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내 얘기 좀 해 줄까?
2023/03/27
나는, 세느강 다리 위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어.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버스를 내려 강만 건너면 바로 학교 뒷문이었지.
파리 에꼴 데 보자르. 프랑스 최고의 국립미술대학. 그 학교에 합격했을 때 얼마나 기뻤나 몰라.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지. 내 사진이 떡하니 붙어있는 학생증을 받고도 실감이 나질 않았어.
학교는 궁전처럼 아름답더군. 아니 궁전 그 자체였어.
그 유명한 소르본느대학도 무심히 길을 걷다 문 하나만 열면 거기가 학교야. 운동장? 그런거 없어.
근데 이 학교는 달라. 우선 교문에 들어서면 높다란 오벨리스크가 중앙에 우뚝 선 넓은 광장이 맞아주지. 건물 사이엔 분수가 있는 멋진 중정이 꾸며져 있고 건물 벽엔 그 학교를 졸업한 유명화가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어. 복도엔 로뎅의 조각이 아무렇지 않게 놓여있고. 원형의 강의실은 또 어떻고. 너무 웅장해서 사람을 압도하지. 천장엔 시스티나성당 같이 화려한 천장화가 그려져 있어. 이게 학교겠어? 궁전이지. 그런 학교가 등록금을 한 푼도 안받는다. 오히려 가끔씩 유화물감이나 기름을 나눠주기도 해.
누드크로키실에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델들이 번갈아 포즈를 취하고 있어 언제라도 가서 그리면 돼. 주로 아줌마나 할머니 모델들이 많아. 남자도 있고. 축 늘어진 젖가슴과 불룩한 뱃살이 재미있어.
여기가 천국이냐고? 그래 천국이야. 미술학도들의 천국.
완벽한 혜택과 자유가 보장되는 곳. 시간표 같은 건 애초에 없어. 5년동안 정해진 이론과목과 부전공을 이수하면 졸업작품 심사에 도전할 수 있어. 이론과목은 문화사, 해부학, 미학... 같은거야.
학생들은 자기 맘에 드는 교수를 선택해 그 아틀리에에서 공부를 하지. 근데 공부란 말은 좀 이상해. 교수는 암것도 가르쳐 주질 않거든. 1주일에 1번 와서 1시간 머물며 하는 일이 뭔 줄 알아? 애들이랑 쪽쪽 볼뽀뽀하는 게 다야. 그림을 들고 오는 애들도 있지만 교수가 하는 말은 딱 한 가지.정말 멋지다.니가 최고다. 끝. 뭐하러 보여주나 몰라.
너무 완벽한 자유. 나는 ...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버스를 내려 강만 건너면 바로 학교 뒷문이었지.
파리 에꼴 데 보자르. 프랑스 최고의 국립미술대학. 그 학교에 합격했을 때 얼마나 기뻤나 몰라.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지. 내 사진이 떡하니 붙어있는 학생증을 받고도 실감이 나질 않았어.
학교는 궁전처럼 아름답더군. 아니 궁전 그 자체였어.
그 유명한 소르본느대학도 무심히 길을 걷다 문 하나만 열면 거기가 학교야. 운동장? 그런거 없어.
근데 이 학교는 달라. 우선 교문에 들어서면 높다란 오벨리스크가 중앙에 우뚝 선 넓은 광장이 맞아주지. 건물 사이엔 분수가 있는 멋진 중정이 꾸며져 있고 건물 벽엔 그 학교를 졸업한 유명화가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어. 복도엔 로뎅의 조각이 아무렇지 않게 놓여있고. 원형의 강의실은 또 어떻고. 너무 웅장해서 사람을 압도하지. 천장엔 시스티나성당 같이 화려한 천장화가 그려져 있어. 이게 학교겠어? 궁전이지. 그런 학교가 등록금을 한 푼도 안받는다. 오히려 가끔씩 유화물감이나 기름을 나눠주기도 해.
누드크로키실에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델들이 번갈아 포즈를 취하고 있어 언제라도 가서 그리면 돼. 주로 아줌마나 할머니 모델들이 많아. 남자도 있고. 축 늘어진 젖가슴과 불룩한 뱃살이 재미있어.
여기가 천국이냐고? 그래 천국이야. 미술학도들의 천국.
