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쉼은 나를 찾는 일
2023/03/17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연구실 세미나에서 뇌 속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뇌가 휴식 상태일 때 활발해지는 영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보과학 계열의 연구실이지만 사람과 관련된 연구 분야인 관계로, 연구목적에 따라 뇌까지 접근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간간이 생소한 뇌 이야기를 접하곤 했는데, 휴식 때 더 활발해진다는 아이러니함 때문인지 유독 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쉰다는 것의 정의를 활동과 비활동이라는 측면에서 구분하려고 시도한다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모순에 빠진다. 쉬는 순간 활발해지는 것들이 있어서 그렇다. 좀 쉰다고 하고 축구를 하러 나간다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는 등, 어떤 때는 쉰다고 하고 하는 것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쉰다는 것의 정의를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으로 구분하는 건 맞지 않아 보인다. 양이 아니면 뭐지. 방향인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누나는 긴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나갈 때 드디어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일을 하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밉거나 그런 건 아닌데, 하루 종일 아이들과 뒹굴며 몸과 몸의 대화를 하다가 머리를 쓰는 일을 하게 되니 숨통이 트인다는 것이다. '그래 이런 삶이 있었지'라는 감각이 쉼으로 다가온 것일까. 전 세계의 CEO들이 주목해야 할 발언이다. 육아는 일터를 쉼터로 뒤바꾼다.
나 스스로는 쉰다는 정의를 어떻게 내릴까. 그때 ...
쉰다는 것의 정의를 활동과 비활동이라는 측면에서 구분하려고 시도한다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모순에 빠진다. 쉬는 순간 활발해지는 것들이 있어서 그렇다. 좀 쉰다고 하고 축구를 하러 나간다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는 등, 어떤 때는 쉰다고 하고 하는 것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쉰다는 것의 정의를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으로 구분하는 건 맞지 않아 보인다. 양이 아니면 뭐지. 방향인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누나는 긴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나갈 때 드디어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일을 하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밉거나 그런 건 아닌데, 하루 종일 아이들과 뒹굴며 몸과 몸의 대화를 하다가 머리를 쓰는 일을 하게 되니 숨통이 트인다는 것이다. '그래 이런 삶이 있었지'라는 감각이 쉼으로 다가온 것일까. 전 세계의 CEO들이 주목해야 할 발언이다. 육아는 일터를 쉼터로 뒤바꾼다.
나 스스로는 쉰다는 정의를 어떻게 내릴까. 그때 ...
[합평]
너무 멋진 글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합평의 첫 문단을 시작해놓고 한번에 써지지가 않아서 마지막에 다시 찾았습니다. 글 자체는 빠르게 읽었지만, 안에 담긴 제가 잘 알지 못하는 함축적 의미들을 파악하고, 몬스님 글처럼 콤팩트하게 멋진 합평을 쓰고 싶었나봅니다. 포기하고, 감상을 전달합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부분을 읽는데, 예전에 멍때리기 대회 기사를 읽었던 생각이 났네요. 쉬는 것이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이 아닌 정확하지는 않지만 방향에 가깝지 않을까하고 얘기하신 것에서 공감했습니다. 여행을 가거나, 레져활동을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업무를 하는 것보다 신체적 에너지를 더 쓰게 되지요. 마음은 온전히 무거운 일상에서 빼앗길 수 있으나, 몸은 쉬지 못하는 활동아닐까 싶습니다.
누님의 일터는 신체적 쉼터가 될 수도 있고, 비록 일이지만,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해서, 내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결과물을 내는 분리의 쉼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몬스님글들 대부분이 촘촘한데도 술술 읽혀지는데, 이번 글은 유독 더 밀도가 높은고 다양한 정보에 개인적인 정의까지 더해 졌는데도,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글을 쓰는 활동이 몬스님께 어떤 쉼을 제공하는 것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합평]
‘쉼’이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 전까지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할까?
수많은 글감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는데 모두 경험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안정감을 느꼈던 경험,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가던 삶에서 벗어나 잠시시 숨을 돌렸던 순간 같은 것들이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쉼에 대해 다가가고 사유하는 몬스님의 글을 읽으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부럽고 본받고 싶다고 할까요?
