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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라는 직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2023/12/27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 질문합니다. “에디팅 잘하시나요?” 기자도 에디터도 아닌데 왜 편집을 잘해야 하냐고요?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말, 글, 이미지 등을 편집해야 합니다. 취사 선택을 빠르게 해야 하고 잘 읽히기 위해서는 과감한 생략도 필요합니다. 20년차 에디터 최혜진 작가는 얼마 전 펴낸 『에디토리얼 씽킹』에서 “에디터라는 직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14쪽)”라고 썼습니다. ‘절대’라는 부사를 붙인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22살에 에디터가 되어 천직이라고 생각할 만큼 매거진을 만드는 일을 즐겼고 성과도 냈다. 미술 관련 책도 꾸준히 내며 작가로도 활동하던 중, ‘에디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컨설턴시를 창업했다. 국내 최초 에디터 컨설턴트 아닌가?
콘텐츠 기획, 편집, 제작을 대행하는 ‘에이전시’는 많다. ‘아장스망'을 굳이 ‘컨설턴시’라고 규정한 이유는 다른 사람이 전략을 세워 놓은 판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에서 에디터를 마케팅 조직이나 MD 조직에서 필요한 제작물을 대행하는 인력으로 여긴다. 이런 구도로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장스망은 경영 컨설팅, 리서치 컨설팅 회사처럼 파트너사가 가진 고민을 깊이 파고들어 선택을 돕거나 아예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함께 가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탁월한 에디팅은 그 자체로 솔루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쉽게 말하면 편집권이 저에게 없는 단순 용역은 수행하지 않으니 ‘컨설턴시’가 맞다고 생각했다.
『에디토리얼 씽킹』에서 “온 국민이 에디터가 된 세상”이라고 밝혔다. 공급자 과잉의 시대라는 말에 동의한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독자는 없다. 읽히는 콘텐츠, 또 다시 찾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 기획자와 제작자, 에디터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콘텐츠 기획, 편집, 제작을 대행하는 ‘에이전시’는 많다. ‘아장스망'을 굳이 ‘컨설턴시’라고 규정한 이유는 다른 사람이 전략을 세워 놓은 판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에서 에디터를 마케팅 조직이나 MD 조직에서 필요한 제작물을 대행하는 인력으로 여긴다. 이런 구도로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장스망은 경영 컨설팅, 리서치 컨설팅 회사처럼 파트너사가 가진 고민을 깊이 파고들어 선택을 돕거나 아예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함께 가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탁월한 에디팅은 그 자체로 솔루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쉽게 말하면 편집권이 저에게 없는 단순 용역은 수행하지 않으니 ‘컨설턴시’가 맞다고 생각했다.
『에디토리얼 씽킹』에서 “온 국민이 에디터가 된 세상”이라고 밝혔다. 공급자 과잉의 시대라는 말에 동의한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독자는 없다. 읽히는 콘텐츠, 또 다시 찾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 기획자와 제작자, 에디터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보 과잉 시대여서 독자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산될 뿐이다. 과거엔 미디어 하나가 백만 명의 독자를 모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백 개의 미디어가 만 명의 독자를 모으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취향이 거의 나노 단위로 세분화된 시대이기 때문에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말 걸고 있는 상대가 정확히 누구인가?”이다. ‘그냥 누구든 많이 봤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거다. 재미있는 건 내가 누구에게 말 걸고 싶은지 파고 들다 보면 ‘그에게 이 말을 하는 나는 누군데? 왜 이 말을 하고 싶은데?’라는 질문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메시지 발신자와 수신자의 인격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콘텐츠가 인지적 차별점을 만든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 상대방 입장에서 상상할 줄 아는 능력이 창작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에디터로 어떤 업무를 하든 내 안에서 본능처럼 상상 하나가 자동 재생된다. 바로 ‘그 사람이 이걸 볼 때 어떨까?’라는 입장 바꾸기다. 여기에서 ‘그 사람’은 늘 달라진다. 책을 쓸 때는 가상의 독자이고, 업무 이메일 쓸 때는 파트너사 담당자고, PT용 발표 자료를 만들 땐 보고 받을 CEO다. 편집은 자기표현적 글쓰기와 달라서 목적이 분명한 활동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내 콘텐츠를 왜 봐야 하는지, 이미 들은 이야기를 또 듣는 건 아닌지, 설득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질문은 충분히 해소되었는지 등등 한발 뒤로 물러나 전체를 조망하면서 세부를 조정한다.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메타적으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에디터에겐 꼭 필요하다.
