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어느 통장의 하루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07/14
통장 일을 맡게 된지 1년 반이 지났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부릴 때 전임통장의 임기가 끝나는 중이었다. 임기는 3년으로 3년을 더 연임할 수 있다. 그 시점에 지원자가 없으면 우리 동네는 계속 이어서 하는 게 관례인 것 같다. 전체 통장 50여명의 반 이상이 70대 이상이다. 40대부터 8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였다. 60대 초반인 나는 그래서 젊은 축에 속한다. 통장을 하게 되면서 마을과 이웃이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구에서 실시하는 시범사업이 통장들에게 전달됐다. 노인의료돌봄 통합지원으로 75세 이상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우선대상으로, 거주하는 집에서 의료, 건강관리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위한 설문을 진행하는 것이다. 통장들과 관련담당자들이 1차로 대상가정을 직접 방문 한다. 설문내용은 대상자의 일반적인 특성, 신체기능 상태, 삶의 질 등을 파악하고, 통장 한 명이 다섯 명의 주민을 만난다. 대상자의 노인들은 거의 독거이며 국가유공자이거나 수급자, 또는 장애가 있는 분들이다. 종량제봉투를 전달하면서 이미 낯익은 이름도 있다. 


처음 연락한 A노인이 전화를 받았다. 통화 내내 쉰 목소리다. 그는 자기 몸이 아프니 설문은 어렵다고 했다. 일주일 전에 치매 걸린 아내를 요양원에 입원시켰는데 꼭 버리고 온 것만 같아 마음이 괴롭다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도 갑상선 암으로 병원에라도 다녀오면 그새 밖에 나가 쏘다니는 마누라 찾으러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 할 수 없이 보냈단다. 이제 80을 넘겼는데, 죽을 일만 남았다며 하루하루 마지못해 산다고 했다. 


B노인 이름 옆에는 아들의 연락처가 기재되었다. 연락을 하니 40대로 짐작되는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다짜고짜 시범사업이고 뭐고 당장에 필요한 기저귀지원을 해달라고 했다. 그와 통화하는 타이밍이 마치 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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