저는 글쓰기를 생활화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이지만 항상 글의 마무리가 어렵고 시작과 끝의 맥락이 닿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ㅜ
<그런 의미에서 쉼의 자유는 일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하다. 둘은 상반된 것이 아닌, 물리고 물린 되먹임 구조다.>
쉼-일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은, 항상 함께하는 관계인데 애써 분리하여 생각한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본인만의 쉼을 제대로 취하는 것은 ‘나’를 찾는 것에서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쉼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잘 쉬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고 싶네요. ^^
시작부터 결론까지 어지럽지 않고 깔끔한 몬스님의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과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인간의 뇌는 휴식 상태일 때 활성상태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과학적 사실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휴식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기 위해 과학적 연구 결과를 예로 들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휴식이라 명명할 수는 없다는 가설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휴식의 영역을 단순히 활동과 비활동의 영역으로 구분하여 소비한 에너지의 양을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쉼이라고 인지하는 순간에도 뇌는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은 A가 선택하는 쉼을 위한 행동은 B에게는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사고를 가능하게 해 준다. 일터를 터나 쉬기 위해 찾은 래프팅이 누군가에게는 전문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의 관점에서 일과 휴식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구성원의 선택에 따라 일도 되고 휴식도 된다는 점을 말했다면 개인의 관점에서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는 일과 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쉼을 게으르고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보다는 쉼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지속가능한 일을 위해 멈출 수 있는 삶이 더 건강한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개인마다 쉼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쉼을 위한 행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쉼을 말하고 있지만 쉼에 대한 경험이 아닌 연구 세미나에서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바탕을 도입부를 구성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삶에서 쉼이 가지는 이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자기 주도적 노동이 가능하다는 말에서 한국사회를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남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이나 유명세를 떨치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 개인의 쉼보다는 조직에서의 성과를 우선시 여기는 문화, 오래 앉아있어야 공부도 일도 잘 해낼 수 있다는 비틀린 믿음이 만연한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쉴 권리에 대한 인정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쉼을 마케팅의 수단으로만 보고 접근하는 사회에서 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능력주의와 쉼의 상관성을 언급하며 성공하지 못한 타인의 쉼을 게으름이라 폄하하는 일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쉼에 대한 존중이 곧 타인의 일과 삶에 대한 존중과 같은 말이며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할 원동력이 될 수 있을 텐데 돈이 되는 일과 돈을 쓰는 쉼만 존중하려 드는 한국사회는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합평]
깨어있을 때 열심히 넣어두면, 자고 있을 때 뇌가 잘 정리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열심히 넣는 것도 중요하고, 열심히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내가 쉴 때 비로소 일하는 뇌라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뇌를 나의 일부로 인정한다면, 과연 이건 쉼인가, 아닌가.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히 지키라는 말을 놓고, 과연 안식이란 무엇인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과연 어떤 것인가를 놓고 토론하여 법으로 정한 것들이 많다던데. 어쩌면 쉼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지도.
결국 쉼에 대해 생각했을 때 쏟아져 나오는 이 아이러니함은 [나]로 귀결되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어쩌면 다음 주제인 [나]를 의식하셨을른지도?
일하는 방법만큼 쉬는 방법도 다양하게, 열정적이게, 의미 있게 이야기되는 세상이 필요하다고 주창하시는 몬스 님의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또한 쉼에 관련한 다양한 넌센스들의 향연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고 갑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합평]
몬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 아버지가 저한테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참 한심하구나.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겠니.’ 어린 마음에도 ‘한심하다’는 말에 잘 먹던 밥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무척이나 불편했던 감정을 기억합니다. 얼룩소 어딘가에 썼겠지만 아마도 아버지 눈에 비친 초등학생 어린 딸이 학교를 가지 않고 방바닥에 배를 깔고 공책에 뭔가를 하긴 하는데, 공부하는 건 아니고 쓸데없이 만화 같은 걸 그리고 있는 게 참 한심해보였던 거겠죠.
그때 아버지 눈에 비친 한심한 딸은 지금 한심(閑心)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야 뭔가 하고 싶어질 테니까요. 그러니 더 ‘한심’해져서 ‘가치 있거나 효율적인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그게 글이나 그림이지 싶습니다. 나 자신조차도 설명되지 않는, 표현이 쉽지 않은 어떤 광기 같은 게 동력이 되어 나를 이끄는 것 같습니다.
