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다시 주문을 건다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3/21
  글을 매일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뭐 이런 다짐을 굳이 하나 싶긴 한데,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온 뒤로 글로부터의 해방을 맛보고 싶어서 결정한 일이다. 왜 해방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일'이라는 단어에 스스로가 너무 얽매어 있는 느낌이라 벗어나고 싶었다. 요즘은 주말에는 글을 거의 쓰지 않는다. 평일에는 그래도 쓰려고 하는데, 의무감은 느끼지 않으려 한다. 

  매일 쓰지 않는 효과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우선 글감이 내 안에서 숙성될 수 있다. 생각이 브레인스토밍하듯 가지에 가지를 더해 나가면서, 더 풍성하고 밀도 있는 글이 나올 수도 있다. 이렇게 예상대로만 흘러간다면 참 좋을 텐데,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할 리가 있나. 매일 쓰지 않으니 머릿속 글감들이 숙성은커녕 썩어가는 것만 같다. 가지에 가지를 더해가면 생각이 풍성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지들끼리 꼬이고 엉키는 느낌이다. 

  요즘은 글을 쓸 때마다 제때 털어내지 못한 생각들이 뒤엉켜 있는 느낌이라, 먼지 덮인 오랜 짐들을 들춰보듯 생각을 뒤져야 한다. 힘들게 꺼내 써도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해 글이 자꾸 산으로 간다. 그제야 나는 매일 쓰지 않는 후유증을 앓고 있음을 깨닫는다. 글을 매일 쓰는 강박에서 벗어나려다, 매일 쓰지 않는 강박으로 건너왔음을 알아챈다. 뭐가 이리 극단적이지. 그냥 쓰면 되는 것을.

  생각이 원래 많은 사람이다. 쓸데없는 걱정이 넘치는 부정적인 인간이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쓸 때는 그렇지 않아도 만일한 생각에 타인의 말과 행동에 대한 분석까지 하려 들었다. 무슨 의미일까. 내 욕을 하진 않을까. 왜 저런 행동을 했지. 대범한 행동에 비해 소심한 생각을 지닌 사람, 그게 나였다. 타인은 별 의미 없이 한 말과 행동도 내 가슴에 박혀 빠지지 않고 오랜 시간 곪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많은 생각이야 놔두더라도, 쓸데없는 걱정과 부정적인 생각, 타인의 몫까지 끌어안는 습관은 버려야 했다. 당장 선택해 바꿀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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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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