완벽한 혜택과 자유가 보장되는 곳. 시간표 같은 건 애초에 없어. 5년동안 정해진 이론과목과 부전공을 이수하면 졸업작품 심사에 도전할 수 있어. 이론과목은 문화사, 해부학, 미학... 같은거야.
학생들은 자기 맘에 드는 교수를 선택해 그 아틀리에에서 공부를 하지. 근데 공부란 말은 좀 이상해. 교수는 암것도 가르쳐 주질 않거든. 1주일에 1번 와서 1시간 머물며 하는 일이 뭔 줄 알아? 애들이랑 쪽쪽 볼뽀뽀하는 게 다야. 그림을 들고 오는 애들도 있지만 교수가 하는 말은 딱 한 가지.정말 멋지다.니가 최고다. 끝. 뭐하러 보여주나 몰라.
너무 완벽한 자유. 나는 ...
[합평]
진영님이 유학하시던 시절의 프랑스라는 거리감에 견줄바 못되지만, 해외로 유학와서 감당이 안되는 자유를 경험하고 있는지라 무척 공감하며 읽어내려갔습니다. 이 막연한 불안감 끝에 무엇이 있을지 도무지 보이지 않아 더욱 그러하구요.
재능이라는 건 홀로 가진 능력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마음껏 펼치기 위해선 그에 맞는 환경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건 묵묵히 내 곁을 지켜준 가족일수도, 실패하더라도 망하지 않을 것을 보장해주는 재력일수도, 옆에서 꾸준히 동기부여해주는 동료와 선후배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모든 걸 고려하여 결정지을 수 있는 일이란 흔치 않죠. 그래서 흔히 재능을 발휘한 사람은 스스로의 재능이라고 생각하거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의 부족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꿈은 오로지 남편과 애들이 마음껏 꿈꾸게 해주는 것이었지요. 나를 밟고 내 꿈을 밟고 그들은 훨훨 날아 올랐습니다."
남편 분, 그리고 아마 자녀분의 성공에는 진영님의 희생이 있었다는 걸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보면 성공한 사람 스스로의 재능보다도 이러한 희생이 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재능은 수동인 반면 희생은 능동이기 떄문입니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는 반면, 희생은 선택할 수 있죠. 사회에 피는 재능이라는 꽃은 항상 그 뒤에 누군가가 선택한 희생을 양분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텅 비어보이는 껍질을 깨어버리고 더 누리셨으면 좋겠어요.
평소와는 다른 구어체로 쓴 글이 신선했습니다. 프랑스 유학시절의 묘사와 감정의 전달에도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구요. 마치 친구에게 듣는 것처럼 생생하고 아프게 읽혔어요. 묵은 감정 글로 쓰시느라 많이 힘드셨을텐데, 써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간의 글에서도 서사와 묘사를 잘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번 글에서는 특히 더 그랬습니다. 진영님만의 독특한 색이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매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꾸준히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며 본인의 색을 찾아가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1기 얼에모는 끝났지만 앞으로의 글도 기대가 됩니다. 수고하셨어요!
@살구꽃
학창시절에 맨날 그리던 인물이니 정물이니 그런데서 벗어나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싶었지만 방향이 안 잡히고 그때 관념으로 로 꽉 찬 나이에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지내려니 초조하고 쫒기는 느낌이었어요. 어쩜 안오고 버텼으면 제대로 된 작품을 했을까요
이런 건 사실 다 변명이고 진짜로는 재능이 부족했던거죠. 열정도 모자라고...
이 유학얘긴 제가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하기에 아무에게도 말안하는 비밀이었어요.
중간에 돌아올 줄 알았으면 열심히 학교 안다니고 여행이나 실컷하고 올걸 그랬나 싶습니다. ㅎㅎ
[합평]
이 글을 처음 읽을 때는 너무나 화려한 이력으로 눈이 부셔서, 먼 나라까지 갔다가 결혼이라는 명분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이유가 너무 애석해서 감탄과 탄식이 뒤섞여 안타까웠어요. 미술교사로 그곳까지 입성하는 과정에서 진영님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음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화집에서만 보던 명화들이 눈 앞에 있고, 틈만 나면 미술관과 화랑을 드나드는 일상이 누군가에겐 평생 가 닿을 수 없는 로망에 불과합니다만, 그래서 위축되고 그 큰 작품을 바라보며 점점 어깨의 부담이 너무 컸을까요. 입학 하자마자 졸업을 포기하는 심정, 그리고 한국어로도 쉽지 않은 과목들을 불어로 이수한다니... 한때는 불어공부를 해볼까 싶어서 방송대 불문과를 신청했다가 한학기만 겨우 마치고 나왔던 적이 있어요. 왜 굳이 불어였는지. 여러 이유가 있긴 했지만 재미가 없으니 자신도 없고 한순간 무의미해졌어요. 먹고살기 바빴다는 건 핑계로 둘러대기에 딱 좋았죠.