콘텐츠가 없는 브랜드는 더 이상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기업 콘텐츠, 브랜디드 콘텐츠를 기획할 때,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브랜드 인격이 느껴지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애쓴다. 사람에 대입해 생각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저 사람은 이런 인격과 취향을 가졌구나’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사람은 누구인가? “저는 수학 100점을 놓친 적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인가?, “저는 숫자가 보여주는 정확성이 아름답게 느껴져요”라고 말하는 사람인가? 성과나 퍼포먼스가 주는 미덕도 있지만,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감정을 움직이는 힘은 그가 표명하는 입장과 관점에서 나온다. 비슷하게 기업이 화자가 될 때에도 어떤 입장 표명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거다. 재료가 똑같은 ‘집’이라고 해도 ‘오늘의집’이 가진 입장과 ‘직방’이 가진 입장은 다르다. 많은 경우 기업들은 자신이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다. 이 부분부터 탄탄하게 정의할 수록 완성도나 만족도가 좋아진다.
에디터가 가져야 할 능력 중 하나는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형식을 만들고 구조를 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맥락을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콘셉트에 관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의 내용(what to say)과 그것을 담는 그릇(how to say)이 잘 호응하도록 정렬하는 기준점이 콘셉트라고 생각한다. 콘텐츠 제작은 세부를 모으고 엮어서 더 큰 전체를 만드는 작업인데, 이때 각 세부가 제각각 방향을 보고 있으면 메시지가 흩어지기 마련이다. 매체에 올리는 요소들이 모두 한 방향을 보고 달리도록 지향점을 찍어주어야 하는데, 콘셉트가 그 역할을 한다. 나도 왕도는 잘 모르겠다. 제작 과정 내내 ‘이 내용에 이 방식이 최선일까?’라고 자문하면서 점검하는 수밖에 없다. 판단을 하려면 머릿속에 데이터베이스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세상에 어떤 표현 방식, 형식, 구조가 존재하는지 많이 알수록 가늠자가 촘촘해질 테니까.
사람들은 질문하는 걸 어려워한다. 관심이 있는 주제, 대상이 있어도 질문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내는 걸 힘들어한다. 왜 그럴까? 좋은 질문을 만드는 노하우가 있을까?
우리 모두 질문이 숨쉬듯 자연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다. 어린이는 어른들이 허락하면 아마 하루 종일 질문을 이어갈 거다. 우리 모두 제도권 교육 안으로 들어가 성장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으려 애쓰면서 후천적으로 질문을 삼키는 훈련을 아주 많이 했다. 나 역시 그랬다. 해소하지 못한 질문이 몸안에 쌓이다 못해 터질 것 같을 때 에디터가 됐다. 에디터는 질문하는 자리에 계속 서는 직업이다. 일을 핑계 삼아 제 안에 쌓여있던 질문을 꺼내 놓을 수 있었다. ‘너무 사소한 질문이면 어쩌지?, 실례가 되면 어쩌지?’ 두려워하는 내면의 검열을 뚫고 인간 최혜진이 궁금한 점들을 물었을 때, 신기하게도 상대방도 보호막을 벗고 대화가 깊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좋은 질문은 늘 ‘솔직한 질문’이다.
테크닉적 요령을 하나 전하자면 전제를 가시화하는 질문도 대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누군가 “꿈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을 때, ‘아, 이 분은 꿈은 찾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구나 알아차리고, “왜 꿈은 찾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라고 되묻는 식이다. 상대방이 당연시하고 넘어가는 부분, 전제를 깔고 이야기 하는 부분을 알아차리려고 애써보라고 말하고 싶다.
에디터라는 직업을 왜 좋아하고 사랑하나?