논리와 과학적인 분위기가 바탕에 깔려있는 몬스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하나의 명제를 세우기 위해 집요하게 탐구하고 정리하는 연구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과학이나 수학관련해서는 머릿속이 먼저 헝클어지는 저와 달리 반듯하게 똑 부러지는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능력이 에세이에서도 충분히 발휘되고 있네요. 물론 재미와 의미를 곁들여서 말입니다.
다음 얼에모 주제를 또 어떻게 써주실지 기대합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진영 한 마디로 요약하신 부분이 꼭 제가 그린 쉼에 대한 그림과 맞는 것 같습니다. 잘 쉰다는 건 영원히 쉰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에 꼬리를 문 생각을 이어나갔던 것 같아요. 정성스러운 합평 정말 감사합니다!
@빅맥쎄트 쉼을 두 개의 프로세스로 구분하니 조금 더 명쾌하게 보이는 듯 하네요. 적극적인 쉼과 소극적인 쉼,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다음 주제인 '나'와 연결되는 건가요!?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씀하시지만 글에서는 충분히 과학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문과와 이과라는 거대한 스펙트럼을 양분해 버린 교육과정의 폐해일까요ㅠ (사실 저도 문학과는 거리가 있다는 편견을 스스로 갖고 있어서..) 합평 정말 감사드려요!
@몬스
[합평]
매번 얼에모 글쓰기를 하면서 같은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른 것을 느끼는데, 이번 주제인 '쉼' 역시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공계열의 유전자를 숨기지 못한 채 쉼이라는 주제의 글을 '디폴트 모드 네크워크' 라는 생소한 용어로 시작하시는 것을 보며 흠칫 놀랬지만, 평소처럼 어려운 내용을 쉽게 써주셔서 크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몬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쉼은 하나의 프로세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과정들, 의식을 하지 않아도 진행되는 것들, 먹고 자고 심장이 뛰는 것 처럼.
그리고 두가지 의미로서의 쉼을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 적극적인 쉼인데요. 이것은 나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것, 그래서 새롭고 가치 있고 효율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할 때 나의 의지로 독립적인 쉼을 얻으며, 스스로 삶을 컨트롤해 나가는 최적화되고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쉼이죠.
반대로 소극적인 쉼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생명체로써의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쉼입니다. 미친듯이 일하고, 머리는 하루종일 돌아가며, 균형잡힌 영양보충과 충분한 수면이 없는 그런 삶. 이러한 삶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며,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크게 악화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처럼요.
과학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지만, 덕분에 조금은 이성적으로 쉼에 대해 접근해볼 수 있었습니다.
고생 많으습니다.
[합평]
쉼. 이라고 하면 편히 쉰다. 일에서 놓여난다 는 범위안에서만 생각 했는데 몬스님의 구체적인 쉼의 정의에 대해 읽고나니 쉼에 대해 어느정도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몸과 마음의 힘듦과 쉼의 명확한 구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몸이 힘들고 정신이 안 힘들때 - 영화를 본다(혹은 책?)
정신이 힘들고 몸은 싱싱할 때 - 조깅 등 운동을 한다.
둘 다 힘들 때 - 암 것도 안한다.
얼핏 당연한 것 같은데 저는 왜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요. 쉼의 구분에 대한 명쾌함이 상당히 신선하게 여겨집니다.
쉼은 나를 찾는 일.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나.
상대적인 존재로서의 나.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시는군요.
많은 분들이 생활을 통한 쉼을 얘기해 주신 반면
몬스님은 쉼 그 자체를 찾아가시는게 참 새롭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한 부분은 ' 잘 쉬고 나면 자발적으로 뭔가 하고 싶어잔다' 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요.
감사합니다.
@박현안
와 정성 가득한 합평 정말로 감사합니다. 매번 멤버들이 남겨주시는 정성가득한 합평에 자극받고 기대하며 글을 쓰게되는 것 같아요.