진영님에게 용납이 되지 않는 ‘구태의연한 그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럼 용납이 되는 ‘구태의연하지 않은 그림’은 또 무엇일까요. 이 대목에서 저는 학창시절의 두 친구가 떠올랐어요.
각각 시와 소설을 쓰는 친구였는데요, 합평시간에 소설을 쓰던 친구는 엄청난 칭찬을 받았어요. 하루를 꼬박 일하고 들어온 노동자의 작업복에 대한 묘사였는데, 선생님은 그 글에 대해서 아주 신선하고 노동자의 피곤함까지 글에서도 느껴진다, 라고 했어요. 친구는 자기가 써놓고도 그런 칭찬을 받을 줄 몰랐을 거에요. 친구가 그 평에 대해서 우쭐하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이번에 시를 썼던 친구에 대한 평은 아주 혹평이었어요. 주제가 ‘가을’이었어요. 시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빨강, 노랑... 어쩌구 하는 글은 확실하게 기억해요. 선생님은 그 특유의 시크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어요. 그리고 안경 너머로 이 시 누가 썼냐고 되물었어요.
친구는 강릉지역에서 그래도 시를 쓰는 누구라고 하면 알아주는 편이었대요. 강의실에 모인 스무살 어린친구들보다 6살 차이가 났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했죠. 아마 선생님이 누가 썼냐고 물었을 때, 어쩜 친구는 은근히 기대를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만큼 시를 써왔기 때문에요.
“이기 이기... 이게 신가? 음... 빨강, 노랑, 파랑이라... 지금 이기 대학생이 맞나? 이거는 완전 초등학생이다. 빨강이라니, 하이고~ 노랑, 파랑이라니... 흐음... 이렇게 써 놓고 이거 내고 싶었나?”
강의실은 소설을 평했을 때도 그랬지만 시를 평하는 그 순간 모두 똑같이 숨소리하나 들리지 않았어요. 두 친구는 각 시간에 모두 얼굴이 홍당무가 됐어요. 한 친구는 설레는 벅참으로, 또 한 친구는 철렁한 모멸감으로, 사랑과 상처를 받은 극과 극의 평이었지만 결론은 두 친구가 이후로 지금까지 글을 전혀 쓰지 못했다는 겁니다.글이 꽤 길어졌습니다. 합평이라고 쓰다 보니 친구들 얘기가 어느 대목에서 머물렀네요.
진영님의 글은 저에게 어떤 의미로는 깊은 가르침을 주는 글이었어요. 예술을 떠나 살아가는 일에도 말입니다. 긴 글 쓰시느라 애쓰셨어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진영님의 글이 또 다른 아트가 되길 응원합니다.
[합평]
지나간 옛 글에 미술 작품이나 그림 이야기를 종종 하신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림에 굉장히 관심도 많고 지식도 남다르다 느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역시 여자의 육감은 틀리지 않았구나 제 자신을 칭찬했습니다. ^^
그동안 결혼 전 교사로 일하셨던 경험과 ‘일’에 대한 에세이에서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것을 쓰셨지만 전공이 무엇인지 감쪽같이 드러내지 않아 늘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재능을 지닌 분이신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얼룩소에는 유독 미술과 관련된 분들이 많으신 듯합니다. 만약 저였다면 입이 근질근질하고 자랑도 하고 싶었을 텐데 다시 한번 진영님의 속 깊음에 놀라고 드러내지 못했던 상처가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꿈만 같았던 프랑스 최고의 국립미술대학에 합격을 하고, 기뻐했던 모습을 보고 유학을 가게 된 계기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지상 낙원처럼 묘사한 학교의 풍경, 미술학도들의 천국, 완벽한 자유와는 대비되게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학교생활과 졸업이 불투명한 상황, 예술적 재능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 파리의 무거운 하늘빛으로 표현하신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예술가의 고뇌가 느껴져 역시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조심스러운 짐작을 했습니다.
