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내 얘기 좀 해 줄까?

진영
진영 · 해발 700미터에 삽니다
2023/03/27
 나는, 세느강 다리 위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어.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버스를 내려 강만 건너면 바로 학교 뒷문이었지.
파리 에꼴 데 보자르. 프랑스 최고의 국립미술대학.  그 학교에 합격했을 때 얼마나 기뻤나 몰라.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지. 내 사진이 떡하니 붙어있는 학생증을 받고도 실감이 나질 않았어.
학교는 궁전처럼 아름답더군. 아니 궁전 그 자체였어.
그 유명한 소르본느대학도 무심히 길을 걷다 문 하나만 열면 거기가 학교야. 운동장? 그런거 없어.
근데 이 학교는 달라. 우선 교문에 들어서면 높다란 오벨리스크가 중앙에 우뚝 선 넓은 광장이 맞아주지. 건물 사이엔 분수가 있는 멋진 중정이 꾸며져 있고 건물 벽엔 그 학교를 졸업한 유명화가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어. 복도엔 로뎅의 조각이 아무렇지 않게 놓여있고. 원형의 강의실은 또 어떻고. 너무 웅장해서 사람을 압도하지. 천장엔 시스티나성당 같이 화려한 천장화가 그려져 있어. 이게 학교겠어? 궁전이지. 그런 학교가 등록금을 한 푼도 안받는다. 오히려 가끔씩 유화물감이나 기름을 나눠주기도 해.
누드크로키실에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델들이 번갈아 포즈를 취하고 있어 언제라도 가서 그리면 돼. 주로 아줌마나 할머니 모델들이 많아. 남자도 있고. 축 늘어진 젖가슴과 불룩한 뱃살이 재미있어.
여기가 천국이냐고? 그래 천국이야. 미술학도들의 천국.
완벽한 혜택과 자유가 보장되는 곳. 시간표 같은 건 애초에 없어. 5년동안 정해진 이론과목과 부전공을 이수하면 졸업작품 심사에 도전할 수 있어. 이론과목은 문화사, 해부학, 미학... 같은거야.
학생들은 자기 맘에 드는 교수를 선택해 그 아틀리에에서 공부를 하지. 근데 공부란 말은 좀 이상해. 교수는 암것도 가르쳐 주질 않거든. 1주일에 1번 와서 1시간 머물며 하는 일이 뭔 줄 알아? 애들이랑 쪽쪽 볼뽀뽀하는 게 다야. 그림을 들고 오는 애들도 있지만 교수가 하는 말은 딱 한 가지.정말 멋지다.니가 최고다. 끝.  뭐하러 보여주나 몰라.

너무 완벽한 자유. 나는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3.3K
팔로워 820
팔로잉 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