이번 글이 평소 제 글과 다른 게 있다면 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을 글로 담아볼 수 있었다는 거였어요. 예전에는 생각의 끝에 다른 결론을 가지고 글을 쓴 적이 많았는데, 이렇게 과정을 글로 써보니 생각이 더 힘을 받는 느낌을 스스로 받았습니다.
제목에는 힘을 많이 들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켰네요ㅎㅎ 말씀하신 '두 개의 바퀴'는 제가 말하거자했던 것들의 정말 적절한 요약이자 비유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정성스럽게 읽어주셨다는 생각에 감동을 받습니다..!
바쁜 와중에 얼에모가 숨구멍이 되고 있어요. 이번 주제처럼 일에 끌려다니고 있는 저에게 좋은 '쉼'이 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리를 마련해주신 현안님도, 좋은 글을 쓰고 읽어주시는 멤버분들도 정말 감사해요!
[합평]
몬스님이 에세이를 쓰신다면 어떤 느낌의 글이 나올까 상상해본 적이 있어요. 몬스님의 글에 대한 태도나 올곧은 생각들, 깊은 탐구 정신 등을 꽤 오래 다른 글을 통해 봐왔던 터라 그런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글을 읽으면서 내내 '맞아, 몬스님의 에세이는 바로 이런 모습일 것 같았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만큼 자신이 가진 장점을 에세이라는 장르와 잘 버무려 적어내려가신 것 같아요. 멋준님 글에서 영향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영향을 받기만 한 게 아니라 동시에 자신만의 색깔을 적절히 넣어 승화시킨 글을 완성하신 것 같습니다. 읽어내려가면서 많이 감탄했습니다.
글쓴이는 뇌의 영역 중 쉴 때 더 활성화 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쉰다는 것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사유합니다. 몸과 마음의 쉼,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 일터를 쉼이라 느끼는 누나의 사례, 자율과 비자율적인 것 등. 수많은 쉼의 사례들을 나열하며 단 하나의 정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공통점을 결국 찾아냅니다. '나를 찾는 일'이 곧 쉼이라는 것. 언제 쉼이 필요한지, 일과 쉼은 대척점에 있는 것인지 함께 가야 하는 것인지. 글쓴이는 쉼과 관련해 끝까지 사유를 놓지 않고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더 나아가 사회에서 바라보는 쉼에 다다릅니다. 쉼을 게으름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짚어내면서, 일과 쉼이 되먹임 구조로서 양립해야만 결국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 역시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놀라운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생각의 힘은 세다'는 명제를 이렇게 성실하게 증명해 보이시다니! 최근 무척 바쁘셨다고 들었는데도 이렇게 밀도 높은 글을 써내시는 걸 보면서, 많이 배우고 반성합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주 69시간 근무제가 떠오르면서, 이 글을 대통령 집무실에 보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용어들도 적절히 풀어가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끌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아보자면 제목이었는데요. 제목이 몬스님의 놀라운 통찰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다는 느낌을 좀 받았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다 제가 생각해낸 제목은 이것입니다. "쉼과 일,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두 개의 바퀴"
이번 쉼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이번 글감이 사실 '일'의 또다른 버전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쉼에 대한 글인데 모두들 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쉼과 일은 맞물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몬스님 글은 그 두 가지의 양립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정리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목을 생각해 봤습니다.
어느덧 마지막 글감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진심으로 얼에모에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에세이도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글 감사히 잘 봤습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첫부분부터 감탄을!!
몬스님! 넘넘 멋진 글이에요. 과학자가 쓰는 문학적인 글(밑에 연휘쌤이 칭찬한)이 이렇게 정교하고 멋지네요.
물개박수를 놓고 갑니다.
누나가 있는 남동생이었군요. 어쩐지 참하다 ^^! 했어요. 선하신 분일거 같아요. 실제로 만나뵈면, 말수 적고 수줍은 많은. 누나한테 잘하는 착한 동생 느낌일거 같아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진짜로 멋집니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몬스체'의 글이에요.
@연하일휘
과학적이라기엔 지나치게 사유적이고, 문학적이라기엔 많이 부족한 글을 좋은 면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제에서는 조금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했는데, 쓰고 나서 보니 멋준님 에세이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ㅎㅎ
과학적이면서도 정말 문학적인 글이라.....와,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멋지다.....감탄을 하고 갑니다.
