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의 멘탈 호신술 -1-

“행님. 세상은 왜 있는 놈이 더 있어지고, 없는 놈은 계속 없어져요?”
 
제 의형제이자 동생이 전화 너머로 했던 말입니다. 그때 저의 대답은.
 
“그러게. 왜 그럴까. 불공평하지. 쟤네 재산은 무슨 아메바도 아니고 냅두면 왜 계속 늘어날까. 내 재산은 존나 빠른 러닝머신 위여. 잠깐 쉬면 이자 못 갚아서 뒤처지잖어.”
 
돈 많은 자에겐 이자가 빵이요 와인이지만, 빚이 많은 자에겐 이자가 칼이요 철퇴밖에 되지 않지요. 지극히 당연한 소립니다. 근데 진짜 문제는 단지 돈이 아닙니다. 돈이 없기에 돈을 쫓는 과정에서 다른 곳에 신경을 기울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내 삶에서 극도로 부족한 지점이 생기면 그쪽에만 시선이 꽂힙니다. 주의가 산만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 자체가 그리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본성을 [터널링 이펙트]라고 하며, 센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샤퍼의 공저 ‘결핍의 경제학’이 다루는 핵심 주제입니다.
 
극단의 결핍이 어떠한 후유증을 낳는지 알아볼 수 있는 실험이 있습니다. 미네소타 기아실험이라는 아주 유명한, 지금은 절대 못 하는 인체실험이 있었지요. 간단하게 요지를 설명하면 6개월간 평소 먹는 음식량에 딱 절반만 줍니다. 말 그대로 쫄쫄 굶기는 게죠. 가혹한 실험 속에서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행동이 발견됩니다.
 
1) 배식이 1분이라도 늦어지면 발작하거나
2) 먹을 때 말이 없음, 밥을 뺏길까 계속 경계하거나
3) 편식 습관이 완벽히 사라지고 식판을 혀로 마구 핥는다거나
 
하는 부작용을 보입니다. 여기까진 그래도 예상이 가능하셨겠지요. 문제는 실험이 끝난 뒤 사회에 복귀하고도 후유증이 남습니다. 메뉴판이나 요리책에 집착하고, 농부나 요리사로 진로를 바꾼 이도 있고, 영화를 볼 때도 먹는 장면에만 유달리 집중하는 등. 삶 자체가 먹는 것에 초점이 가게 됩니다. 터널링 이펙트의 후유증이지요.

먹는 것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가난한 어린아이들에게 온갖 동전의 크기를 어림짐작으로 맞춰보라고 하면 실제보다 크게 인지합니다. 심지어 실물을 눈앞에다가 보여줘도 크기를 더 크게 인지합니다. 밥이나 돈에 해당하는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갈증, 외모, 우정, 외로움, 자존감 등. 육체나 신체를 가리지 않고 인간은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 과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니까 키 작다고 놀리지 말라고
미네소타 기아 실험. 문명4의 간디 몸에서 진짜 마하트마 간디의 몸이 되었다.
가난이라는 건 현대사회의 결핍 중에서도 가장 혹독합니다. 예컨대 약속이 너무 많다면 몇 개를 자를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하다 정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뭐 꺼내먹을 수도 있죠. 바쁘더라도 어지간하면 연차는 끊을 수 있고 잠 많이 못 자면 수면제나 카페인이라도 털어 넣을 수 있습니다. 

가난은 그게 안 됩니다. 본인의 욕망과 현실의 제한 속에서 타협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재량으로 돌파할 수 있는 부분이 무척 제한됩니다. 그렇기에 가난의 저주는 계속해서 흙수저를 쫓아 다니지요. 얼룩커 여러분들은 그런 냉소 자주 들어봤을 겁니다. ‘가난하면 게으르다’, ‘가난하면 절제력이 없다’, ‘가난하면 자기 아이를 막 다룬다’ 등등이요. 심지어 이런저런 통계도 이 냉소가 상당부분 옳음을 증명해줍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가난은 결핍을 부르고, 그 결핍이 또 다른 결핍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잠깐 제 얘기 좀 하자면. 저는 대학교 다니던 시절 내내 공부에 집중을 못 했습니다. 집은 가난하기 짝이 없는데, 생활비라곤 방학 때 공장알바로 벌어둔 게 끝이었거든요. 그나마도 사장 잘못 만나서 월급 밀려서 학식 사먹을 돈이 없어지자, 컵라면을 잔뜩 사서 학교 구석에 쟁여놓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 졸려 좌석버스가 타고 싶었는데 못 탄 적은 수도 없이 많고, 배가 너무 고파 버스비로 학식을 먹고 집까지 걸어간 적도 있습니다. 남들이 공부에 집중할 때 제 머릿속은 ‘오늘 저녁에 얼마만큼 써야 내일 버스비랑 점심에 투자할 수 있지?’라는 생각에 꽉 차 있었습니다. 
 
결핍의 경제학에서는 주의력을 지속하는 힘, 계획을 지켜 나가려는 의지, 유혹에 저항하며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능력의 척도를 [대역폭]이라 칭합니다. 돈이 많으면 이 대역폭이 쉽게 줄지 않습니다. 바쁜 벌꿀 가난한 꿀벌과 부유한 말벌을 예로 들어볼까요. 꿀벌이 만든 벌집은 그야말로 예술품입니다. 벽의 각도는 정확히 120도. 완벽한 육각형 모양에 허용오차는 2퍼센트 내외지요. 녀석들은 왜 이렇게 섬세하게 집을 짓게 되었을까요? 집을 만드는 재료가 너무나 귀하기 때문입니다. 꿀벌은 0.5kg의 밀랍을 얻기 위해 꿀 4키로를 퍼먹어야 합니다. 먹고 싸면 끝이 아니라 아주 작은 밀랍 덩어리를 모아 따뜻하게 만들어서 집 공사장까지 가져와야 하지요. 정말 번거롭습니다. 

