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훠이훠이 훨훨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06/30
‘오빠’네 집들이가 있던 날, 퇴근하는 대로 여의도에서 천호동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아버지가 오빠한테 전하라는 편지봉투를 꺼내봤다. 붓글씨로 쓴 사자성어의 한자체가 꽤 멋들어졌다. 새 집을 지었으니 서로 화목하고 건강하게 살라는 뜻일 거였다. 봉투 안에는 현금이 들었다. 아버지가 조카에게 건네는 복돈이다. 
   

“여기, 여기 거 몇 년 전에 말이야. 이산가족찾기 했댔잖아 왜~. 거기서 우리 외삼춘 만나지 않았가서? 야가 거 외삼춘 둘째 딸이라우.”
   

새 집 거실 한가운데 놓인 교자상 위로 음식이 그득했다. 오빠는 처가 쪽 식구들이 여럿 있는데서 나를 소개했다. 주방에서 일손을 돕던 나는 엉거주춤 박수를 받았다. 현관에 꽉 찬 신발들이 자리를 비우고 잠시 널널해졌다. 오빠, 술 많이 드셨어요? 아니, 나두 많인 못해. 네 아버진 술 못하지? 네, 박카스만 드셔도 취한대요. 술을 많이 못한다는 오빠얼굴이 불콰했다. 
   

“너, 아버지 얘기 하나 해주래?” “무슨 얘기요?” “저어기 북에 큰어마이 있는 거는 너도 알고 있디?” 
“그건 알아요. 그쪽 언니들이 쓴 편지도 받은 적 있어요. 아버지는 일없다고 읽지도 않았어요. 그쪽에 큰어머닌 평생 아버지만 기다리고 사셨을 텐데, 울 아버지지만 너무 냉정하신 것 같아요. 아버지한테 딱 한 번 들은 얘기는 있어요. 떠나올 때 막내가 이제 막 걸음을 뗐는데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구요. 근데 큰어머니가 왜요?”    
   

이산가족 찾기가 시작되던 1983년, 아버지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여의도 kbs 방송국을 찾아가 외조카의 이름 조00을 써 냈다. 당신 큰누나의 아들로 어릴 때 친구처럼 같이 놀던 조카가 혹시 남한에 내려 왔다면, 전국방송으로 울려 퍼지는 대대적인 저 이산가족 찾기를 모르지 않을 거였다. 당시, 내게는 고종사촌오빠(오빠)가 될 아버지의 외조카도 설마 하는 심정으로 외삼촌이 남한에 와 있다면 자기를 찾을 거라는 신념으로 아버지 성함을 써냈을 것이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조00씨가 외삼촌 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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