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꿈을 품고,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2/18
“여행 가고 싶지 않아요?”
한때 내가 여행을 홀린 듯 다녔다는 걸 아는 지인들은 가끔 묻는다. 역마살을 잠재우고 어찌 사느냐고.  그럴 때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제는 그렇게 여행 가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진 않아요.”
결혼을 하고 섬으로 이주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코로나를 맞이하고, 자의든 타의든 한동안 붙박이처럼 살아왔다. 섬으로 온 뒤에는 크게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자리를 드디어 찾았기 때문일까. 느리게 흘러가는 시골의 삶이 좋았다.

여행을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도망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의 도피. 집과 나고 자란 도시가 불편했던 나는,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내 자리를 찾아 다닌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했다. 이 도시는 살 만할까, 저 도시는 어떨까. 여기서 산다면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다 만난 게 섬이었다. 한국이지만 바다 건너인 이곳이라면 짐을 한 번 풀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 붙일 곳 없던 이방인이 자리를 잡았다.

초창기에는 이리저리 사람에 치이고, 겨울이면 갈 곳 없이 스산해지는 분위기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여기도 내가 살 곳이 아닌가. 아이를 낳고부터는 육아와 살림과 일에 치어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에 휘둘릴 겨를조차 없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몇 년을 살고보니 어느덧 십 년차 이주민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이방인도 정주인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한동안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작은 꿈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 섬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어디어디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자랑이 될 수도 있지만, 족쇄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왜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수도권에 살지 않을까. 내 부모는 왜 이 외딴 섬에 짐을 풀었을까. 내게는 이 섬이 숨통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답답한 곳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1.1K
팔로워 1.4K
팔로잉 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