누구를 만나든 어떤 정보를 마주하든 ‘이 안에 숨어있는 좋은 의미는 없을까?’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직업이어서 좋다. 언제나 배울 점과 지혜, 인사이트를 찾아내려 한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좋은 의미가 있을 거야’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세상을 보게 하기에 에디터는 냉소나 비관에 빠질 겨를이 없다. 그래서 이 직업이 좋다.
당신은 에디터다. <얼룩소> 이용자들에게는 어떤 질문을 하고 싶나?
여러분이 가진 ‘나쁜 기억’ 하나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 기억을 어떻게든 좋은 기억으로 새로 편집하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상상해 봐라. 여러분은 그 기억에서 어떤 좋은 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에디토리얼 씽킹>, <우리 각자의 미술관>,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등 여덟 권의 예술서를 쓴 작가. 동시에 에디토리얼 디렉터로 '아장스망(agencement)'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여러 기업의 브랜드 미디어 전략을 돕는다.
화들짝 정신이 나게 합니다 다른 책들도 읽어 봐야 게습니다 알게돼서 넘 기쁘고 반갑습니다^^
12월 29일 선정된 질문자는 @smy7918 님입니다.
5000 포인트는 1월 3일 지급됩니다.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un00 님, 안녕하세요. 요즘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 때문에 '데이터 시각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미국의 푸딩 (pudding.cool)이라는 데이터 저널리즘 사이트를 자주 봅니다. 공감 능력은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 입장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질지, 어떤 생각이 들지 상상할 줄 알아야 공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학 작품(특히 소설)을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smy7918 님. 내 콘텐츠가 과연 유용할까, 내 감각이 통할까 등의 자문은 요즘도 자주 합니다. 확신 같은 것은 가져본 적이 거의 없어요. 후후.. 두려움과 떨림을 뚫고 하는 거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도 의문이 드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두렵고 떨리고 모호하고 불확실하다는 건 내가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중인가 보다'라고요. 나도 이미 알고, 익숙한 무언가를 만든다면 아마 같은 감정이 느껴지진 않을 테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저는 의심, 떨림, 불안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답니다. 아무래도 대학생이시라면 포트폴리오에 채울 내용이 많진 않을 텐데요, 저라면 '경험에 대한 자기 의미화'를 얼마나 했는지 살필 것 같아요.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배운 점이 무엇인지, 업그레이드된 스킬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다면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 같네요!
1. 공감 능력은 어떻게 더 잘 만들 수 있을까요?
2.요즘 눈여겨 보는 매거진이 있다면 추천 부탁 드려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에디터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겨 휴학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고 있는 대학생 입니다. 현재 제 포트폴리오는 “에디터쉽”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를 8개월 정도 이끌어 본 경험과 제 개인 브런치에 발행한 글들 정도가 있습니다.
혼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다보니, 제가 선택한 주제와 이 주제를 가지고 스스로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한번씩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내가 궁금해서 쓴 글들이 과연 유용한가, 내 감각들은 타당한가와 같은 생각들요. 그래서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작가님은 작가님의 시선, 감각을 어떻게 확신하시는지, 혹은 의문이 들 땐 어떻게 헤쳐나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에디팅에 대해 확실하게 개념이 잡힌 것 같습니다. 동시에 이런 개념들을 활용해서 포트폴리오에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습니다.그래서 작가님이 고용자 입장에 놓여져 있다고 가정했을 때 "괜찮다"라고 생각이 드는 포트폴리오는 어떤 걸 담고 있어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작가님 <에디토리얼 띵킹> 정말 잘 읽었습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드리고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12월 28일 선정된 질문자는 @muruybi 님입니다.
