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도망자의 삶
아빠가 술을 끊자마자 나는 완전히 도망갈 계획을 세웠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지금이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떠날 날을 지정했다.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지 결정하고, 여행의 시작점을 정했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딸이 아닌 단지 나로 살고 싶었다. 자신이 세상 가장 불행하다고 말하는 부모와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매일매일 지겹도록 쏟아지는 하소연 속에서 이제는 그만 놓여나고 싶었다.
세계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비웃었고 어떤 사람은 부러워했다. 비웃는 사람을 만나면 비웃었던 걸 후회하도록 꼭 여행을 하고 오겠다 다짐을 했다. 부러워하는 사람에게는 너도 갈 수 있다고 책임감 없는 희망을 불어넣었다. 도망이 끝난 뒤 내게 남은 건 사진도 아니고 기록도 아니다. 기억이다. 방랑의 기억. 바람처럼 떠돌았던 기억. 짐을 싸고 풀고 또 쌌던 기억. 지도를 펼치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던 기억. 종일 걷고 또 걸었던 기억.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이민을 생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