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선> #2 영화 - 뽕 : 식민지 조선 농촌이라는 로컬리티와 토속적 성(性)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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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용 감독의 <뽕>
식민지 재현의 윤리성
   
나도향의 소설 「뽕」은 1925년 잡지 『개벽』 64호에 발표됐다. 이두용 감독이 만든 영화 <뽕>은 1986년에 개봉했다. 한국 토속적 에로티시즘 영화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영화 <뽕>이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이러니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는 이미 컬러 TV 문화가 정착해 있었고, 외국 문화의 유입도 이전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워진 시기였으니 말이다. 
   
수많은 자극적인 소재를 제쳐두고 식민지 시절의 농촌 사회를 이끌어낸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식민지라는 상황 속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사회 구조적 특징이나 생활문화 속에서 현대인이 향수하거나 자극을 받을만한 향토성과 에로티시즘을 추출하는 게 좀처럼 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우리는 일제 치하의 식민지란 흉하고, 어둡던,  몹쓸 시간으로 배웠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는 1930년대를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시구절로 표현했다가 ‘궁핍’과 ‘착취’에 찌든 당시 농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두고두고 쓴 소리를 들었다. 나도향의 소설 「뽕」 역시 식민지 조선의 농촌 사회를 성(性)을 매개로 연결된 공동체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 절하 받기도 했다. 즉, 금기를 깨뜨리고자 하는 상상력의 부족 차원이 아니라 식민지 역사를 그런 방식으로 재현하면 안된다는 윤리적 강박이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식민 지배의 ‘억압’과 ‘고통’을 말하기 전에 ‘환락’과 ‘자극’을 먼저 연상시키는...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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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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