반면 말벌과인 나나니벌의 집은 삐뚤삐뚤 엉망입니다. 재료가 엄청나게 흔하거든요. 진흙입니다. 놈은 사방에 널린 진흙으로 대충 집을 지어버리고 맙니다. 제가 버스비와 학식비 도합 5천원 남짓한 돈을 어떻게 남겨야 할 지 하루종일 고민하는 동안. 여유 있는 친구들은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아예 뇌를 쉬게 내버려둘 수도 있겠죠.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부족한 돈을 쪼개 살아남으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역폭은 줄어있는 상태입니다. 하나의 일에 대해서 두 번 세 번 생각할 힘 자체를 빼앗아갑니다. 쉽게 화내고, 쉽게 우울해지고, 쉽게 비관적으로 변합니다. 제가 삼국지를 참 좋아하는데요. 열전에 성격 좋다고 하는 인간들 대다수가 금수저요. 성깔 더러운 인간들 꽤 여럿이 흙수저인 걸 보면, 확실히 이게 인간본성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성격만 문제 생기면 다행인데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급한 불 끄느라 빌린 대출을 계속 못 갚아서 돌려막기하다가 파산하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죠. 돈 뿐만 아니라 시간에도 이러한 대출 이자가 적용되는데요. 경남 마산에 사는 천현우 씨는 원래 어제 얼룩소 원고를 쳐놓고, 청년정책조정위에 발표할 자료 원고를 쓴 다음, 책 원고를 정해놓은 분량만큼 써놓고 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내내 유튜브 보고 놀다가 그만 발표 자료 납기일이 임박했지요. 결국 발표 자료 원고를 쓰는 동안 얼룩소에 쓸 글의 내용은 머릿속에서 증발했습니다. 결국 다시 책을 뒤져야 했고, 밤샘이라는 이자를 치르는 중입니다.
그러하다.
짧고 얇게나마 결핍이 주는 부작용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그럼 이 결핍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샌딜과 엘다 교수는 ‘터널 안에 있는 것에 영향력을 행사하라’라고 주문합니다. 좀 막연하지요? 터널에 빠지지 않도록 외부 힘을 빌리라는 소립니다. 여러분 중엔 헬스장 1년치를 끊어 본 분이 계실 겁니다. 트레이너들한테 물어보면 절반쯤은 3개월 쯤 눈에 띄다가 안 오게 된다고 합니다. 그나마도 띄엄띄엄 오는 경우가 더 많구요. 반면 개인 트레이닝 전용 헬스장은 주 3회 이상 출석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매몰비용의 문제도 있지만(이것도 중요합니다. 진짜 건강하고 싶으면 고의로 돈을 꼬라박는 것도 한 방법.) 트레이너가 끝없이 운동의 필요를 상기시키거든요. 
 
이러한 ‘상기시키기’는 탈러의 넛지에서도 자주 언급됩니다. 넛지 자체가 느슨하지만 지속적으로 개입해서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이죠. 제가 한때 강연이며 출판 요청을 좀 받았는데요. 대부분 능력과 시간이 부족해 거절했습니다. 이때 제일 무서운 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안부 문자 보내서 은근슬쩍 ‘쪼는’ 분들이었습니다. 이 경우 무시하기 진짜 힘들더라구요. 이 ‘무시’가 터널링 이펙트의 핵심인데, 이걸 반대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고의로 무시하도록 강제하는 거죠. 이걸 금융에 적용시키면 자동 적금이나 주식 장기투자가 됩니다. 무시하지 않도록 케어 받기 / 무시하도록 케어 받기. 이 둘은 대단히 단순한 방식이지만 약빨 끝내줍니다. 

실생활에 적용시켜보자면, 저는 한때 술과 야식 때문에 몸무게가 80키로까지 불어난 적 있습니다. 용접일 하면서 몸이 무거워지는 건 치명타지요. 제가 이때 사용한 방법이 ‘무시하도록 케어 받기’였습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인데요. 엄마한테 냉장고를 싹 비워달라고 한 다음, 카드 맡겨놓고 주말에만 돌려받았어요. 야식 먹을 방법 자체를 없애버리니 위에서 언급한 ‘대역폭’을 할애할 이유도 없어서 알아서 살이 빠졌죠. 무시하도록 케어 받은 겁니다. 반면 운동은 지속적으로 케어 받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헬스 트레이너 하는 친구가 일주일에 삼 일씩 과제를 줬어요. 팔굽혀펴기 n회 턱걸이 n회 이런 식으로요. 저는 그 친구에게 완료했다는 인증 영상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마침내 운동을 일상영역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지요.
이젠 혼자서도 운동 잘해요.
첫 회에선 이렇게 결핍이 주는 부작용과, 이를 인지해서 이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터널링 이펙트를 알고 의식하는 것만으로 결핍에 대처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아니 천현우 님. 흙수저 멘탈 호신술이라메요. 돈 얘기는 언제해요?”라고 묻는 분이 있으실 듯하여 답변 드리겠습니다, 다음 시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