진영님의 거침없는 성격만큼이나 맞선부터 첫만남, 결혼 준비 과정들이 군더더기 없이 진행된 것을 보고 사람의 성격이 인생의 곳곳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전공이라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또 같은 이유로 진영님은 배우자를 통해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미처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준 것을 넘어 예술가로서 작품과 작업에 푹 빠져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허무하고 쓸쓸한 마음이 전해져 덩달아 제 마음의 한구석이 아려왔습니다. 눈물도 찔끔 흘렸고요.
두 날개가 꺾여 가족들에게 기꺼이 온몸을 내어주신 진영님의 희생이 대단하다 못해 거룩하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다시 작은 날개가 돋아나 조금씩 날갯짓을 하며 ‘나’를 위해 훨훨 날아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어려운 이야기 꺼내 놓으시고 글 쓰시느라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진 않으셨을까 싶기도 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잊지 못할 [얼에모]를 함께 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
@진영
[합평]
지난 예술인 남편에 이은 후속작으로 연결되는 느낌의 글이었습니다. 살구꽃님의 글에서 미술과 관련된 내용을 많이 봤었는데, 진영님도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스펙을 보유하고 계셨네요. 몰라 뵈었습니다.
생소하고 낯선 단어들로 시작하는 글은 심플하게 2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최고의 국립미술대학교에서 보낸 시절과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느꼈던 텅 빈 공허함.
진영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터프함, 털털함, 강인함' 같은 것들입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크게 요동하지 않는 튼튼한 나무와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의 글을 읽으면서 제법 걱정이 됩니다. 빈 껍데기라니. 그냥 하시는 말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서서히, 확실하게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울림이 느껴져요.
"여기가 천국이냐고? 그래 천국이야. 미술학도들의 천국." 이 문장을 통해 진영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은 어떠한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최고로 멋진 삶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외롭고 쓸쓸하고 공허한 삶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술자적 기질이 가득한 남편은 남들이 평생에 한 번도 하기 힘든 개인전을 세계적으로 진행하는 능력자이지만, 그 속에서 진영님이 느끼는 건 삶에 대한 기쁨과 열정, 보람이 아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탈감이 느껴졌어요.
아무래도 도약을 위한 전환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MT 한 번 집결할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합평]
지난 글에서 제가 엿보았던 남편분을 향한 '동경'의 시선, 그 의문이 풀리는 글이었어요. 글쓴이는 대화체 형식을 선택해 무척 친근하게 독자에게 다가가면서 자신의 지난 삶을 반추합니다. 자신이 잃어버렸던 아픈 삶의 순간들을. 발랄하고 쾌활한 문체에 비해 담긴 내용은 무겁고 많이 아렸어요. 날개가 꺾이며 살아온 지난 삶. 나의 존재가 없을수록 더 잘 굴러간다 여겨지던 나의 집. 그 시간들을 모두 보낸 뒤 우두커니 남아있는 글쓴이를 바라보면서 많이 아팠습니다.
글 속의 대비가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궁전 같은 파리의 대학 모습, 모든 게 무료이고 자유롭지만, 그 지나친 자유에 망설이고 방황하는 글쓴이. 화려한 대학의 모습과 무거운 세느강의 물빛이 대비되는 것도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결혼 뒤에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개인전은 물론 그룹전과 해외전까지 이어가는 남편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그저 새색시였다가 산모였다가 아내이자 엄마로만 살아가는 '나'가 있습니다.
그 선명한 대비를 이렇게 짧은 글에 무척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계신 점이 놀라웠어요. 문장이 짧고 속도감이 있어 무척 경쾌한데, 그 경쾌함 속에서도 명료한 대비와 스러져가는 글쓴이의 마음을 드러내시다니요. 이제라도 다시 '나'만을 위한 삶에 시동을 걸어보시라고, 두손 모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았습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왜 교사직을 그만 두고 파리를 갔는지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글쓴이에게는 분명 목표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유학이라는 게 쉬운 시대도 아니었거니와 안정적인 직장을 두고 모험을 한다는 건 어떤 목표지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거든요.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어서, 글쓴이가 왜 극심한 방황 속에 있었는지 조금 이해가 안 가기도 했습니다. 글쓴이의 원래 꿈이 무엇이었는지, 왜 파리에 가게 됐는지 간단한 설명을 넣으신다면, 더 공감하기 수월할 것 같습니다.
