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1
1)
SnT 하청 시절. 우리 회사의 캄보디아인 썸낭은 본명 대신 에이스라고 불렸다. 이 친구는 주야간 교대에 풀 잔업 풀 특근을 2년 가까이 해냈다. 2015년 최저임금‘만’으로 세전 330만원을 찍었으니 그 노동 강도를 가히 알만하다. 썸낭 덕분에 자동 용접 라인은 하루 한 명씩 돌아가며 잔업 특근을 빠질 수 있었다. 내국인 모두가 썸낭에게 고마워했다. 한 번은 자동 용접에서 핸들 반대로 붙인 제품이 100개 가까이 나온 대참사가 벌어졌는데, 내가 가장 LPG 가스 절단을 잘해서 일요일에 차출된 적 있다. 그때 썸낭이 불량 제품을 빼내어 지게차로 실어줘서 할 일이 확 줄어들었다. 너무 고마워서 쉬는 시간 음료수를 뽑아주며 물었다. “썸낭 안 힘들어?”, “힘들어.”, “천천히 해.”, “아니 빨리빨리. 사람들 좋아해.”, 왜 이 친구를 에이스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중소기업은 이런 일 잘하고 사람 좋은 사람 하나가 있고 없고에 따라 분위기 자체가 바뀐다.
2)
양산 컨테이너 수리 업체 다닐 때 가브리엘이란 외노자 형님이 계셨다. 당시 내가 27이고 그 형님은 51. 거구인 그 형님은 10년 가까이 이 일을 했고, 업계 독보적인 탑 기량을 가진 전임 팀장 다음으로 빼어났다. 이 형님은 주로 폴리싱이란 일을 했는데 컨테이너 앞판은 독한 화학약품을 써서 세척하고, 안쪽은 허리 세운 채로 대형 그라인더를 하루 종일 써서 갈아내야 하는, 극한의 고강도 노동이었다. 직접 해보니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골병이 나더라. 밀폐된 곳에 날리는 쇳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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