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렁쇠 소년과 아궁이 소녀의 첫 캠핑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04/06

벚꽃이 만개한 합천으로 캠핑을 다녀왔다.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무려 4시간 20분이나 걸렸다. 캠핑은 어느 곳이든 어차피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은 똑같은데 그렇게나 멀리 간 이유는 친정 식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언니네와 남동생도 캠핑을 다니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다 같이 뭉친 것은 처음이었다. 캠핑을 한 곳은 오토캠핑장이 아닌 남동생 지인의 사유지였다. 예전에 글램핑장으로 운영하던 곳인데 오래전 사업을 접고 갖고 있는 땅이라고 했다. 근처 하천도 있고 조경도 멋진 천이백 평의 광활(?) 한 땅을 소유하고 있는 그분이 참으로 부러웠다. 노지 캠핑이라 하면 전기와 상수도, 화장실이 없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언니네와 우리는 텐트와 캠핑 장비를 바리바리 챙겼고, 남동생은 캠핑카를 소유하고 계신 부르주아(?)이다. 


캠핑카를 타는 남자

남동생은 2년 전  캠핑카를 구입했다. 두 딸의 아버지인 그가 한두 푼도 아닌 캠핑카를 턱 사는 것을 보고 경악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남동생의 첫딸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조카가 두 돌이 되기 전 언어 발달 지연 판정을 받았던 때였다. 당시 워커홀릭이던 남동생이 굉장한 충격을 받고 죄책감에 빠졌었다. 아이는 센터 치료를 꾸준히 받았고 남동생은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금요일이면 캠핑카를 타고 바다로, 산으로, 들판으로 어디든 나가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친정엄마가 딸 셋 키우는 것보다 아들 하나 키우는 것이 백배는 힘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사춘기 때 속을 꽤나 썩였던 남동생이었다. 그런 그의 부모로서 과감한 결정에 걱정이 앞섰고 어른스러움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동생의 결정은 탁월했던지 다섯살이 된 아이는 지난달 평가에서 정상 발달 범위에 들어왔고, 수입도 이전 회사에서 벌던 것보다 몇 배로 늘었다. 

그렇게 캠핑카의 전기를 끌어다 썼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롯이 우리 가족만의 황제 캠을 즐기게 되었다. 언니네의 중학생인 첫째 조카만 축구 대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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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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