[합평]
‘쉼’이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 전까지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할까?
수많은 글감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는데 모두 경험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안정감을 느꼈던 경험,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가던 삶에서 벗어나 잠시시 숨을 돌렸던 순간 같은 것들이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쉼에 대해 다가가고 사유하는 몬스님의 글을 읽으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부럽고 본받고 싶다고 할까요?
저는 글쓰기를 생활화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이지만 항상 글의 마무리가 어렵고 시작과 끝의 맥락이 닿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ㅜ
<그런 의미에서 쉼의 자유는 일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하다. 둘은 상반된 것이 아닌, 물리고 물린 되먹임 구조다.>
쉼-일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은, 항상 함께하는 관계인데 애써 분리하여 생각한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본인만의 쉼을 제대로 취하는 것은 ‘나’를 찾는 것에서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쉼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잘 쉬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고 싶네요. ^^
시작부터 결론까지 어지럽지 않고 깔끔한 몬스님의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과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인간의 뇌는 휴식 상태일 때 활성상태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과학적 사실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휴식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기 위해 과학적 연구 결과를 예로 들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휴식이라 명명할 수는 없다는 가설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휴식의 영역을 단순히 활동과 비활동의 영역으로 구분하여 소비한 에너지의 양을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쉼이라고 인지하는 순간에도 뇌는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은 A가 선택하는 쉼을 위한 행동은 B에게는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사고를 가능하게 해 준다. 일터를 터나 쉬기 위해 찾은 래프팅이 누군가에게는 전문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의 관점에서 일과 휴식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구성원의 선택에 따라 일도 되고 휴식도 된다는 점을 말했다면 개인의 관점에서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는 일과 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쉼을 게으르고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보다는 쉼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지속가능한 일을 위해 멈출 수 있는 삶이 더 건강한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개인마다 쉼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쉼을 위한 행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쉼을 말하고 있지만 쉼에 대한 경험이 아닌 연구 세미나에서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바탕을 도입부를 구성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삶에서 쉼이 가지는 이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자기 주도적 노동이 가능하다는 말에서 한국사회를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남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이나 유명세를 떨치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 개인의 쉼보다는 조직에서의 성과를 우선시 여기는 문화, 오래 앉아있어야 공부도 일도 잘 해낼 수 있다는 비틀린 믿음이 만연한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쉴 권리에 대한 인정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쉼을 마케팅의 수단으로만 보고 접근하는 사회에서 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능력주의와 쉼의 상관성을 언급하며 성공하지 못한 타인의 쉼을 게으름이라 폄하하는 일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쉼에 대한 존중이 곧 타인의 일과 삶에 대한 존중과 같은 말이며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할 원동력이 될 수 있을 텐데 돈이 되는 일과 돈을 쓰는 쉼만 존중하려 드는 한국사회는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합평]
깨어있을 때 열심히 넣어두면, 자고 있을 때 뇌가 잘 정리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열심히 넣는 것도 중요하고, 열심히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내가 쉴 때 비로소 일하는 뇌라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뇌를 나의 일부로 인정한다면, 과연 이건 쉼인가, 아닌가.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히 지키라는 말을 놓고, 과연 안식이란 무엇인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과연 어떤 것인가를 놓고 토론하여 법으로 정한 것들이 많다던데. 어쩌면 쉼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지도.
결국 쉼에 대해 생각했을 때 쏟아져 나오는 이 아이러니함은 [나]로 귀결되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어쩌면 다음 주제인 [나]를 의식하셨을른지도?
일하는 방법만큼 쉬는 방법도 다양하게, 열정적이게, 의미 있게 이야기되는 세상이 필요하다고 주창하시는 몬스 님의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또한 쉼에 관련한 다양한 넌센스들의 향연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고 갑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합평]
몬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 아버지가 저한테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참 한심하구나.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겠니.’ 어린 마음에도 ‘한심하다’는 말에 잘 먹던 밥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무척이나 불편했던 감정을 기억합니다. 얼룩소 어딘가에 썼겠지만 아마도 아버지 눈에 비친 초등학생 어린 딸이 학교를 가지 않고 방바닥에 배를 깔고 공책에 뭔가를 하긴 하는데, 공부하는 건 아니고 쓸데없이 만화 같은 걸 그리고 있는 게 참 한심해보였던 거겠죠.
