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커 픽

다들 흔쾌히 코로나 백신을 맞으셨나요?


고백하자면 전 오늘(자정이 넘었으니 어제!) 첫 백신을 맞았습니다. 전 40대 초반이고 대다수 제 또래들은 이미 2차접종을 마쳤거나 곧 맞습니다. 전 많이 늦은 셈이죠. 
왜 늦었는지 핑계를 좀 대보려고 합니다. 
전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이들은 다섯살, 일곱살입니다. 아직도 눈만 뜨면 엄마를 찾는 말괄량이들이죠. 백신접종을 예약하면서 가장 걸렸던 건 아이들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운 나쁘게 내게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내 아이들은 어쩌지. 
사실 지금껏 살면서 항생제 부작용이나 백신 접종 후 아나필락시스 반응 같은 게 온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백신 접종을 앞두고는 좀 불안했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제 면역력은 정말 보잘 것 없이 나빠졌거든요. 
없던 알레르기 증상이 생겨 반려묘와 가까이 지내지 못하고 있고, 잔기침도 자주 합니다. 툭하면 구내염이 생겨 입안이 엉망이 되고 손목과 무릎은 아이들을 키우며 상태가 무척 나빠져 조금만 무리해도 보호대를 하거나 찜질을 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면 말짱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몸이 곯아있는 거죠. 
그렇다보니 아무리 잘 먹고 잘 자도 내 건강에 대한 자신이 없더군요. 나는 과연 건강한가. 내가 혹여 알지 못하는 지병이 있는 건 아닐까. 
정부에서는 계속 예약을 독려하는데 쉽게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어떤 계기로 백신을 맞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는 ebs에서 방영중인 ‘위대한 수업’이었어요.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의 강연이었는데, mRNA백신에 대해 설명하면서 앞으로 어떤 바이러스가 나와도 염기서열만 알면 금방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하더군요. 코로나로 인해 엄청난 기술 발전이 일어났다고요. 
순간 그런 판단이 들었어요. 환경파괴와 기후위기가 심각한 상황에 앞으로 어떤 전염병이 또 닥쳐올지 모르는데 우선 코로나 항체라도 내 몸안에 심어둬야 하는 게 아닐까. 
두번째는 우리는 맞기 싫으면 안맞을 수 있지만 맞고 싶어도 맞을 수 없는 나라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유럽을 비롯해 우리나라도 저개발국가에 백신을 공여하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죠. 그 나라들의 늘어가는 확진자와 사망자수를 보면서 나는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번째는 한 언니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세살 아이가 있는 시한부 진단을 받은 지인이었는데, 아이는 자신이 없어도 자기의 인생을 잘 살아갈 거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섣불리 또 동의하면 안 된다는 모순된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를 접하면서 백신 접종에 대해 한번 더 깊게 생각하게 되더군요. 
네번째 이유는 시댁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번 추석도 가지 못했는데 내년 설엔 가야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백신을 맞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맞는다 해도 아이들은 여전히 노출될텐데. 그럼에도 나라도 맞아야 시부모님이 이제 당당히 오라 하실 수 있다며 좋아하시지 않을까. 

백신은 약효는 짧지만 부작용은 모더나보다 상대적으로 적다는 화이자를 선택해 맞았습니다. 팔이 좀 쑤시고 심장이 이따금 쿵쾅 뛰지만 잘 넘어가겠지, 별일 있겠나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얼룩소에 많은 글들이 오가는데, 유독 백신 접종과 관련된 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들 나름의 이유로 맞고 싶을 수도 맞기 싫을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이유로 맞을 수밖에 혹은 맞을 수도 없는 상황이겠지요. 그런 여러분들의 상황을 듣고 싶어 제 얘기부터 꺼내 봅니다. 

다들 흔쾌히 코로나 백신을 맞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