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로 더 많이 알려진 김영하 교수가 나오는 영상을 보았다. 꽤 오래 전에 녹화된 방송인 것 같았다. 영상에서 교수는 ‘짜증나’라는 단어를 학생들에게 금지시켰다는데 그 이유는 수많은 감정 표현이 ‘짜증나’하나로 뭉뚱그려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더없이 공감되는 영상을 돌려보고 다시 돌려보았다. 짜증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라 내 속에도 켜켜이 쌓였다. 언젠가의 짜증남은 정확히 말하면 서운함, 답답함, 섭섭함, 속상함 등 수없이 적합한 마음가짐의 표현을 제치고 쉬이 뭉개졌던 거다.
빡친다는 말이 쉽게 들렸다. 길을 걷다가도 몇 번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들었는데, 그 강한 된소리가 처음엔 거슬렸으나 이젠 자극에 둔감해져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앞서 작가가 말했듯, ‘빡친다’는 ‘짜증나’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빡친다는 결괏값에 대해 정말 그 이유를 톺아보면 화가 났는지, 언짢은지, 불쾌한지. 화가 나다의 속된 말인 빡친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