이제 합평도 마지막이네요. 머뭇거리시면서 지원하셨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열정적으로 임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만의 문체를 다져가시고, 자신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펼치시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진영님께 지금 '글'은 무엇일까요? 맨 처음 글감이 불현듯 떠오르네요. 재능과 센스가 넘치시고, 살아온 삶의 이야기도 가득하신데다, 무척 빠르게 실력을 향상 시키는 분이셔서, 저는 진영님의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얼에모가 끝나더라도, 언제든 이런 글 써주시길 독자로서 간절히 바라봅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합평]
미술계 최고의 대학, 뭔가 배우러 떠났지만 정작 가르쳐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어딘가 모를 막연한 상황을 탈피하고자 스스로 여기저기 전시관과 미술관을 향해 떠났던 사람의 이야기.
예술가는 남이 뭐라든 상관없이 자기가 최고인줄 알아야 가능하다는 말. 참 많이 와 닿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것이겠죠. 그렇게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가 결혼이라는 도피처를 향해 떠나버린 사람의 이야기.
일생에 몇 번 못 한다는 개인전을 밥먹듯이 여는 남편을 보조하느라 숨이 차고 지쳐버리셨겠어요. 과연 이것은 내가 원하던 삶인가 스스로 반문하게 되던 사람의 이야기.
몇몇 이야기만 읽었을 뿐인데, 파노라마처럼 드라마처럼 눈앞에 이야기가 펼쳐지네요. 글에서 그림이 느껴지는 글이라면 이런 글이 아닐까 싶기도.
글에서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이 묻어나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는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일까 의문을 던지시는 장면에서 더더욱. 가족을 위한, 가족을 보조하는 삶이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쩌면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진영 님의 이야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댓글로 이미 남기셨던데. 남편 분을 보조하는 활동도 의미있으시겠지마는... 두 분이 함께 작업한 결과물로 전시회를 열어보시는 건 어떨까... 하는 말씀을 조심스레 드려봅니다. 진영 님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전시회가 된다면 말이에요.
얼에모를 통해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솔직한 나눔 감사드려요. 예술가쪽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생생한 경험 들려주셔서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글에서 또 만나뵙길 소망합니다.
@수지
다 흘러 간 추억이지요.
이제는 아무 생각 없고 그냥 글이나 잘 썼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응원 감사해요~
@행복에너지
저한테는 소중한 추억이지만 남들한테는 부끄럽지요. ㅎ
행에님은 무용가의 꿈이 있었군요
얼룩소에 미술 못해 속앓이 한 사람은 많은데 무용은 처음 듣습니다. 놀랐습니다.
행에님에 대해 새로운 걸 알아가네요 ^^
@청자몽
전에 90에 수묵화 시작해 100세까지 그렸던 분 얘기 잠깐 썼던 적이 있었어요 딸이 동양화가 여서 함께 했다고..
저는 한 집에 한 사람만 하는 걸로..
아. 딸들까지 비슷한거 해서...
저는 관객 할랍니다.
글이나 잘 썼으면 좋겠네요 ㅎㅎ
한 편의 영화를 본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감동적이라고 하기엔 죄송하고 슬픈 영화?
얼에모를 통해 진영님의 생애를 알아가네요.^^
마지막 주제라고 생각해서 그럴까요? 끝에 쓰신 잇글이 남의 얘기 같지 않아 감정이 북받쳐 그럴까요?
눈물이 찔끔 납니다. ㅎㅎ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멋진 진영님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흠 ㅜ. 이거 왜 ㅜㅜ
진짜 .. 뭐라고 써야하는건지. 아까 새콤이 응가한다고 할때 슬쩍 보고 ㅜ 울컥했는데, 다시 천천히 보니 또 울커덕.
마지막 잇글에서 와르르..
제가 해보고 싶었던 미대생, 그것도 프랑스 유학파 ㅠ.
전 중학교때 엄마한테 말했더니, 빗자루로 엄마가 바닥을 팡팡 치시며 화내시더라구요 ㅜ.
"너 미대 가는데 돈 얼마나 많이 드는 줄 알아? 그 돈이면 언니랑 동생도 학교 가고 그래야 되. 너 재능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미대 졸업해도 집에 돈 있어야 미술학원이라도 차려주지. 돈 없어. 이것아.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아빠도 돌아가셨어. 집 생각 좀 해."
