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의 번성과 민주화의 이면 -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1987)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1/18
경찰이 오대양 용인 공장 식당 천장을 뜯고 시체를 끌어내리고 있다. (『동아일보』, 1987년 8월 31일)
1987년 민주항쟁 직후 과도기 한국 사회의 난맥상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망 사건 등으로 인해 분노한 시민들의 봉기와 투쟁은 오랜 군사 독재 정권을 종식시키고, 직선제 개헌이라는 절차적 민주화의 초석을 마련했다. 체육관에서 선출한 군인 출신 대통령이 물러나고, 국민들이 직접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된 것이다. 
   
6월 민주항쟁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난 변혁의 도화선이었다. 1987년 7월에서 9월까지 펼쳐진 노동자 대투쟁은 그간 압축적인 성장을 통해 이뤄낸 결실을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인식을 널리 확산시킨 한국 노동 운동 역사에 길이 남을 이정표가 됐다. 이밖에도 정치와 경제의 영역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생활 방면 곳곳에도 변화의 물결이 감지됐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광장과 거리로 몰려 나와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세계 냉전체제 역시 해빙 무드의 도래로 인해 점차 대립 구도가 완화되면서 자유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우리나라도 이제 곧 자연스레 통일을 이뤄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이듬해에는 개발도상국 최초로 유치에 성공한 올림픽 개최마저 앞두고 있었으니, 우리 국민들의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찬 기대는 점차 커져만 갔다. 
   
하지만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았다. 구체제의 기득권은 여전히 자신의 세력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자본과 제도를 이미 장악하고 재생산 시스템을 갖춰놓았으니, 그들의 견고한 성채가 쉽게 무너질 리 없었다. 힘이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겪는 고통 역시 지난...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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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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