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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마취제 그리고 노란색 마티즈

1. 
"웃기지말라고 그래. 대학 하나 잘 갔다고 인생 필 정도로 만만한 대한민국이 아니야."
5년 전, 수험생이었던 제게 선생님이 해준 말입니다. 

글쎄요. 그땐 그렇게 와닿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럼 대체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해."
대충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대학 안 가면 죽는 줄 알았던 때였으니까요.

실제로 수험생들은 종종 다 알면서도 착각을 합니다. 이 공부가 너무 힘드니까, 그 고난을 버티기 위해서 일종의 '마취제'를 맞는 겁니다. 
"대학만 가면 다 잘 풀려"
"대학만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말도 안되는 걸 잘 알면서도, 말로 만든 마취제를 맞고 자리에 다시 앉습니다.

사실 대학만 가면 뭐시기 하는 거 전부 다 뻥입니다. 
대학만 가면 다 좋아진다고 말하는 어른, 그거 듣는 수험생. 어차피 서로 다 뻥인걸 압니다.
근데 그거라도 말해주지 않으면, 그거라도 듣지 못하면, 서로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겁니다.

 10대의 마지막을. 혹은 20대의 눈부신 시작을 어두컴컴한 독서실에서 눈비비며 보내야하는 이유를요.

2.
수험생인 저는 주차된 차가 시동이 켜져 있으면 그 앞을 못 지나다녔습니다. 치일까봐요. 갑자기 차가 튀어나올까봐 무서웠습니다. 모든게 지나간 다음에서야 그게 공황장애 초기증상이었단 걸 알았습니다.

 병은 버티는 게 아니라 치료하는 거잖아요. 근데 전 그게 병인줄 몰랐습니다. 의지박약인 줄로만 알았기에, 제가 선택한 건 병원의 처방전 대신 어른들의 마취제였어요. 어른들이 수백번 제게 말했던 그 달콤한 마취의 문장들을 되뇌였습니다. 

"대학만 가면 다 잘 풀려"
"대학만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대학만 가면 너도 저 차 앞을 지나갈 수 있게 될거야"

그래서 대학이 기대만큼 좋았냐구요? 아니요. 저 대학에 입학한 후로도 증상이 한동안 그대로였습니다. 입학하고 한 6개월 지났나. 그제서야 집 앞의 노란 마티즈 앞을 지나가는 데 간신히 성공했습니다. 치여도 안 죽을 거 같은 작은 차로 해봤거든요. 

창피한 이야기긴 합니다만, 처음 성공하고 돌아와 조용히 혼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었던 걸까. 이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갔거든요. 그게 절 그렇게 아프게 할 줄 알았다면, 대학 입시는 애초에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3.
하고 싶은 말은, 대학에 무엇을 기대하든지간에 세상은 수험생들을 실망시킬 거라는 겁니다.
 대학이 병을 고쳐주고, 나를 멋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이전에 본 적 없던 인생의 풍경으로 나를 인도해주리라는 순진한 환상은 박살이 날 겁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그 모든 경험은 여러분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테니까요. 

이제 저는 도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압니다. 노력이 제게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압니다. 쉽사리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을 지켜내는 법. 삶의 중요한 교훈을 혼자 노란색 마티즈와 씨름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당신에게도 있을 겁니다. 당신만의 '노란색 마티즈'가요. 

삶은 언제나 우리를 끝장낼 기세로 달려들고, 한낱 인간인 우리는 번번이 그것과 싸울 수 밖에 없지만,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고통에도 나름의 의미는 있기 마련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인생의 전부가 무너져내리지 않는 한, 인생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목표하는 대학에 붙었든 떨어졌든, 성적이 좋든 나쁘든 간에. 어찌됐든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닐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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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검정시험입니다. 
수능을 보는 모든 동료 시민들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길 빕니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난 후, 시원섭섭한 감정으로 과거와 결별하고, 더 멋있는 스스로를 찾는 여정을 떠나길 빕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부디 마음을 다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길 감히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