ㅜㅜ 들으면서 울었거든요. 그때 포기한..
암튼 그랬는데 ㅜㅡ. 진영님 이야기는 더더 마음이.
...
44살까지 일하다가 늦게 애 낳고, 하던 일 그만둬도
스스로 한심해지더라구요. 남편이 아무 말 안해도;; 등신 머저리 된거 같고.
일할만큼 했는데, 뭐지? 나 그동안 왜 아둥바둥 살았지? 멍.. 해지고요.
미대언니 ㅜ. 마음이 ㅜㅜ
에효 ㅜ.
...
인생이 길다고 하는데, 아직 늦지 않았을거 같아요. 왠지..
지금부터 뭔가 해도 안 늦으셨을지도.
용기를.. 저도 포기 안하고, 계속 뭔가를 할께요. 120살까지 산대잖아요;; 헉.. 포기하기엔 아직 우리 젊어요. (71년생이신거 같은데. 그렇죠? 아닌가? 전에 다른 분하고 헛갈린건지?)
참고로! 저 명동성당 옆에 고등학교 나왔어요. 지금은 이사갔다던데. ㅎㅎ 갑자기 딴 이야기. 토요일날(저 학교 다닐 땐 토요일도 수업) 오후에 성당에서 결혼식하는게 보였어요. 교실에서 보면 ㅋㅋ. 멋지다. 그랬답니다. 졸업식은 명동성당에서 했어요 ^^.
그림 포기 안했고, 애기랑 같이 그려요. 7살이라, 애기라 그러면 화내는데 ㅎㅎ. 안 포기할려구요.
응원을 한바구니 놓고 갑니다.
@콩사탕나무 @살구꽃
아니 두 분. 합평 때는 뭘 쓰시려고. ㅎㅎ
이거 써놓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올릴 수 있을까.올려도 될까... 너무 창피해서.
이제 올려버렸으니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글이라 후련하기도 하고...
얼에모가 참 이상하네요. 그쵸?
가슴조이며
가슴벅차하며
가슴텅빈 마음이 교차하다가
너무 허탈한데
그 텅빈곳에 눈물이 그득 차네요.
지금이라도 꿈을 채워나가시면 되지않을까요?
남편분이 옆에서 힘을 주실, ...아니 어쩌면 진영님한테 더 많은 영감이 잠재된것같습니다.
너무 아깝고 안태까운 재원이시네요.
눈물이 없을수 없는 이야기.
많이 공감합니다.
스크린에 비친 영화를 바라보다, 어느덧 스크린 속 인물이 곁으로 다가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의 꿈을 쫓던, 그러다 나의 꿈을 접게 된. 다른 누군가가 나의 꿈을 대신 이루어준다....는 것이 결국 헛헛한 껍질과도 같은...
이 글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담담하게. 그런데 그 속에 수많은 감정들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그 느낌.....감사해요. 정말 좋은 글을 읽고 가요.
[합평]
진영님이 유학하시던 시절의 프랑스라는 거리감에 견줄바 못되지만, 해외로 유학와서 감당이 안되는 자유를 경험하고 있는지라 무척 공감하며 읽어내려갔습니다. 이 막연한 불안감 끝에 무엇이 있을지 도무지 보이지 않아 더욱 그러하구요.
재능이라는 건 홀로 가진 능력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마음껏 펼치기 위해선 그에 맞는 환경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건 묵묵히 내 곁을 지켜준 가족일수도, 실패하더라도 망하지 않을 것을 보장해주는 재력일수도, 옆에서 꾸준히 동기부여해주는 동료와 선후배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모든 걸 고려하여 결정지을 수 있는 일이란 흔치 않죠. 그래서 흔히 재능을 발휘한 사람은 스스로의 재능이라고 생각하거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의 부족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꿈은 오로지 남편과 애들이 마음껏 꿈꾸게 해주는 것이었지요. 나를 밟고 내 꿈을 밟고 그들은 훨훨 날아 올랐습니다."
남편 분, 그리고 아마 자녀분의 성공에는 진영님의 희생이 있었다는 걸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보면 성공한 사람 스스로의 재능보다도 이러한 희생이 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재능은 수동인 반면 희생은 능동이기 떄문입니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는 반면, 희생은 선택할 수 있죠. 사회에 피는 재능이라는 꽃은 항상 그 뒤에 누군가가 선택한 희생을 양분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텅 비어보이는 껍질을 깨어버리고 더 누리셨으면 좋겠어요.
