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른

홈은
홈은 · 15년차 집돌이
2023/01/26
돌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연휴 기간 동안 글을 읽는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워. 다양한 돌봄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글로 향하는 에너지를 줄일 수밖에 없거든. 무엇을 위해서 글을 줄이냐고? 뻔한 걸 왜 물어. 살기 위해 줄이는 거지. 즐겁게 일하고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해서 힘들지 않다는 말은 아니잖아? 복잡한 뉴스를 볼 마음도 안 생기고 머리도 많이 쓰고 싶지 않아. 정신과 신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걸 완벽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 바로 명절이야. 신체가 나를 압도하면 정신의 영역은 쪼그라들게 되어있어. 이건 신의 설계라 인간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지. 네 말대로 삶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책을 읽고 글을 썼다는 사람들도 있긴 해. 폴 오스터는 '빵굽는 타자기'를 썼고,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 오에 겐자부로는 '읽는 인간'을 썼지만 우리 이거 하나는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고. 세 사람이 명절에 가족을 위해 전을 부치고 생선을 구워가며 기름 묻은 손으로 타자기를 두들겼을 것 같진 않아. 육체노동이 정신노동을 좀먹었다는 핑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젊은 시절의 글'을 쓴 알베르 까뮈를 말하지 그랬어. 아프고 가난한 건 조롱과 멸시의 꼬리표를 단 면죄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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