것, 그게 통찰인 것 같아요. 글은 결국 읽히기 위해 쓰인다고 생각하는데, 거대담론에서 시작하면 소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요. 글이 난해해 잘 안 읽히기도 하고요. ㅜㅜ
사람마다 나무를 잘 보는 사람이 있고, 숲을 잘 보는 사람이 있죠. 저는 후자예요. 몬스 님도 후자이신 것 같아요. 사실 후자인 사람들이 글을 쓰는데 유리한 게 있어요. 세상의 진리를 금세 알아채는 눈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하지만 나무를 놓친다면, 아무리 깨우친다 해도 그걸 알릴 방법을 잃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결국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그 통로를 글을 통해 찾아내야 하지 않나 합니다.
글이 참 어려워요. 설명하는 글보다 보여주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데, 문학이 보여주기 때문에 문학이라는 위치에 있는 것 같거든요. 설명은 쉽지만, 그걸 상황을 통해 풀어낸다는 건 웬만한 구성과 상상이 아니면 범접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럼에도 또 도전을 합니다. 글이 쉬웠다면 매력이 없었겠지, 하면서요.
그럼에도 마지막 두 문단은 밑줄 치고 싶었습니다. 관념적인 글인데도 매력이 넘치는 건, 몬스 님이 진리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 진심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 좀 깨달았어, 이것 좀 볼래,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세상이 궁금해서 순수한 호기심과 탐구정신으로 나아가는 게 글에 그대로 담겨져 있어요. 그래서 늘 몬스 님의 글을 즐겨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글감에 대해 다루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은퇴 하나만이 남았네요. 끝까지 응원합니다!!
그 불가해한 것을 사는게 인생이죠.
비틀즈의 Let it be가 생각나게 하네요~😉
역시 이번에도 '과학자의 에세이'라는 생각이 팍 드는 멋진 글이네요. ^^
목적하면 목적하던 것들의 실체를 잃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 행복, 이성에 대해 목적하며 살아가네요.
좀 어렵지만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_^
@청자몽 공감합니다ㅠ 애절할 땐 멀어지다가, 조금 놓으면 잠깐씩 오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네 하는 자세가 어떤 의미에서는 더 완전한 자세일지도 모르겠어요!
신기한게 뭔가 애절한게 있으면, 저.. 만치 멀어지더라구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ㅜ.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 그런 말도 있는거 같던데.
난 반드시 자유롭고 말테야.
행복은 내꺼~
이런 자세는 별로 바람직한게 아닌가봐요.
그래서 그냥 다 포기하고, '비관적 낙관주의'자 비슷하게 살아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 '나쁘지 않네.'를 떠올리면서요. 그렇지. 그냥 나쁘지 않으니까 됐어.
자유/ 행복/ 이성.. 어찌보면 따로 존재하는 것 같은데..
몬스님 글 보니까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고, 완전 따로 존재하는 별개의 것은 아닌듯 느껴지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 )
@연하일휘 헉 더위를.. 더위 먹는 게 생각보다 큰일이더라구요ㅠ 몸조심하시고 연하연히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몬스 더위를 된통 먹어서ㅠㅠ며칠간 고생했어요ㅠㅠ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목요일 보내시기를 바라요!!
@연하일휘 합평 감사드립니다. 건강은 괜찮으신가요?ㅠ
* 건강상의 이유로 합평이 너무 늦어져 버렸습니다ㅠㅠ죄송해요!!
<너무 늦은 합평....>
'자유'에 대한 역설적인 관점을 제시하며 글이 시작되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속박을 인지하느냐- 이것이 기준이 되어 '목적'으로 두는 것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제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자유'를 '목적'으로 둬서는 안되는가- 그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글을 읽어내려가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복과 이성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되며, '이성'. '라플라스의 악마' 이야기를 읽으며 삶에 대한 성찰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흔히 '이성'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것일 뿐, 이성을 추구하는 삶 자체가 그다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글을 읽어내려가며 결국 '삶'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결국 비어있는, 완전하지 않은 삶이란 것이 오히려 완전한 삶은 아닐까....라는 생각도요.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몬스
[합평]
자유에서 행복과 이성, 완전에 이르기까지 생각이 확장된다. 글쓴이는 '자유와 완전'이 그 자체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형태로 적용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고의 내용과 과정은 다르지만, 나의 글과 조금 비슷한 방향으로 쓰였다는 느낌을 받아 신기했다.
