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고통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4/12/16
 

칼바람이 얼굴을 할퀴었다. 귀가 얼얼해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은 기어이 두꺼운 패딩 점퍼 안을 비집고 들어와 뼈마디를 건드렸다. 몇 바퀴나 걸었을까? 나는 운동장을 걷고 또 걸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어폰을 꽂고 걷는 이, 털북숭이 귀마개에 두꺼운 장갑을 낀 이도 보였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는 뛰는 듯 걷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은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더워서, 추워서라는 핑계만 대던 날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공설 운동장엔 육상 선수들을 위한 트랙이 마련되어 있어 아스팔트 길을 걷는 것보다 편안했다.


며칠 전 저녁 준비를 하던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근무하던 곳에서 인연이 된 정신의학과 교수님께서 연구 간호사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고민을 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하던 저녁 준비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상을 차렸다. 입맛이 없어 밥을 걸렀다.

재취업을 하고 잊었던 직장인의 고충을 고스란히 상기하며 폭풍 같았던 8개월을 보냈다. 더는 집에서 못 참겠다,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겠다고 호기롭게 뛰쳐나간 일터였지만 그 자존감은 애초에 존재하긴 했을까? 더 깊고 깊은 바닥을 보며 나는 더 작아졌다.

끊임없이 커리어를 이어온 사람들과 십 년 만에 다시 사회로 나온 내 위치가 당연히 같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괴로웠다. 괜찮은 척, 쿨한 척, 강한 척은 다 하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근데 사실 괜찮지 않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도….재계약을 앞두고 나는 다시 도망쳤다.

편백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걸었다 ⓒ콩사탕나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몸을 고되게 만들면 의외로 차분해진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걷고 또 걸으며 답을 찾았다. 내가 왜 일을 더 하지 않고 달아났는지 가만히 생각해 봤다.

A. 초췌한 얼굴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기운이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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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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