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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라는 직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최혜진
최혜진 인증된 계정 · 잡음 속에서 신호를 찾는 사람
2023/12/27
©폴인, 송승훈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 질문합니다. “에디팅 잘하시나요?” 기자도 에디터도 아닌데 왜 편집을 잘해야 하냐고요?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말, 글, 이미지 등을 편집해야 합니다. 취사 선택을 빠르게 해야 하고 잘 읽히기 위해서는 과감한 생략도 필요합니다. 20년차 에디터 최혜진 작가는 얼마 전 펴낸 『에디토리얼 씽킹』에서 “에디터라는 직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14쪽)”라고 썼습니다. ‘절대’라는 부사를 붙인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22살에 에디터가 되어 천직이라고 생각할 만큼 매거진을 만드는 일을 즐겼고 성과도 냈다. 미술 관련 책도 꾸준히 내며 작가로도 활동하던 중, ‘에디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컨설턴시를 창업했다. 국내 최초 에디터 컨설턴트 아닌가?
 
콘텐츠 기획, 편집, 제작을 대행하는 ‘에이전시’는 많다. ‘아장스망'을 굳이 ‘컨설턴시’라고 규정한 이유는 다른 사람이 전략을 세워 놓은 판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에서 에디터를 마케팅 조직이나 MD 조직에서 필요한 제작물을 대행하는 인력으로 여긴다. 이런 구도로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장스망은 경영 컨설팅, 리서치 컨설팅 회사처럼 파트너사가 가진 고민을 깊이 파고들어 선택을 돕거나 아예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함께 가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탁월한 에디팅은 그 자체로 솔루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쉽게 말하면 편집권이 저에게 없는 단순 용역은 수행하지 않으니 ‘컨설턴시’가 맞다고 생각했다.

『에디토리얼 씽킹』에서 “온 국민이 에디터가 된 세상”이라고 밝혔다. 공급자 과잉의 시대라는 말에 동의한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독자는 없다. 읽히는 콘텐츠, 또 다시 찾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 기획자와 제작자, 에디터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보 과잉 시대여서 독자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산될 뿐이다. 과거엔 미디어 하나가 백만 명의 독자를 모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백 개의 미디어가 만 명의 독자를 모으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취향이 거의 나노 단위로 세분화된 시대이기 때문에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말 걸고 있는 상대가 정확히 누구인가?”이다. ‘그냥 누구든 많이 봤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거다. 재미있는 건 내가 누구에게 말 걸고 싶은지 파고 들다 보면 ‘그에게 이 말을 하는 나는 누군데? 왜 이 말을 하고 싶은데?’라는 질문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메시지 발신자와 수신자의 인격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콘텐츠가 인지적 차별점을 만든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 상대방 입장에서 상상할 줄 아는 능력이 창작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편집(edit)을 잘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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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

1명이 이야기 중

에디터는 취사 선택의 기준이 분명하고 잘 읽히게 정리할 줄 알고 생략도 잘해야 한다. 편집을 잘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시선, 능력, 스킬은 무엇일까? 

에디터로 어떤 업무를 하든 내 안에서 본능처럼  상상 하나가 자동 재생된다. 바로 ‘그 사람이 이걸 볼 때 어떨까?’라는 입장 바꾸기다. 여기에서 ‘그 사람’은 늘 달라진다. 책을 쓸 때는 가상의 독자이고, 업무 이메일 쓸 때는 파트너사 담당자고, PT용 발표 자료를 만들 땐 보고 받을 CEO다. 편집은 자기표현적 글쓰기와 달라서 목적이 분명한 활동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내 콘텐츠를 왜 봐야 하는지, 이미 들은 이야기를 또 듣는 건 아닌지, 설득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질문은 충분히 해소되었는지 등등 한발 뒤로 물러나 전체를 조망하면서 세부를 조정한다.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메타적으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에디터에겐 꼭 필요하다. 
 