그때 아버지 눈에 비친 한심한 딸은 지금 한심(閑心)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야 뭔가 하고 싶어질 테니까요. 그러니 더 ‘한심’해져서 ‘가치 있거나 효율적인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그게 글이나 그림이지 싶습니다. 나 자신조차도 설명되지 않는, 표현이 쉽지 않은 어떤 광기 같은 게 동력이 되어 나를 이끄는 것 같습니다.
논리와 과학적인 분위기가 바탕에 깔려있는 몬스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하나의 명제를 세우기 위해 집요하게 탐구하고 정리하는 연구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과학이나 수학관련해서는 머릿속이 먼저 헝클어지는 저와 달리 반듯하게 똑 부러지는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능력이 에세이에서도 충분히 발휘되고 있네요. 물론 재미와 의미를 곁들여서 말입니다.
다음 얼에모 주제를 또 어떻게 써주실지 기대합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진영 한 마디로 요약하신 부분이 꼭 제가 그린 쉼에 대한 그림과 맞는 것 같습니다. 잘 쉰다는 건 영원히 쉰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에 꼬리를 문 생각을 이어나갔던 것 같아요. 정성스러운 합평 정말 감사합니다!
@빅맥쎄트 쉼을 두 개의 프로세스로 구분하니 조금 더 명쾌하게 보이는 듯 하네요. 적극적인 쉼과 소극적인 쉼,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다음 주제인 '나'와 연결되는 건가요!?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씀하시지만 글에서는 충분히 과학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문과와 이과라는 거대한 스펙트럼을 양분해 버린 교육과정의 폐해일까요ㅠ (사실 저도 문학과는 거리가 있다는 편견을 스스로 갖고 있어서..) 합평 정말 감사드려요!
@몬스
[합평]
매번 얼에모 글쓰기를 하면서 같은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른 것을 느끼는데, 이번 주제인 '쉼' 역시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공계열의 유전자를 숨기지 못한 채 쉼이라는 주제의 글을 '디폴트 모드 네크워크' 라는 생소한 용어로 시작하시는 것을 보며 흠칫 놀랬지만, 평소처럼 어려운 내용을 쉽게 써주셔서 크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몬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쉼은 하나의 프로세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과정들, 의식을 하지 않아도 진행되는 것들, 먹고 자고 심장이 뛰는 것 처럼.
그리고 두가지 의미로서의 쉼을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 적극적인 쉼인데요. 이것은 나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것, 그래서 새롭고 가치 있고 효율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할 때 나의 의지로 독립적인 쉼을 얻으며, 스스로 삶을 컨트롤해 나가는 최적화되고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쉼이죠.
반대로 소극적인 쉼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생명체로써의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쉼입니다. 미친듯이 일하고, 머리는 하루종일 돌아가며, 균형잡힌 영양보충과 충분한 수면이 없는 그런 삶. 이러한 삶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며,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크게 악화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처럼요.
과학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지만, 덕분에 조금은 이성적으로 쉼에 대해 접근해볼 수 있었습니다.
고생 많으습니다.
[합평]
쉼. 이라고 하면 편히 쉰다. 일에서 놓여난다 는 범위안에서만 생각 했는데 몬스님의 구체적인 쉼의 정의에 대해 읽고나니 쉼에 대해 어느정도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몸과 마음의 힘듦과 쉼의 명확한 구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몸이 힘들고 정신이 안 힘들때 - 영화를 본다(혹은 책?)
정신이 힘들고 몸은 싱싱할 때 - 조깅 등 운동을 한다.
둘 다 힘들 때 - 암 것도 안한다.
얼핏 당연한 것 같은데 저는 왜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요. 쉼의 구분에 대한 명쾌함이 상당히 신선하게 여겨집니다.
쉼은 나를 찾는 일.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나.
상대적인 존재로서의 나.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시는군요.
많은 분들이 생활을 통한 쉼을 얘기해 주신 반면
몬스님은 쉼 그 자체를 찾아가시는게 참 새롭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한 부분은 ' 잘 쉬고 나면 자발적으로 뭔가 하고 싶어잔다' 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