자유, 행복과 같은 가치들이 실재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부재한 상황을 전제로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구속된 자들이 자유를 꿈꾸고, 불행한 자들이 행복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SNS에 남기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다. "잃어봐야 그것(그 사람)의 소중함을 안다"
글쓴이는 '궁극이 이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우리가 추구하는 온전해 보이는 가치들, 행복, 완전이라는 것들 또한 사실은 온전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절대적인 궁극의 상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은, 더 이상 다른 것들을 고민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의미를 잃게 만드는, 즉 공허의 상태에 머물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글쓰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완전이라는 말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특정 지점(완전한 삶)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삶(과정)을 추구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완전한 삶이 아닌, 완전함에 다가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완전'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결국 인간이 나태하지 않고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목표로 하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자유이든, 행복이든, 부와 명예든, 어떤 것이든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아닌, 그것들이 모여 인생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https://alook.so/posts/yEtZxbw
[합평]
자유와 행복 이성, 이 세 가지의 명제를 통해 온전한 완전함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글에 가지고 오셨네요. 몬스 님은 참 담대하신 것 같아요. 쉬이 건드릴 수 있는 명제가 아니기에. 이전 글에서도 그렇지만, 일상에서 어떤 명제를 끊임없이 살펴보고 뒤집어보고 꿰뚫어보는 시도를 자주 하신다는 게 글에서 느껴집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ㅋㄷ
이전 글과 달리 이번 글이 좀 아쉬웠던 건, 너무 관념적이었기 때문이에요. 글쓴이의 생각은 있지만, 글쓴이의 삶은 보이지 않아요. 아무리 뛰어난 논리라 하더라도 생생함과 실체가 없으면 독자들의 공감을 제대로 이끌어내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이전 글에서 제가 감탄했던 건, 글쓴이가 자신의 작은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놀라운 통찰을 끌어냈기 때문이었어요.
일상적인 하늘에서도 진리를 깨우치는 것, 작은 곤충의 움직임에서도 삼라만상을 들여다 보는 것, 그게 통찰인 것 같아요. 글은 결국 읽히기 위해 쓰인다고 생각하는데, 거대담론에서 시작하면 소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요. 글이 난해해 잘 안 읽히기도 하고요. ㅜㅜ
사람마다 나무를 잘 보는 사람이 있고, 숲을 잘 보는 사람이 있죠. 저는 후자예요. 몬스 님도 후자이신 것 같아요. 사실 후자인 사람들이 글을 쓰는데 유리한 게 있어요. 세상의 진리를 금세 알아채는 눈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하지만 나무를 놓친다면, 아무리 깨우친다 해도 그걸 알릴 방법을 잃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결국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그 통로를 글을 통해 찾아내야 하지 않나 합니다.
글이 참 어려워요. 설명하는 글보다 보여주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데, 문학이 보여주기 때문에 문학이라는 위치에 있는 것 같거든요. 설명은 쉽지만, 그걸 상황을 통해 풀어낸다는 건 웬만한 구성과 상상이 아니면 범접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럼에도 또 도전을 합니다. 글이 쉬웠다면 매력이 없었겠지, 하면서요.
그럼에도 마지막 두 문단은 밑줄 치고 싶었습니다. 관념적인 글인데도 매력이 넘치는 건, 몬스 님이 진리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 진심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 좀 깨달았어, 이것 좀 볼래,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세상이 궁금해서 순수한 호기심과 탐구정신으로 나아가는 게 글에 그대로 담겨져 있어요. 그래서 늘 몬스 님의 글을 즐겨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글감에 대해 다루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은퇴 하나만이 남았네요. 끝까지 응원합니다!!
그 불가해한 것을 사는게 인생이죠.
비틀즈의 Let it be가 생각나게 하네요~😉
역시 이번에도 '과학자의 에세이'라는 생각이 팍 드는 멋진 글이네요. ^^
목적하면 목적하던 것들의 실체를 잃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 행복, 이성에 대해 목적하며 살아가네요.
좀 어렵지만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