콘텐츠가 없는 브랜드는 더 이상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기업 콘텐츠, 브랜디드 콘텐츠를 기획할 때,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브랜드 인격이 느껴지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애쓴다. 사람에 대입해 생각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저 사람은 이런 인격과 취향을 가졌구나’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사람은 누구인가? “저는 수학 100점을 놓친 적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인가?, “저는 숫자가 보여주는 정확성이 아름답게 느껴져요”라고 말하는 사람인가? 성과나 퍼포먼스가 주는 미덕도 있지만,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감정을 움직이는 힘은 그가 표명하는 입장과 관점에서 나온다. 비슷하게 기업이 화자가 될 때에도 어떤 입장 표명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거다. 재료가 똑같은 ‘집’이라고 해도 ‘오늘의집’이 가진 입장과 ‘직방’이 가진 입장은 다르다. 많은 경우 기업들은 자신이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다. 이 부분부터 탄탄하게 정의할 수록 완성도나 만족도가 좋아진다.
 
에디터가 가져야 할 능력 중 하나는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형식을 만들고 구조를 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맥락을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콘셉트에 관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의 내용(what to say)과 그것을 담는 그릇(how to say)이 잘 호응하도록 정렬하는 기준점이 콘셉트라고 생각한다. 콘텐츠 제작은 세부를 모으고 엮어서 더 큰 전체를 만드는 작업인데, 이때 각 세부가 제각각 방향을 보고 있으면 메시지가 흩어지기 마련이다. 매체에 올리는 요소들이 모두 한 방향을 보고 달리도록 지향점을 찍어주어야 하는데, 콘셉트가 그 역할을 한다. 나도 왕도는 잘 모르겠다. 제작 과정 내내 ‘이 내용에 이 방식이 최선일까?’라고 자문하면서 점검하는 수밖에 없다. 판단을 하려면 머릿속에 데이터베이스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세상에 어떤 표현 방식, 형식, 구조가 존재하는지 많이 알수록 가늠자가 촘촘해질 테니까. 
 
사람들은 질문하는 걸 어려워한다. 관심이 있는 주제, 대상이 있어도 질문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내는 걸 힘들어한다. 왜 그럴까? 좋은 질문을 만드는 노하우가 있을까? 
 
우리 모두 질문이 숨쉬듯 자연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다. 어린이는 어른들이 허락하면 아마 하루 종일 질문을 이어갈 거다. 우리 모두 제도권 교육 안으로 들어가 성장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으려 애쓰면서 후천적으로 질문을 삼키는 훈련을 아주 많이 했다. 나 역시 그랬다. 해소하지 못한 질문이 몸안에 쌓이다 못해 터질 것 같을 때 에디터가 됐다. 에디터는 질문하는 자리에 계속 서는 직업이다. 일을 핑계 삼아 제 안에 쌓여있던 질문을 꺼내 놓을 수 있었다. ‘너무 사소한 질문이면 어쩌지?, 실례가 되면 어쩌지?’ 두려워하는 내면의 검열을 뚫고 인간 최혜진이 궁금한 점들을 물었을 때, 신기하게도 상대방도 보호막을 벗고 대화가 깊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좋은 질문은 늘 ‘솔직한 질문’이다. 
 
테크닉적 요령을 하나 전하자면 전제를 가시화하는 질문도 대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누군가 “꿈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을 때, ‘아, 이 분은 꿈은 찾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구나 알아차리고, “왜 꿈은 찾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라고 되묻는 식이다. 상대방이 당연시하고 넘어가는 부분, 전제를 깔고 이야기 하는 부분을 알아차리려고 애써보라고 말하고 싶다.  
 
에디터라는 직업을 왜 좋아하고 사랑하나? 
 
누구를 만나든 어떤 정보를 마주하든 ‘이 안에 숨어있는 좋은 의미는 없을까?’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직업이어서 좋다. 언제나 배울 점과 지혜, 인사이트를 찾아내려 한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좋은 의미가 있을 거야’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세상을 보게 하기에 에디터는 냉소나 비관에 빠질 겨를이 없다. 그래서 이 직업이 좋다.
 
당신은 에디터다. <얼룩소> 이용자들에게는 어떤 질문을 하고 싶나? 
 
여러분이 가진 ‘나쁜 기억’ 하나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 기억을 어떻게든 좋은 기억으로 새로 편집하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상상해 봐라. 여러분은 그 기억에서 어떤 좋은 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에디토리얼 씽킹>, <우리 각자의 미술관>,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등 여덟 권의 예술서를 쓴 작가. 동시에 에디토리얼 디렉터로 '아장스망(agencement)'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여러 기업의 브랜드 미디어 전략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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