평소와는 다른 구어체로 쓴 글이 신선했습니다. 프랑스 유학시절의 묘사와 감정의 전달에도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구요. 마치 친구에게 듣는 것처럼 생생하고 아프게 읽혔어요. 묵은 감정 글로 쓰시느라 많이 힘드셨을텐데, 써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간의 글에서도 서사와 묘사를 잘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번 글에서는 특히 더 그랬습니다. 진영님만의 독특한 색이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매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꾸준히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며 본인의 색을 찾아가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1기 얼에모는 끝났지만 앞으로의 글도 기대가 됩니다. 수고하셨어요!
@살구꽃
학창시절에 맨날 그리던 인물이니 정물이니 그런데서 벗어나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싶었지만 방향이 안 잡히고 그때 관념으로 로 꽉 찬 나이에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지내려니 초조하고 쫒기는 느낌이었어요. 어쩜 안오고 버텼으면 제대로 된 작품을 했을까요
이런 건 사실 다 변명이고 진짜로는 재능이 부족했던거죠. 열정도 모자라고...
이 유학얘긴 제가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하기에 아무에게도 말안하는 비밀이었어요.
중간에 돌아올 줄 알았으면 열심히 학교 안다니고 여행이나 실컷하고 올걸 그랬나 싶습니다. ㅎㅎ
[합평]
이 글을 처음 읽을 때는 너무나 화려한 이력으로 눈이 부셔서, 먼 나라까지 갔다가 결혼이라는 명분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이유가 너무 애석해서 감탄과 탄식이 뒤섞여 안타까웠어요. 미술교사로 그곳까지 입성하는 과정에서 진영님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음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화집에서만 보던 명화들이 눈 앞에 있고, 틈만 나면 미술관과 화랑을 드나드는 일상이 누군가에겐 평생 가 닿을 수 없는 로망에 불과합니다만, 그래서 위축되고 그 큰 작품을 바라보며 점점 어깨의 부담이 너무 컸을까요. 입학 하자마자 졸업을 포기하는 심정, 그리고 한국어로도 쉽지 않은 과목들을 불어로 이수한다니... 한때는 불어공부를 해볼까 싶어서 방송대 불문과를 신청했다가 한학기만 겨우 마치고 나왔던 적이 있어요. 왜 굳이 불어였는지. 여러 이유가 있긴 했지만 재미가 없으니 자신도 없고 한순간 무의미해졌어요. 먹고살기 바빴다는 건 핑계로 둘러대기에 딱 좋았죠.
진영님에게 용납이 되지 않는 ‘구태의연한 그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럼 용납이 되는 ‘구태의연하지 않은 그림’은 또 무엇일까요. 이 대목에서 저는 학창시절의 두 친구가 떠올랐어요.
각각 시와 소설을 쓰는 친구였는데요, 합평시간에 소설을 쓰던 친구는 엄청난 칭찬을 받았어요. 하루를 꼬박 일하고 들어온 노동자의 작업복에 대한 묘사였는데, 선생님은 그 글에 대해서 아주 신선하고 노동자의 피곤함까지 글에서도 느껴진다, 라고 했어요. 친구는 자기가 써놓고도 그런 칭찬을 받을 줄 몰랐을 거에요. 친구가 그 평에 대해서 우쭐하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이번에 시를 썼던 친구에 대한 평은 아주 혹평이었어요. 주제가 ‘가을’이었어요. 시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빨강, 노랑... 어쩌구 하는 글은 확실하게 기억해요. 선생님은 그 특유의 시크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어요. 그리고 안경 너머로 이 시 누가 썼냐고 되물었어요.
친구는 강릉지역에서 그래도 시를 쓰는 누구라고 하면 알아주는 편이었대요. 강의실에 모인 스무살 어린친구들보다 6살 차이가 났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했죠. 아마 선생님이 누가 썼냐고 물었을 때, 어쩜 친구는 은근히 기대를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만큼 시를 써왔기 때문에요.
“이기 이기... 이게 신가? 음... 빨강, 노랑, 파랑이라... 지금 이기 대학생이 맞나? 이거는 완전 초등학생이다. 빨강이라니, 하이고~ 노랑, 파랑이라니... 흐음... 이렇게 써 놓고 이거 내고 싶었나?”
