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아까 시작했는데 학생이 계단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고운
고운 · 성평등교육하는 교사모임, 아웃박스💜
2021/10/14
원래는 우리 아웃박스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오늘은 다른 생각을 할 엄두가 안 나고 답답해서, 토하듯 써 본다.

*

어제 일이다.
1교시에 수업이 없었다. 교장선생님께 결재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수업 시작한 지 20여 분 지났을 무렵인데, 꺾어지는 계단 복도에 가방 맨 학생이 쪼그려 앉아있었다. "진우 (가명이다) 왜 안 들어가고 앉아있어요? 어디 아파요?" 물었더니 우물거리다 일어서서 교실로 향한다. 딱 봐도 향하는 척만 하고 안 들어갈 기세라 멀찍이 멈춰서서 보고 있었다. 내가 안 가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교실에 들어가더라.

전담을 맡은 해엔 그런 고민이 있다. 학생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개별 특성을 파악할 절대 시간도 부족해서 내가 어디까지 관여하는 게 좋을지 판단이 잘 안 선다. 모호한 진우의 태도가 마음에 걸려서 오전 내내 생각했다, 아까 그렇게 들여보낼 게 아니라 그 복도에 앉아서 대화를 좀 나눴어야 했나. 그래도 되나.

코로나로 오후 2시면 학생들은 다 귀가하는데, 4시가 넘도록 교실에서 뭔가를 쓰다가 담임선생님이랑 얘기 나누곤 하는 진우를 스치듯 봤다. 해야 할 걸 안 했나보구나. 그래서 학교 오기 싫었던 건가?

5시 넘어 퇴근하는데, 노란 볕이 내려앉는 가로수 아래 이어폰 끼고 터덜터덜 걷는 진우가 또 보인다. "하루종일 마주치네~ 진우 조심히 들어가요~" 하며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지나쳤다. 뒤꼭지에 대고 "안녕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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