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은 만만찮은 불변성을 지닌 하얀 색 위에 세심하게 고안된 양으로 던져진 검은색에서 나온 결과다. 가능한 한 빨리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자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 알랭 바디우, 『검은색』 중에서알랭 바디우(1937∼)는 하얀색 위에 세심하게 던져진 검은색이 세상의 모든 것의 시원이라고 말한다. 하얀색이 바탕이라는 말이 옳은가? 혹시 그 반대는 아닌가?  그 말이 옳다면, 시원의 나는 음울하지 않으며, 내 시원의 언어도 음울하지 않다. 다만, 어떤 연유로 인해 카타콤으로 이어진 어두운 궁륭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해가 지고 난 뒤에 찾아오는 검은색의 세계를 싫어한다고 해서, 핑크빛이나 연두색 칠을 한 변명을 들려드릴 수는 없다. 오로지 희거나 검은 변명을 들려드릴 수밖에 없다.  핑크빛과 연두색의 말은 변명 자체가 아니며, 변명을 치장하거나 변명을 잠시 가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가장 빨리 ‘치장을 걷어낸 변명을 보여 ...