강의실은 소설을 평했을 때도 그랬지만 시를 평하는 그 순간 모두 똑같이 숨소리하나 들리지 않았어요. 두 친구는 각 시간에 모두 얼굴이 홍당무가 됐어요. 한 친구는 설레는 벅참으로, 또 한 친구는 철렁한 모멸감으로, 사랑과 상처를 받은 극과 극의 평이었지만 결론은 두 친구가 이후로 지금까지 글을 전혀 쓰지 못했다는 겁니다.글이 꽤 길어졌습니다. 합평이라고 쓰다 보니 친구들 얘기가 어느 대목에서 머물렀네요.
진영님의 글은 저에게 어떤 의미로는 깊은 가르침을 주는 글이었어요. 예술을 떠나 살아가는 일에도 말입니다. 긴 글 쓰시느라 애쓰셨어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진영님의 글이 또 다른 아트가 되길 응원합니다.
[합평]
지나간 옛 글에 미술 작품이나 그림 이야기를 종종 하신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림에 굉장히 관심도 많고 지식도 남다르다 느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역시 여자의 육감은 틀리지 않았구나 제 자신을 칭찬했습니다. ^^
그동안 결혼 전 교사로 일하셨던 경험과 ‘일’에 대한 에세이에서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것을 쓰셨지만 전공이 무엇인지 감쪽같이 드러내지 않아 늘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재능을 지닌 분이신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얼룩소에는 유독 미술과 관련된 분들이 많으신 듯합니다. 만약 저였다면 입이 근질근질하고 자랑도 하고 싶었을 텐데 다시 한번 진영님의 속 깊음에 놀라고 드러내지 못했던 상처가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꿈만 같았던 프랑스 최고의 국립미술대학에 합격을 하고, 기뻐했던 모습을 보고 유학을 가게 된 계기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지상 낙원처럼 묘사한 학교의 풍경, 미술학도들의 천국, 완벽한 자유와는 대비되게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학교생활과 졸업이 불투명한 상황, 예술적 재능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 파리의 무거운 하늘빛으로 표현하신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예술가의 고뇌가 느껴져 역시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조심스러운 짐작을 했습니다.
진영님의 거침없는 성격만큼이나 맞선부터 첫만남, 결혼 준비 과정들이 군더더기 없이 진행된 것을 보고 사람의 성격이 인생의 곳곳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전공이라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또 같은 이유로 진영님은 배우자를 통해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미처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준 것을 넘어 예술가로서 작품과 작업에 푹 빠져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허무하고 쓸쓸한 마음이 전해져 덩달아 제 마음의 한구석이 아려왔습니다. 눈물도 찔끔 흘렸고요.
두 날개가 꺾여 가족들에게 기꺼이 온몸을 내어주신 진영님의 희생이 대단하다 못해 거룩하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다시 작은 날개가 돋아나 조금씩 날갯짓을 하며 ‘나’를 위해 훨훨 날아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어려운 이야기 꺼내 놓으시고 글 쓰시느라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진 않으셨을까 싶기도 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잊지 못할 [얼에모]를 함께 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
@진영
[합평]
지난 예술인 남편에 이은 후속작으로 연결되는 느낌의 글이었습니다. 살구꽃님의 글에서 미술과 관련된 내용을 많이 봤었는데, 진영님도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스펙을 보유하고 계셨네요. 몰라 뵈었습니다.
생소하고 낯선 단어들로 시작하는 글은 심플하게 2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최고의 국립미술대학교에서 보낸 시절과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느꼈던 텅 빈 공허함.
진영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터프함, 털털함, 강인함' 같은 것들입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크게 요동하지 않는 튼튼한 나무와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의 글을 읽으면서 제법 걱정이 됩니다. 빈 껍데기라니. 그냥 하시는 말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서서히, 확실하게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울림이 느껴져요.
"여기가 천국이냐고? 그래 천국이야. 미술학도들의 천국." 이 문장을 통해 진영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은 어떠한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최고로 멋진 삶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외롭고 쓸쓸하고 공허한 삶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술자적 기질이 가득한 남편은 남들이 평생에 한 번도 하기 힘든 개인전을 세계적으로 진행하는 능력자이지만, 그 속에서 진영님이 느끼는 건 삶에 대한 기쁨과 열정, 보람이 아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탈감이 느껴졌어요.
아무래도 도약을 위한 전환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MT 한 번 집결할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