5000 포인트는 1월 3일 지급됩니다.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최혜진 님~ 감사합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저도 잘 풀리지 않을때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muruybi 님, 안녕하세요. 저는 저만의 아카이브 만들기에 진심이랍니다. :)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문장을 일일이 타이핑해서 하나의 문서에 모으는데요. 제 책에 쓰인 인용문들은 모두 이 파일에서 건져낸 것들이에요. 예전에 한참 패션지 에디터로 일할 땐 시각 자료 레퍼런스를 아카이브하는 폴더링 시스템을 고안하기도 했고요. 정리하자면 외부의 인풋을 '다시 꺼내어 쓸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버릇'이 작업할 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윤지연 님, 안녕하세요. 웹진 발행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과정을 밟아보신 것으로도 분명 배우신 것이 있으리라 짐작해요. 기성 매체의 선택을 받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루트를 뚫어내는 창작자분들도 분명 계시지요. (얼마 전 얼룩소 AMA를 진행하신 이슬아 작가님이 대표적 사례 같아요!) 저는 기성 산업에 속하든 그렇지 않든 독자들에게 각인될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엄청나게 어렵다고 생각해요. 잡지가 워낙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거리감이 적은 매체이다 보니 '오, 재밌네. 나도 한번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을 갖기 쉬워요. 하지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뛰어들기엔 (대부분의 산업이 그렇듯) 출판/콘텐트 업계는 결코 만만치 않은 필드예요.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드는 사람은 지난한 노동을 감당해야만 하죠.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이 업계에 뛰어든다면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잡지형 콘텐츠는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만, 그걸 만드는 에디터는 절실함과 긴장감을 품고 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문학을 공부하며 대학을 다닐때 마음이 맞는 친구들 몇이 모여 잡지를 만들어 내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콘텐츠와 글쓰기를 마음껏 해보고 싶었던 셈이지요. 서로가 작가인 동시에 에디터가 되어 우당탕탕 일을 벌여나갔습니다. 일을 진행해나갈수록 글쓰고 창작하는 고통보다, 매체 하나를 직접 만들어내야하는 고단함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됐습니다. 출판은 글쓰기 노동인 동시에 돈이 드는 산업이기도 하더군요. 실물 출판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너무나 지난해 결국 포기하고, 어찌어찌 노력해 웹진 형태로 내게 되었지만, 우리끼리만 돌려보고 처참한 조회수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기성의 매체들과 큰 출판사의 눈에 띄어 작가가 되거나 에디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맨땅에서 스스로 해보려는 후배들이 길을 나서기 전에 준비해야 할 태도나 자세, 혹은 준비운동, 맞아두어야 할 예방주사가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겠어요? 질문할 기회 주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에디터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혹은 자주, 계속하는(노력하는) 일이 있으신가요? 꾸준히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거나 등등이요. 에디터라는 직업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과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누군가 에디터는 어떤 글의 첫 독자인 동시에 마지막 점을 찍는 작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에디터는 메타적인 영역에서 글쓰기와 읽기에 관여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가장 큰 긴장과 예민한 감각을 가져야 하는 일 같은데요. 작가의 의도나 고집 그리고 독자의 기호와 호흡 사이에서 텍스트를 정리하고 마름질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글을 수정하고 교열하는 실무적인 편집일과 잡지 혹은 프로젝트 하나를 기획하고 작가를 섭외하고 들어온 글을 매만져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종합적인 에디팅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에디터는 텍스트의 어느 선까지 개입할 수 있는 것일까요? 한 편의 글이나 잘 만들어진 책을 놓고 본다면 작가의 공과 에디팅의 노력 비중은 어느 정도로 배분될지도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smy7918 님. 내 콘텐츠가 과연 유용할까, 내 감각이 통할까 등의 자문은 요즘도 자주 합니다. 확신 같은 것은 가져본 적이 거의 없어요. 후후.. 두려움과 떨림을 뚫고 하는 거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도 의문이 드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두렵고 떨리고 모호하고 불확실하다는 건 내가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중인가 보다'라고요. 나도 이미 알고, 익숙한 무언가를 만든다면 아마 같은 감정이 느껴지진 않을 테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저는 의심, 떨림, 불안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답니다. 아무래도 대학생이시라면 포트폴리오에 채울 내용이 많진 않을 텐데요, 저라면 '경험에 대한 자기 의미화'를 얼마나 했는지 살필 것 같아요.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배운 점이 무엇인지, 업그레이드된 스킬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다면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 같네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에디터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겨 휴학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고 있는 대학생 입니다. 현재 제 포트폴리오는 “에디터쉽”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를 8개월 정도 이끌어 본 경험과 제 개인 브런치에 발행한 글들 정도가 있습니다.
혼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다보니, 제가 선택한 주제와 이 주제를 가지고 스스로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한번씩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내가 궁금해서 쓴 글들이 과연 유용한가, 내 감각들은 타당한가와 같은 생각들요. 그래서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작가님은 작가님의 시선, 감각을 어떻게 확신하시는지, 혹은 의문이 들 땐 어떻게 헤쳐나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에디팅에 대해 확실하게 개념이 잡힌 것 같습니다. 동시에 이런 개념들을 활용해서 포트폴리오에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습니다.그래서 작가님이 고용자 입장에 놓여져 있다고 가정했을 때 "괜찮다"라고 생각이 드는 포트폴리오는 어떤 걸 담고 있어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작가님 <에디토리얼 띵킹> 정말 잘 읽었습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드리고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윤지연 님, 안녕하세요. 웹진 발행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과정을 밟아보신 것으로도 분명 배우신 것이 있으리라 짐작해요. 기성 매체의 선택을 받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루트를 뚫어내는 창작자분들도 분명 계시지요. (얼마 전 얼룩소 AMA를 진행하신 이슬아 작가님이 대표적 사례 같아요!) 저는 기성 산업에 속하든 그렇지 않든 독자들에게 각인될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엄청나게 어렵다고 생각해요. 잡지가 워낙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거리감이 적은 매체이다 보니 '오, 재밌네. 나도 한번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을 갖기 쉬워요. 하지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뛰어들기엔 (대부분의 산업이 그렇듯) 출판/콘텐트 업계는 결코 만만치 않은 필드예요.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드는 사람은 지난한 노동을 감당해야만 하죠.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이 업계에 뛰어든다면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잡지형 콘텐츠는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만, 그걸 만드는 에디터는 절실함과 긴장감을 품고 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디터님.
'나쁜 기억'이란 단어를 보자마자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이 떠올랐습니다. 분노와 불쾌함, 답답함... 그런 감정을 잠깐 느낀 후 곧바로 뭉클함과 감동, 고마움이 느껴졌어요. 나쁜 기억을 좋은 감정으로 채워준 친구들이 생각나서요.
"책을 읽고 논문을 쓰다가 종종 멈춰서 우리가 함께 보낸 더운 여름날들을 떠올리곤 한답니다. 한 땐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막히고 시야가 아득해지던 일들이, 은지님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함께 머리를 맞대며 제법 견딜 만하고 때론 웃어넘길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 되었어요."
디지털 성범죄 중 '지인능욕'이라는 범죄가 있는데, 성적으로 합성한 사진을 온라인에 유포하고 피해자를 스토킹하는 성범죄입니다. 그 범죄 피해자로부터 연말에 받은 편지 일부입니다. 올해 '지인능욕'이란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요. 잘 안된 것 같아요. 그래서 편지를 써 준 친구를 볼 면목이 없었어요. 먼저 연락하기 어렵더라고요. 디지털 성범죄를 추적하고 함께 머리 싸매며 범인을 추리고 피해자의 이야기를 인터뷰하던 올해 여름. 그 날들을 '킹받음'과 아쉬움, 답답함으로 기억할 뻔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편집하기 완료! 나쁜 기억은 함께 짐을 나눈 친구의 존재만으로도 좋은 기억이 될 수 있단 걸 배웁니다.
(참, 얼룩소에 '루마'를 검색하면 친구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요!)
@muruybi 님, 안녕하세요. 저는 저만의 아카이브 만들기에 진심이랍니다. :)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문장을 일일이 타이핑해서 하나의 문서에 모으는데요. 제 책에 쓰인 인용문들은 모두 이 파일에서 건져낸 것들이에요. 예전에 한참 패션지 에디터로 일할 땐 시각 자료 레퍼런스를 아카이브하는 폴더링 시스템을 고안하기도 했고요. 정리하자면 외부의 인풋을 '다시 꺼내어 쓸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버릇'이 작업할 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노영식 그런 의도셨군요. 하지만 제 답은 동일합니다. 양자택일 프레임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 제 성향이거든요. 원하시는 답은 아니겠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솔직한 답은 이것입니다.
요즘같이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에디터는 정말 필요한 일이고, 점점 어려워지는 일인 것 같습니다.
'현재 유행되고 있거나 이슈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 과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또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에 대해 알리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